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아시아기자협회 운영위원
북한의 김정은 세습체제 등장
북한의 권력이동이 한창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3대 권력세습이다. 그러나 체제 특성상 정확한 사실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대체적으로 어떤 흐름으로 가고 있는지 방향과 성격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우선 3대 세습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반의 접근은 사실상 봉쇄되어 있다. 심지어 김정은의 인적사항 조차 일부 혼선과 논란을 빚고 있다.
김정은의 출생연도를 포함해 한자 이름도 이런 저런 말이 나돈다. 후계구도가 분명해 지면서 국정원도 최근 북한정보 주요인물 코너에 김정일 3남 김정은을 추가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로만 소개하고, 출생지와 일부 논란이 되고 있는 출생연도 등은 기록하지 않았다.
기본 인적사항도 정치적 상징 조작
김정은의 출생연도는 당초 1983년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측은 최근 1982년생으로 바꿔 외부에 퍼뜨리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상징조작의 복선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출생연도인 1912년의 끝자리 수에 맞춰 김정일의 출생연도를 1942년(원래 1941년)으로 꾸민 것처럼, 북한 특유의 후계 정당화를 위해 출생연도를 조작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통일부는 김정은에 대한 인물정보에서 출생연도에 대해 1984년생 설이라고 표기하고, 1982년생으로 조정했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한자 이름도 정확치 않다. 다수 표현은 金正恩이다.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일본 내 뉴스배부를 맡은 조선통신사에 김정은의 한자 표기를 金正恩이라고 전달했다는 교도통신의 보도가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正銀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 보도에 따라 金正恩으로 바꾼 곳은, 문회보와 봉황위성TV 등 일부 홍콩 언론뿐이다. 이처럼 출생연도와 한자 이름표기 등 가장 기본적인 사항조차 혼선과 논란이 되고 있을 정도로 북한 정보에 대한 접근은 아직도 폐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권력 이동과 통치성격을 감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북한체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후계자 지명 시점도 오락가락
기본 인적 사항뿐 아니라, 후계체제가 언제부터 본격 가동되었는지도 몇 가지 관측이 혼재한다. 대다수 관측통들은 2009년 1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보고 있다. 불과 1년 8개월 남짓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건강문제가 불거지면서 후계자 내정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2007년 1월 설이 나돌고 있다. 여기에다 2008년 8월 김 위원장의 뇌졸중이 후계 승계에 가속도를 붙였다는 주장이다.
2007년 1월 후계자 내정설은 먼저 후계수업 실무팀이 2007년 조직돼 활동했다는 점을 든다. 두 번째로, 2007년 3월부터 김정은 출생지인 평북 창성의 고영희(김정은 모친으로, 러시아에서 사망함) 관저를 혁명사적지로 재건한 점을 꼽는다. 세 번째로, 김정은이 주도하는 사이버 부대가 2007년 9월 조직됐고, 네 번째로 2007년을 기점으로 김정은이 당 비서로 일하는 총정치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4가지 방증정황을 내세웠다.
권력기반은 친인척과 북한판 태자당
북한은 현재 김정은 체제가 실권으로 작동되는 것으로 관측된다. 국방위 모든 보고가 김정은을 통해 김정일에게 전달되고 있다. 또 해외에 은닉관리하고 있는 통치자금도 김정은에게 이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9월 28일 북한 노동당 당대표자회의 후계출범 모습은 대외용 행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김일성 가계와 북한판 태자당이다. 먼저 김씨 가계에서는 선군정치의 정점에 있는 국방위원장 아버지 김정일을 비롯해 고모부이자 국방위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인 장성택(김정일의 매제)이 1차 권력배경이다. 여기에는 양대 공안기관인 보위부와 공안부가 받치고 있다. 김일성 가계 못지않은 김정은의 권력핵심은 이른바, 북한판 태자당이다.
김일성의 3대 아바타 아이콘
김정은의 등장에는 김일성 후광효과(halo effect) 내지 첼리니의 후광(Cellini's halo)에 비유된다. 지금까지 공개된 김정은의 모습은 마치 김일성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닮은꼴이다.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대사는 김정은이 1948년 당시 할아버지 김일성과 너무 닮았다며 성형수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조크했다. 평소 김일성이 입었던 인민복 차림으로, 육중한 몸집에 머리칼을 뒤로 넘긴 것까지 조부의 아바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권력체제에 대한 현실진단과 전망은 간단치 않다. 우선 권력 이양속도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98년 자신의 통치체제를 출범시키기까지 무려 24년이 걸렸다. 특히 북한 권력 창업주가 생존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보다 강력한 권력 기반 속에 후계수업을 받고 권력을 이양 받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복형 김정남과 동복형 정철의 낙마 속에 후계구도가 다소 급조된 인상을 받고 있다.
자등명 법등명의 개혁개방으로
김정은 체제의 전망에 대해 대부분 비관론을 펴고 있다. 개인의 정치경험이 짧은데다,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관측통들은 최소 3년, 늦어도 5년 정도는 김정일이 건재해야 후계구도를 그나마 정착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군부 중심의 폐쇄 감시체제라고 하지만, 새 체제에 따른 물갈이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또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대내외 경제난에다 정치적 리더십에 계파별 이해관계가 작용하면, 내분양상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내부적 요인을 억제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을 과시하고, 대남 대미 불신의식을 증폭시키고 있지만, 인류 보편의 가치인 개혁개방의 역사적 흐름을 거역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궁극적인 지향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형편에 외부 지원만으로 내부체제가 성숙될 리 만무하다. 특히 통일이 되더라도, 동서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북한 내부체제의 경쟁력이 없이는 서로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 권력층의 이해관계도 마찬가지이지만, 인민들이 역사의 결단을 가지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한 열정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사회개혁과 변화의 주체로 깨치지 못하고, 폐쇄체제의 기반으로 남는다면, 세계사의 조류에 함께 하기 어렵고, 3대 세습체제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