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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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산의 관리법

 


불광산의 원만한 대중생활 ①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 호에 이어서>
제 일생에는 너무도 많은 대중이 있었습니다. 출가한 도반이건, 동문이건, 제자이건, 신도이건, 직원이건, 봉사자건 저는 항상 대중 가운데 있었으며, 대중 가운데 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격 덕분에 저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저를 필요로 했으며,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면 저는 반드시 그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나는 대중 가운데 있다


저는 올해 이미 90세가 되었습니다. 제 일생을 되돌아보니 한 살부터 90세까지 대중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고, 혼자서 생활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형제자매가 많아 매일 곁에 누군가 있었고, 저에 대한 부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형제자매 앞에서 뽐내지 않았고, 늘 제 자신을 자식 중 하나라 여길 뿐 어떤 특권도 원치 않았습니다.
출가 이후에는 줄곧 대중 안에서 생활하며 백여 명의 스님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매일 많은 눈이 우리를 지켜보았고, 잘못한 일 하나만 발견되어도 우리 같은 어린 참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훈계였습니다.
말이라도 잘못 했다가 그 많은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이것은 옳지 않고 저것은 안 좋다는 등을 지적하고 바로잡게 했습니다.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힘들고 괴롭기는 했지만, 이로움을 많이 얻었고 대중 속에서 갖춰야 할 성격도 길렀으며 홀로 지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일대일의 왕래를 가장 반대합니다. 일대일의 왕래는 더 많은 대중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중을 초점으로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고, 더 큰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최근 일필자一筆字를 연습할 때 “나는 대중 안에 있다[我在衆中]”라는 글귀를 쓰기 좋아합니다.
기억해 보면, 제가 출가하여 수행을 한 이후로 어디에 있든 항상 단체행동을 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항상 수십 명이 같이 있었지 절대 혼자 먹은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늘 수백 명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물러난 뒤에는 원래 저 한 사람만 주어진 특별한 대우였던 저의 식탁은 식사 때면 어김없이 어디서 알고 오는지 수십 명이 늘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식으로 무척 자유로웠습니다.
식사도 이러했지만, 회의까지도 이러했으니 네가 안 오면 그만이고, 네가 왔으면 나도 거절하거나 참가하지 말라 이야기 않고 환영한다고, 앉으시라고 했습니다. 매사를 모두에게 알게 하는 것 역시 일종의 학습입니다.
저는 차 한 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 안에 저 혼자 탄 적 없고 운전기사와 저 둘만 어디를 간 적도 없습니다. 도리어 ‘정원 초과는 화를 부른다’라는 식으로 차는 늘 만원이었는데, 그래도 또 옆에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님, 저도 타도 될까요?”
“스님, 저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저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자리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라며 한마디만 했습니다. 이리저리 차 안을 살펴봐도 공간이라곤 없으니 직접 상황을 보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자는 소파 옆에서 항상 누군가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 그곳에서 논의를 해도 저는 상관 않고 자던 잠이나 잤습니다. 길을 걸을 때는 누군가와 산책하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적도 전혀 없었으니, 저는 산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거기 앉아 있으면 늘 제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시면 제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젊은이라면 제가 그들에게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오기도 하고 떠나가기도 하지만, 거기에 상관없이 저는 대중 안에 있으며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 될 만한 자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일생에는 너무도 많은 대중이 있었습니다. 출가한 도반·동문, 또는 제자·신도·직원·봉사자 등 모두 저는 대중 가운데 있고, 대중 가운데 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격 덕분에 저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저를 필요로 했으며,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면 저는 반드시 그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불광산은 백만인흥학百萬人興學·천가사원千家寺院·백만공덕주百萬功德主와 같은 많은 사업이 있지만, 무슨 사업이든 모였다 하면 수천수만이 운집했습니다. 저는 이 한평생 3명 또는 5명의 단체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항상 수백만 가운데 하나였으니, 제가 대중 가운데 있다는 말이 참으로 기묘하기 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