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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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의 조고각하(照顧脚下)

임형두_연합뉴스 부국장

얼마 전, 강화도 전등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룻밤 묵으며 마음이나 닦을 요량으로 이 산사를 찾았다. 저녁 공양 후 이 절의 살림꾼인 범우 스님이 차 한 잔 하자기에 취향당에서 마주앉은 것이다.

밤 7시 반에서 10시 무렵까지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절집생활이며 세상살이며 사람 사는 사연들이 향긋한 쑥차 향에 실려 은근하게 피어났다. 탈속과 세속이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싶으니 기분이 묘하게 맑아져온다. 밖에선 바람소리가 간간이‘솨-’하고 밀려왔다

밀려간다. 대화에 취하고 다향에 취한 채 취향당을 나선다. ‘잘 주무시라’합장한 뒤 삼랑산 중턱에 홀로 떨어진 취향당의 돌계단을 슬슬 내려간다.

몇 발자국을 떼었을까. 갑자기 천지사방이 온통 시커메진다. 산 아래 본찰까지는 걸어서 5 분여. 하지만 오솔길은 어둠의 휘장에 가려 통 보이지 않는다. 두 발은 땅을 더듬고, 한 손은 어둠의 벽을 더듬는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우산을 바쳐 드니 자세가 영 고약하다.

귀기마저 느껴지는 소나무 윤곽을 육감으로 어림잡아 길을 내려간다. 영락없이 눈 뜬 소경의 모습이다. 취객처럼 길을 벗어났다가 되돌아오길 몇 차례. 지척의 밤길은 십 리처럼 멀다.
낮에는 무척이나 평탄한 길이었는데, 밤에는 이처럼 험난하게 안면을 바꾸는구나 싶으니 더럭 겁까지 난다.
용케 본찰에 다다라 위를 올려다보니 취향당 불빛이 희미하게 손짓한다. 이제서야 마음이 놓이고, 방금 전 스님과 나눴던 담소와 쑥차향이 다시금 그윽하게 돋아나온다. 길에서 길을 잃자 앞뒤 꽉 막힌 먹빛 절벽이더니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로 마음이 놓인 것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말 그대로‘다리 밑을 비추어 잘 살피라’는 뜻이다. 절에 가면 선방 앞 섬돌에 이런 표찰이 붙어 있기 마련인데,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으라는 경계의 글귀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조고각하’가 잠깐 동안의 그 밤길에서 절절하게 다가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비록 안경을 걸치긴 했어도 낮에는 십 리 밖도 너끈히 건너다볼 것처럼 자신이 있었으나 밤이 되자 당달봉사가 따로 없다.
‘조고각하’가 묵직한 의미로 다가오는 게 어디 밤길뿐일까. 해우소에서 일을 보다가 우연히 만난 수필가 이명선 씨의 글귀도 가슴을 치는 교훈을 담고 있다. 제목은‘당신의 살구기름’.
똑똑하기로 소문난 여우 이야기로, 불가에 전해오는 얘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욕망에 사로잡힌 윤 똑이 여우의 우화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여우는 살구기름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구기름에 독을 넣어 여우가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둔단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여우는 살구기름이 놓인 길목에 다다르면 빨리 지나간다.
왜? 똑똑하니까.
욕망 앞에 자유로울 자는 생각보다 적은 법. 그만두고 돌아서기에는 왠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여우는 먹지 말고 냄새나 맡고 가자며 슬며시 마음을 돌린다.“ 에이, 입만 대보고 가지 뭐. 그런다고 죽기야 하겠어?”라고 말이다. 그렇게 자신과 타협을 하고 혀를 살짝 댔을 뿐인데, 살구기름은 목을 타고 저절로 넘어가 버린다. 허겁지겁 살구기름을 먹던 여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살구 기름은 반으로 줄어 있다. 자포자기 심정이 된 여우는 남은 기름을 마저 먹어 치운 뒤 살구기름이 놓인 길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단다. 작가는 이야기 말미에서“당신의 살구 기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오싹한 질문이다.

우리에게 살구기름은 과연 무엇인가. 그 의미를 조금만 헤아려보면 살구기름이 주변에 널려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여우임을 수긍해야 한다. 욕망의 포로가 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마는 그 여우 말이다.
살구기름은 뇌물일 수도 있다. 누군가 파놓은 유혹의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도“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 쥐도 새도 모르는 일인데 뭐. 에이, 입만 대보고 가지 뭐. 그런다고 뽀록이야 나겠어?”
라며 슬슬 지옥의 문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살구기름은 외도일 수도 있다. 역시 마귀가 쳐놓은 욕망의 덫인 줄 뻔히 알면서도“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 어쩌다 한 번 잠시 그럴 뿐인데 뭐. 에이, 입만 대보고 가지 뭐. 그런다고 들통이야 나겠어?”라며 파멸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살구기름은 도박일 수도 있다. 이 또한 요행의 덫인 줄 뻔히 알면서도“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 그저 소일삼아 잠깐 해보는 놀이일 뿐인데 뭐. 에이, 딱 한 판만 치고 가지 뭐. 그런다고 거덜 이야 나겠어?”라며 자승자박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다시 조고각하로 돌아가자. 부처님의 가르침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비유적 의미를 파고들면, 무릎이 절로 쳐지는 진리가 숨어 있음을 다시 발견한다. 현재 자기가 서 있는 자리, 그 현실을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무릇 수행자는 밖을 향해 구하지 말고 내적인 자기 본성을 살펴보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안에서 찾으라는 뜻. 다시 말해‘너 자신을 알라’는 얘기다. 맹자 역시“도는 가까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도와 가르침뿐일까. 멀리 떨어진 사람을 돕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 있는 불우이웃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자신을 잘 살피는 사람은 가까운 이웃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고, 먼 이웃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행복의 열쇠는 결코 거창한 데 있지 않고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