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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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계승과 신앙심 고취의 산물

김지상
중국 국가박물관 수복연구원, 화광미술연구원장



불교미술은 불교의 신앙과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불국토의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엄격한 종교의 규법 아래 절차와 법식을 지켜서 행하여지기 때문에 순수 창작화라기 보다는 대중을 교화하고 종교적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실용적인 종교화이다.

불교미술은 시각적 공간적 표현을 통하여 부처님의 생애와 진리 역대의 선사상을 그리고 불교의 사상과 역사를 표현한 불교문화의 한 장르라 할 것이다. 불교미술의 초기 형태는 단순한 상징물로만 표현이 되었고 종교적 숭배를 위한 장식화가 먼저 그려졌다.
기원후 1세기경에 초기의 불교미술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의 상징물을 통한 미술은 석존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탄생지인 룸비니 깨달음의 붓다가야 설법지인 녹야원 열반지인 쿠쉬나가라 등지에서 흔적이 남아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국으로 옮겨지게 된다.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는 A.D 4 세기에 만들어진 돈황의 막고굴이다. 흔이 천불동 이라고 부르는 막고굴에는 서방의 양식과 중국 전통의 양식이 함께 나타나고 있고 이는 당시 불교미술에 최고의 수작이고 지금 까지도 전 세계에서 많은 연구와 관심에 대상이 되고 있다. 막고굴에는 변상도, 행렬도, 불전도,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후에 불교미술도 많은 변화와 발전에 계기가 된다.
사찰에 많은 불상과 벽화의 제작이 이루어 지게 된 원인은 중국에 불교가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발전이된 교리적 특색이라 할 것이다.

이번에 중국 미술관에서 전시된“성세화광- 돈황예술대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했다. 발 디딜틈 없는 전시관에는 대표적인 벽화들과 불상들이 현상 그대로 모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찬탄을 받았다. 이처럼 돈황은 수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보다 늦은 삼국시대에 전래가 된 불교는 불교미술과 함께 발전을 하게 된다.
고분벽화 형태로 발전하면서 사신도, 풍속도, 연화문, 당초문등을 바탕으로 불·보살 등의 존상화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고려시대에 오면서 불교미술은 질적인 우수성과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또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많은 가람들과 단청, 탱화 등이 불교와 함께 발전을 하게 된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질 때 세워진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 이후에 전각의 모양과 양식도 많이 변하여져 각 전각들에 역할이 다양해지게 되었다. 전각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단청 또한 발전하게 되었다.
단청을 하는 목적으로는 소나무의 재질상 나무질이 거칠고 목재의 표면이 갈라지거나 비바람 등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한 각 전각에 구분과 장엄을 목적으로 시행이 되기도 한다. 초기에 우리나라의 단청은 중국의 문양과 오행설을 바탕으로 전하여져 왔지만 후에는 표현방식과 문양 등이 더욱더 화려해지고 장중하게 변화 게 된다.

중국에 단청은 벽화를 중심으로 보상화, 당초문 등 문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큰 특징으로는 고분(高粉)기법을 이용하여 골체법으로 채색을 하는데 있다.
이는 입체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이 되었다. 단청색의 특징으로는 녹색과 청색위주로 도채가 되어간다. 지금 현재 수리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천안문에 자금성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단청은 오행설에 대별되는 다양한 색채와 휘(暉)의 문양, 화려한 금 문양 등이 가미가 되어서 중국과는 다른 양식적 특징이 있다.

또한 창방, 평방 등에 화려한 문양과 포벽에 나한도, 불·보살도 등 사소한 곳에도 장엄을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장엄으로 전각들은 그 의미와 함께 더욱더 화려하고 장중함을 가지게 된다.
송대의“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보면 그 예를 알 수가 있다.
고려 궁전의 규모와 채색 사찰의 장엄성 단청장식의 호화로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에는 고구려 시대와는 달리 벽화보다는 탱화의 제작이 증가하게 된다. 탱화는 벽화에 비해 재료와 기법의 차이 때문에 벽화에 비하여 정교하게 조성이 된다. 비단위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탱화가 조성이 되었고 수많은 수작들이 이 시대에 조성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 아미타여래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다.

고려불화의 특징으로는 배채법(背彩法)과 천연 재료들이다. 배채법이란 천에 뒷면에서 물감을 도채하여 앞면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온 상태에서 음영과 색채 보강을 하는 기법이다. 배채법이 행하여진 이유로는 색채의 선명도를 높이고 변색을 지연 시키고 안료의 박락과 물감의 얼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석채, 호분 등 천연재료의 사용이다. 요즘에 불교 미술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 도채되어진 물감위에 바림을 하고 금니로 문양을 화려하게 마무리 한다.

요즘에 탱화는 천연재료에 사용보다는 화학안료에 사용으로 인하여 작품성과 보존성에 있어서 질적으로 저하가 되어가고 있다. 단편적인 이유로는 고가의 재료, 석채와 같이 천연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하여 불교미술의 난립을 막고 인재를 양성해야 불교미술 또한 발전하고 고려시대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오면서 불교미술은 불교와 함께 점점 쇠퇴하게 된다. 민중 불교의 성격을 띠면서 대중과는 가까워 졌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고려의 불교미술 양식을 계승하지 못하게 된다. 억불정책의 자구책으로 민간과 토속신앙이 결합되면서 다양한 표현과 미술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탱화는 조선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조성이 된다. 104위신중, 산신탱화, 괘불, 감로탱화 등 다양한 탱화가 조성이 된다. 전각 또한 성격과 명칭이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 그에 따름으로 다양한 탱화와 불상들이 조성이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에 불교미술 형태로 발전을 하게 된다. 고려시대에 귀족들에 원당을 장식 하던 탱화는 조선시대에는 전각의 대형화에 따라서 불상의 크기 또한 대형화 되었고 탱화역시 대형화 된다.
불상은 고려시대와는 달리 구부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법당의 대형화와 불단의 높이에서 오는 변화된 형식이라 할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각종 전란으로 인한 사찰의 파괴로 대규모의 불사가 진행된다. 이로 인하여 화사들에 집단과 계보가 형성이 된다. 많은 전란으로 인하여 궁핍한 생활 속에서 불교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배경으로 불교미술 또한 어두운 색감이 나타나고 금니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어간다. 많은 불교미술의 조성으로 인하여 체계적으로 전승이 되어 오늘날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근대에 오면서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은 발전이 미비하다.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수많은 불교미술의 난립으로 인하여 양적인 면은 늘어났지만 질적인 면은 다소 떨어지게 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교미술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발전을 시켜야 할 것이다. 안일한 생각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지켜 나가야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은 역사와 불교를 바탕으로 발전이 되어왔다.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에서 옛날 부터 내려오는 도제식 교육을 등한시 하고 단순한 답습을 하는 불교미술이 되어서는 서양기법에 노출이 되어있는 대중에게 다가가기는 더욱더 힘이 들것이다.

단순한 그림이 아닌 전통을 계승하고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 오래도록 부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보존 할 수 있는 불교미술로 조성되어지고 발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