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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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관리법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 호까지 3년여 기간 동안 연재해왔던 성운대사의 『인간불교』를 끝마치고 이번 호부터는 『불교관리학』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들어가는 말
본서는 인사 홍법, 사회 홍법, 경찰 홍법, 군대 홍법, 교도소 홍법 등 불교의 전반적인 홍법관리학에 대해 참고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불광산 개산 10년 후, 타이완대학의 한 교수님께서 ‘관리학’이라는 주제로 대학 강연을 요청해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는 ‘불광산을 질서정연하고 조리 있게 관리하고 계신 스님이시라면 불교의 관리학을 충분히 강연해 주실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 무슨 ‘관리학’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불교는 언제나 평화를 원하고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며, ‘관리’를 따로 이야기하지 않으며 대부분 제도나 계율 등의 내용입니다. 불교가 이와 같은 형태라고 해서 ‘관리’가 인사상 어떤 심각한 분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외부에서는 제가 ‘관리’에 대한 특별한 비법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여기며, 저에게 ‘관리학’을 주제로 강연해 주길 바라기에, 저도 불법을 자세히 연구하였더니 불법 전체가 모두 ‘관리학’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관리’한다 해도 작은 일을 더 크게, 큰일은 더욱 심각해지게 만들 수도 있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습니다.
‘관리학’이란 타인과 다투는 것이 아니고 대립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집을 가지거나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서는 더욱 안 됩니다. 참된 ‘관리학’이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하고,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타인과 나 모두에게 이롭고 즐거운 것이어야 합니다. 최고의 원만한 관리란 이러한 것입니다.
어느 제자가 하루는 제게 “스님께서는 일생동안 자신의 성격이 어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선하다 여기면 서슴치 않고 밀고 나가는 것이 나의 성격일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본 편에서는 수많은 관련 문제 해결과 사람 사이의 관계 해결에 제가 어떻게 불법의 경문經文과 의리義理를 적절히 사용하고 방편의 도리로 삼았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자혜慈惠 스님
저는 젊은이들을 곧잘 해외로 파견하거나 아주 먼 곳까지 보내 일처리를 시키고 소임을 살도록 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에 주저하였으며, 자진해서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수많은 제자를 대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중국 양저우(揚州) 국가종교국國家宗敎國 엽소문葉小文 선생과 중국불교협회中國佛敎協會 회장 조박초趙樸初 선생께서 감진도서관鑑.圖書館을 세우고, 나아가 감진대학교鑑.大學校를 설립하려는 데 보시를 희망하셨습니다. 저는 교육 분야에 늘 흔쾌히 공헌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 양저우에 도서관을 세우려면 적어도 2, 3년은 걸리고, 그 지역의 관계자들과 다방면의 교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60여 년 동안 저와 함께 교육 사업을 일구어 온 총림학원 원장 자혜 스님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언어 방면에 능통한 자혜 스님은 저를 위해 일본어와 타이완어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일처리도 능숙하고 분석에 일가견이 있으며, 특히 대외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에 뛰어난 스님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중국으로 파견하려고 하니, 타이완의 비구니가 낯선 중국에서 공사 건설을 진행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처음, 제가 자혜 스님에게 중국의 지방 관계자들과 협약서 체결·세부사항 작성·설계도 기획·도서관 건설 계획을 부탁했더니, 듣자마자 “큰스님! 제가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처리합니까?” 하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저는 자혜 스님에게 계속 권한다 하여도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가길 꺼려하니, 자혜 스님이 내심 다른 사람의 파견을 바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혜 스님이 안 간다니…, 참! 이런 일에 파견할 만한 인재를 불광산에서 찾기 힘든데…. 안 간다면 어쩔 수 없이 제가 다녀오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데 계약서 체결하는 등 중국에 자주 드나들다 보면 다른 일들이 지체될 테데,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겠습니다”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자혜 스님은 자신이 가지 않는다면 제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 한 편에서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국내외로 다니며 내적 업무와 외적 사무를 처리해야 하고, 강연과 공사 등도 두루 많으니 자혜 스님도 제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두 말 않고 “알겠습니다 이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고 나섰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부탁하고 권유할 필요없이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습니다. 자혜 스님 스스로 상황을 고려해 보고 일의 경중도 비교해 보면서 ‘이 일은 나 아니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 자혜 스님은 2년 여의 시간을 들여 드디어 중국 땅에 감진도서관을 설립해 냈습니다.
10년 동안. 대륙의 감진도서관에서 주최한 양저우강단(揚州講壇)은 거듭 문화를 부흥·발전시켰으며, 수백 분의 명사가 이곳에서 강연을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천 명이 넘는 청중이 참석한 젓은 중화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공헌을 이루어냈다 말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자혜 스님의 공로도 분명히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을 달성하려면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그를 감동시켜 스스로 원해서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관리학이라 생각합니다. 이러면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용慈容
초창기 불교의 집회 활동에는 고작 수십 명 정도가 모였고, 힘껏 경전을 강연하고 포교를 해도 200~300명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 타이완에서는 광복절(10.25)과 국경일이 되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총통부 앞에서 행사를 개최한 것 말고, 사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집회라고 해도 모두 200~300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1978년부터 저는 타이베이의 국부기념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말’로만 강연한다면 물론 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강연에 커다란 흥미를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신도들이 불법을 섭수하고 가르침과 교감하게 하기 위하여 중국의 돈황벽화 속에서 표현한 설법의 수승한 장면을 재현해 가르침을 전파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기악과 노래를 통한 설법, 그리고 이와 잘 어울리는 춤을 결합한 강연이야말로 역동적인 방식의 강연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불교의 정신과 활력을 전달한다면 대중의 흥미를 더욱 잘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타이완은 공연을 할 만한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우리에게 이쪽 방면으로 활동하는 인재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 가운데 포교 활동에 뛰어난 자용 스님을 발굴해서 그에게 강연과 공연이 결합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용 스님도 약간 어렵게 느꼈습니다. 국부기념관의 좌석이 3,000석에서 최대 5,000석 규모인데, 그 많은 군중 앞에서 가무를 공연하자면 적합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 외에도 공연하는 사람 역시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자용 스님께 “스님의 여동생이 타이완예술대학 교수 아닙니까?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학교의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도와달라고 동생에게 부탁해 보세요. 노래와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 대중 앞에서 공연해 보면 성취감도 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자용 스님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 방면의 홍법 활동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이로써 불교 포교의 새로운 모습이 생겨나고, 예스러운 전통불교의 포교 형식을 벗어난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후에 국부기념관에서의 공연은 포교 30년 동안 항상 빈자리 없이 청중으로 가득차고도 모자라 가장자리와 통로까지 군중으로 넘쳤습니다.
타이베이 국부기념관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국부기념관 건립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한 행사는 본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으며, 질서정연한 것은 물론, 해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불교를 함축시키고 융합시킨 예능 활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분명 저의 불법 강연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가무가 크게 한 몫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자용 스님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키워주었으며, 홍법의 새로운 형식을 과감히 만들어지게 했습니다.
타이베이 국부기념관과 타이베이, 가오슝 대형장소에서 열린 강연 혹은 불교범패음악회 등이 불교에서 성대한 행사가 된 것은 물론, 이후 사회의 대규모 화롱에도 가부 등을 넣은 공연이 선보인 것은 자용 스님의 영향과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습니다.
‘활동에 대한 관리’는 반드시 모든 인연이 모아지고, 반드시 많은 인재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관리’는 혼자 전권을 휘두르며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참여하게 만들어야 제대로 된 관리학의 활용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