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생활세계와 불교
    생활법률상식
    자연과 시
    자연과 시
    불서
    선지식을 찾아서
    산사카페
    인간불교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열반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는 불자가 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2563년 전,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涅槃에 드신 날입니다.
열반涅槃은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29세에 출가를 하셔서 35세에 성도成道를 이루시게 되었음을 유여열반이라 하고, 45년 동안 전법의 길에 계시다가 쿠시나가라 싸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세연世緣을 80세世로 열반에 드심을 무여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경涅槃經』에서 사자후보살이 부처님께 여쭤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무슨 연고로 1년 가운데 2월 보름날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2월은 봄이다. 봄에는 만물이 자라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강물이 많아지고 온갖 동물들이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흔히 세상이 항상恒常하다는 생각을 내고 있느니라.”
봄에는 날씨가 따뜻해져서 히말라야 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려 강물이 많아집니다. 만물은 새싹이 돋고 꽃을 피웁니다. 동물들은 새끼를 낳습니다. 우리들이 봄의 계절을 보며 항상하다고 느끼는 것을 염려하여 모든 법은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2월 보름날, 열반에 드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삼십년 전, 인도 부다가야에 순례를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음력 2월 보름날 이었는데, 보리수나무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새순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어 그 풍경을 보면서 떨어진 보리수 잎을 가져와 불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봄에 싹이 돋고 여름의 진 녹음은 가을에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인데, 춘삼월 봄에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부처님이 열반 하실 때,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잎들이 눈송이처럼 떨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다가야에서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리수나무 잎들은 3~4일 사이의 간격을 두고 떨어지며 새로운 잎으로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여기까지 와서 다행히 부다가야 보리수 잎이 땅에 떨어지고 있으니 한국에 가지고 가서 인연 있는 불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가지고 갔던 책에 떨어진 보리수 잎들을 책갈피에다가 하나씩 넣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니 또 욕심이 생겼습니다. 책갈피에 끼워두었던 보리수 잎들을 방에 쏟아 묶어놓고 다시 가서 떨어지는 보리수 잎들을 다시 주워오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쏟아두었던 보리수 잎들이 그 사이에 낙엽이 되어 도르르 말려 있습니다. 다시 모아 보았지만 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복福과 덕德과 지혜智慧로 이루어진 공덕功德도, 그 공덕장이 깨달음일지라도, 그런 복과 덕과 지혜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소진해 써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복은 짓는 것이며 덕은 나누는 것이고 지혜는 닦는 것인데, 수명이 다한 나뭇잎으로 떨어진 보리수 같은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 되겠구나. 우리도 끊임없이 복과 덕과 지혜를 구족해가는 노력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낙엽이 되어버린 보리수 잎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열반재일涅槃齋日에 단상斷想으로 다시 새겨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지 20년쯤 지났을 적에(55세 경) 어느 날 대중들에게 “누가 나를 좌우에서 보필하면서도 그러고도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교진여.陳如 등 부처님보다 세속의 나이가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을 보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상수 제자들에게 시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나이들인데, 어찌 나를 보필하겠다고 하는가?” 하십니다.
그때 사리불舍利佛이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관하니, 부처님께서는 아난阿難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난에게 부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난이 대답합니다.
“부처님과 사촌四寸지간의 혈육이라 모시기 어렵고, 힘든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승가공동체에서 마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맛있는 음식이나 공양 받고 좋은 옷이나 얻어 입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시봉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아난의 걱정을 듣고 아난이 원하는 일들을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언제든지 부처님 처소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난이 부처님을 시봉하게 되었는데, 열반에 드시기 전 아난존자를 여덟 가지로 칭찬하셨습니다. 아난은 “때 아닌 때 내 처소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난은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보필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이었습니다. 그런 아난에게 “아난다야, 나는 이제까지 모든 법을 가르쳤다. 법을 가르치는데 인색해본 적이 없다. 이제 나는 늙고 기운도 쇠했다. 내 나이 여든이다. 낡아빠진 수레가 근근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겨우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유마경維摩經』 설법지 바이샬리에서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모이게 한 뒤 3개월 후, 열반에 들겠다고 하시고 하루하루 걸어서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사라쌍수 나무 밑에 자리를 펴시게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여기에서 열반에 들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난존자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을 불러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울지 말아라. 가까운 사람과 언젠가 한번은 헤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이니라. 한 번 태어난 이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너는 그동안 나를 위해서 수고가 많았다. 내가 떠나간 뒤에도 더욱 정진해서 성인聖人의 도道에 오르도록 하여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위로를 하신 것처럼, 우리도 스스럼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각자의 삶을 여한 없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난이 슬픔을 참으면서 다시 부처님께 열반에 드신 다음에 장례절차를 어찌 해야 할지를 여쭙니다.
“아난다야, 너희 출가자들은 나의 장례 절차에 상관하지 말아라. 너희는 오로지 진리를 위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여래如來의 장례는 신도信徒들이 알아서 치러줄 것이니라.”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쿠시나가라에 살고 있던 나이 많은 수행자 수바드라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으로 허둥지둥 달려왔습니다. 아난존자는 이들을 차단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는 아난을 만류하십니다.
“진리를 알고자 찾아온 사람들을 막지 말아라. 그들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설법을 듣고자 온 것이다. 내 말을 들으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바드라를 위해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법열을 얻어 깨달음을 얻었는데, 바로 마지막 제자입니다.
그런 뒤에도 계속해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려워하지 말고 물으라 하셨지만, 아난이 더 이상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자 마지막 법문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살지 말아라.
함께 나의 교법敎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道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말한 이 가르침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 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처럼 부처님은 인간적인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2563년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법문을 하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25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을 수 있게 하시니,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우리 불자들은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