유철주
조계종 기획실 홍보팀 주임
1700명이 넘는 제자를 길러내고 현재 250여명이 공부하고 있는 비구니 수도도량 운문사를 이끌고 있는 법계명성(法界明星) 스님.
‘총림(叢林)’ 못지않은 사격을 갖춘 운문사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명성스님의 원력과 지도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근현대 불교의 대강백인 관응스님의 딸로도 잘 알려져 있는 명성스님이 팔순을 맞아 세권의 책을 펴냈다.
출간된 책은 명성스님의 상좌 서광스님이 쓴 명성스님 평전 <후박꽃향기>, 명성스님의 법문을 모은 <즉사이진(卽事而眞)-매사에 진실하라>, 불교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명성스님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꽃의 웃음처럼 새의 눈물처럼> 등 3권이다.
서광스님은 명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미국에서 종교심리학 석사와 자아초월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미국 보스턴 서운사 주지를 지내고 있다. 서광스님이 쓴 평전 <후박꽃향기>는 명성스님을 다룬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지인들과의 인터뷰, 명성스님과의 직접 대화를 생생하게 실었다.
명성스님은 당시로는 늦은 23세에 출가했다. “내가 이렇게 승려 노릇 하는 게 나쁘면 너한테 권하겠느냐?”는 관응스님의 권유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가했다.
서울 청룡사의 강원 강사로 10여 년 간 후학을 지도한 후 1970년 운문사로 내려가 강사를 시작했으며, 1977년부터는 운문사 주지 겸 학장으로 재임하면서 후학 교육과 운문사 불사에 매진했다.
1970년 동국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스님은 불교학자 김동화 박사에게서 ‘한국 최초 비구니 교수를 맡아 달라’는 청을 받지만 뿌리친다.
“김동화 선생님은 ‘서울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 시골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낫다’며 운문사 가는 저를 만류했어요. 그렇지만 비구니를 교육하는 일이 더 크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2004년부터는 조계종의 전국비구니회 제8회 회장이 된 후 연임해 현재 9대 회장으로 한국 비구니승가를 이끌면서 운문승가대학장 겸 승가대학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명성스님은 조계종의 중앙종회의원을 5차례 지내는 등 종단 일에도 참여하면서 비구니스님들의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힘썼으며, 비구니스님들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민주적인 교수법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후박꽃향기>에는 인간적으로는 용서를 잘하고 수용을 잘하는 ‘인욕보살’이라는 별명을 지녔고, 학인들에게 한없이 자상하다가도 상좌들에게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미물을 대할 때도 사람처럼 진실하게 대하는 명성스님의 여러 모습이 실려 있다.
“당신 방에 제비가 집을 지어서 똥을 싸니까 ‘여기에 싸도록 해요’ 하며 신문지를 깔아줬거든. 그런데 다른데 싸는 거야. 그러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우리 학인들 닮아서 말을 안 듣나요?’ 제비들 보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야. (하하하)”(135쪽)
명성스님과 제자나 스승, 도반으로 인연을 맺은 여러 스님과 이웃 종교인, 문화예술인의 편지글을 모은 서간집 <꽃의 웃음처럼 새의 눈물처럼>에는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편지 148편이 실렸다.
“보내주신 찻감 감사히 받았습니다. 누나 같은 정성에 차라리 숙연해집니다. …(중략)… 나는 스님께 아무것도 못 주고 있는데 자꾸 받기만 한다는 느낌입니다. 고맙고 기쁘면서도 염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법정스님의 편지글. 301쪽)
“스님과 같이 착실하고 모범적인 스님네가 끊임없이 속출하여 스님의 뒤를 따라 새로운 체제 밑에서 새로운 조직을 가지고 새로운 불교로 발전시켜 새로운 희망을 모든 중생들의 가슴 가슴에 안겨주어야 하리라고 생각되옵니다.”(숭산스님의 편지글. 309쪽)
명성스님은 승가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1970년에 여기 내려와 40년 동안, 반평생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운문사 승가대학의 3회 졸업생부터 지금까지 46회 졸업생을 내가 배출했고, 지금까지 졸업생 수가 1천700명이 됩니다.”
또 “내가 운문사 생활 40년 가운데 20년 3개월간을 운문사 주지와 승가대학 학장을 겸했다”며 “40년 전과 달리 요즘은 불경을 가르치는 내전과 불경 이외에 동양철학, 역사, 서예, 심지어 피아노까지 가르치는 외전을 겸학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운문사는 40여 년 동의 전각에서 비구니스님 250여 명이 사는 큰 가람이지만 사찰 전체가 티 한 점 없이 말끔하다. 화단에 심어놓은 화초 한 포기, 돌 하나에도 비구니스님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모든 불사의 진두지휘자가 명성스님이다.
운문사의 스님들은 명성스님이 사찰 살림을 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밀리미터(㎜) 스님’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하고, 감정표현을 절제하고 화를 참는 ‘인욕 보살’의 모습을 보이며, 돈 관리에서는 유리알처럼 투명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명성스님은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진실하라는 ‘즉사이진(卽事而眞)’을 실천하면 된다”며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다 참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명성스님은 “앞으로도 더 많은 유능한 비구니들이 불경번역과 포교, 도제양성 등 3대 사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싶다”며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유능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내 소망”이라고 말했다.
명성스님은 국민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절에 와서 수행을 따로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장소가 수행장이라고 생각하기를 권합니다. 가정, 직장이 다 수행장인 것이지요. 유마경에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곳이 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청정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일곱 가지 보석을 갖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입니다. 청정한 마음을 가지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