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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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 율법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이런 속담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옛날 저의 집 부엌에는 안방 쪽과 건넛방 쪽에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안방 쪽 부뚜막에는 아궁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무쇠로 된 밥솥이 걸려있고, 다른 하나는 양은으로 된 국솥이 걸려있었지요. 그런 상황입니다. 이 솥 옆에 소금이 놓여 있더라도, 그것을 솥 속에 넣어야 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세상살이를 이론으로 알아도, 결국 그것을 생활에 써먹어야 효과가 난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불교를 이론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치를 모르면 신뢰감이 안 생기고, 신뢰감이 안 생기면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행동했다가는 낭패를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대책 없는 사람이 이치를 알기도 전에 행동부터 하는 사람입니다. 이론을 깔보면 절대 안 됩니다. 뭘 모르고 선승 꼬랑지 흉내 내는 것들이 ‘팔만대장경은 모두 더러운 오물 닦은 종이’이니, 심지어는 ‘불경은 다 똥 닦게, 밑 닦게’이니, 그런 막 말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심지어는 이런 말 하는 것도 들어보았습니다. ‘참선을 해야 부처가 되지, 경을 보아서는 성불이 안 된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경장이나 율장에 쓰인 대로 실천을 못해서 성불이 안 되는 것이지, 부처님의 말씀에 무슨 탓이 있겠어요. 어째든 실천이 중요하다는 취지만 받아들이고, 그 표현은 흘려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대로 알고 그 안대로 실천을 해야지요. 계법에 대한 이론을 잘 알고 실천하고, 선정에 대한 이론을 잘 알고 실천하고, 지혜에 대한 이론을 잘 알고 실천하고, 그래야 합니다. 이하에서는 계에 대한 이론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론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바른 이론에 입각한 실천을 해보자는 바램 때문입니다.


2.
불교의 율법이라는 말을 들으시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첫째로 ‘살생’을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불교는 생명 해치는 것을 금지합니다. 불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생명 죽이는 것을 금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나 현실은 딴판입니다. ‘귀신’이 어쩌니 ‘마귀’가 저쩌니 하는 택도 안 되는 굴레를 씌워, 못된 짓을 끔찍할 정도로 하기도 했습니다. 불교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부처님의 율법에 의하면,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자비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해’라고 하는 겁니다. 6.25 때 북한군이 쳐들어와 사람을 죽이는데 어찌합니까? 닭고기 쇠고기 생선 계란 안 먹고 어찌 삽니까? 내가 직접 그것들을 죽여서 먹지는 않더라도, 결국 내가 먹으니 누군가는 죽이고, 또 기르는 게 아닙니까. 이런 게 다 불교의 율법에서는 금합니다.
아무튼,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율법도 지키기 어려운데, 일체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요즈음 화제가 되는 낙태는 어떻구요. 남녀 관계로 임신해서 모태에서 약 10개월을 지나 출생합니다. 그러면 어느 때부터가 생명인가요? 또 만들기는 둘이 하고, 젖 먹여 기르는 양육을 비롯하여, 이루다 말할 수 없는 별별 일들을 젊은 여성 혼자 짊어지게 하는 현실이라면, 그 여성의 인생은 또 어찌합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핵심은 용어 하나하나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가 불자의 다섯 가지 계율 중에서 ‘살생’만 말했는데도 간단한 게 아닌 줄 아실 겁니다. ‘도둑질’, ‘사음’, ‘망어’, ‘음주’. 이런 등등도 실제 생활에서 적용을 생각하면 매우 복잡합니다. ‘도둑질’만해도 그렇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남’이란 무엇이고, ‘것’이란 무엇이고, ‘훔침’이란 무엇이고. 소유격 조사 ‘∼의’란 무엇이고.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지(또는 아들)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로 밥 사먹으면 되나요? 안 되나요? 


3.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제가 말하는 사회란 공동체의 뜻입니다. 마을에는 마을 공동체가 있고요, 출가하면 출가 공동체가 있지요. 그리고 그 각각에는 지켜야 할 규칙 내지는 율법이 있습니다. 봉건시대에는 두 공동체가 비교적 구별되어 있었지요. 중국에서는 이를 두고 ‘방외方外’라고 이름 붙여, 그들에게만 적용하는 국법이 따로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요. 봉건시대에는 출가 승려들에게는 ‘조-용-조’의 의무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달라졌습니다. 국법은 출가나 재가나 모두 지켜야 합니다. 오히려 출가자는 재가자 보다 더 지켜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즉, 시민으로 지켜야 할 국법도 있고, 출가 공동체가 자율 제정한 율법도 지켜야 합니다. 물론 재가 불자도 그렇습니다. 일반 시민이 지켜야 할 공공의 법령도 지켜야 하고, 재가 불자이기 때문에 ‘플러스-알파’로 더 지켜야 하는 율법이 있는 거지요.
그러니 재가가 되었든, 출가가 되었든 불자佛子로서 제대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불자라면 반드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의 문장에서 재가 5계에 대해 약간 살펴보았는데도, 그 계율 문장 자체의 해석이 매우 복잡한 것을 보았을 겁니다. 다섯 종류의 계도 그런데, 예비 승려인 사미가 지켜야할 10계는 더 복잡하겠지요. 게다가 정식 승려인 비구가 지켜야 할 250계는 더 복잡합니다. 실천의 어려움은 고사하고, 율법 조문의 언어적 해석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론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율사라면 이런 문제들을 해석해 내야합니다. 술 고기 안 먹고 아랫도리 안 쓰면 율사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일은 출가 불자라면 다 실천해야 할 의무입니다. 문제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직업인이 법률 조항 해석하듯이, 그런 것을 하는 게 율사의 업무라는 말입니다. 지식의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국회의 ‘법사위원회’처럼 부처님 당시의 근본 율법에 따라, 이 시대에 적용하는 법들을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불교의 역사 속에 있었던 무수한 판례들을 죄 다 암기하고, 특히 부처님 살아생전에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과 그것들의 시작과 해결 등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그것 율사입니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제시해야 율사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불교계는 그런 율사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현대사회의 다양한 윤리적 결단을 어찌해야 할지 방향 제시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유’에 대한 불교적 해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불교적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 ‘타인’, ‘공동체’, ‘권리’, ‘의무’, ‘자유’, ‘노동’, ‘직업’ 등등. 이런 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면 불자들은 어찌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그 문제들이 해결 될 때까지 실천을 보류할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무의미한 치료 중단’ 불자라면 어찌해야 합니까? 제 새끼 구하려다 ‘코마’ 상태에서 20여 년 만에 깨어난 엄마의 첫마디가 애 이름입니다. 
제가 무슨 대안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문제인 줄은 알지만, 해결의 방법, 그것도 더 많은 보편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는 저 자신도 답답하고, 이 분야 연구자로서 죄송할 뿐입니다. 우선 제시하는 것은 ‘3취정계’에서 출발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대승보살의 율법으로 ‘섭중생계’, ‘섭선법계’, ‘섭률의계’를 말하는데, 대승과 소승 모두를 망라하므로 ‘취’ 자를 붙였고, 율법의 근본이므로 ‘정’ 자를 붙였습니다.
이런 계율의 성립 근거에 대해서 대승의 각 경전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계율은 인간의 ‘본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계율 조목을 운운하기에 앞서, ‘본마음’ 내지는 ‘자성’을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그것을 회복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계율 조목을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율법은 그 다음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율법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게 된답니다. 자성의 체험, 본마음의 완전하고 온전한 회복, 이를 두고 ‘돈오’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