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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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큰 구조라도 우선 외워두자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월은 흘러 벌써 가을에 들어선다. 글 읽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여름 내내 습기로 꿉꿉했던 서책 거풍도 시킬 겸, 눈도 호사하고 게다가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인물들의 삶을 만나니 말이다.
불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치문』의 「귀경문」에는 당시의 풍광을 전해준다. “명창정안 고교조심明窓淨案 古敎照心”이라 했다. 밝은 창가 정돈된 책상 앞에 앉아, 옛 글로 제 마음을 비춘다. 이 글을 쓴 자각 종색 선사가 당시 선원에서 도서를 담당하는 소임인 ‘장주藏主’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로, 한 말이다. ‘고古’ 자에는 ‘세상 시작되기 이전의 본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해인사 성철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보급하는 각종 출판물에 ‘고경古鏡’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본래의 거울’이다. 자신을 비추어 못난 점을 고치는 도구이다. 경전이란 그것을 읽고 그 뜻을 실천하는 속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필자는 아직 ‘독서 그 자체’의 즐거움이 더 크다.


2.
『화엄경』 읽기는 참 어렵다. 전에도 말했지만 어려운 첫째 이유는 양이 방대해서, 둘째 이유는 내용이 심오해서 그렇다. 이래저래 ‘견적’이 안 나온다. ‘견적’이 나와야 어찌해야 할 지 결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9월호에서는 소위 ‘견적’을 내보려 한다. 『화엄경』의 「현담」 여덟째 권, 즉 <황荒>자 권에는 ‘부류품회部類品會’라는 대목이 있다. 이 부분 소개를 시작으로 『화엄경』의 조직을 좀 밝혀보려고 한다. 읽는 이들의 수고로움이 덜어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묘한 발상이 있다. 암만 생각해봐도 ‘묘’하다. 화엄학승들의 발상 말이다. 청량 징관 국사는 “성해지전性海之詮은 상설편설常說.說”이라고 평론하시는데, 즉, 바다처럼 끝없는 진여자성에 관한 말씀은 ‘모든 시간’ 그리고 ‘모든 곳’에서 설해지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하시고 당신도 ‘거시기’ 했는지, 생각이나 말로는 설명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 소위 무수한 ‘버전(version)’의 『화엄경』이 있다고 전하신다. 줄여서 10종의 ‘버전’을 소개하는데, 약본경略本經, 하본경下本經, 중본경中本經, 상본경上本經, 보안경普眼經, 동설경同說經, 이설경異說經, 주반경主伴經, 권속경眷屬經, 원만경圓滿經이 그것이다.


3.
이런 글을 읽는 필자의 관심은, 저 분들이 왜 이런 발상을 하시냐? 대체 이런 말씀을 통해 무슨 뜻을 전하고 싶으신 것이냐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는 『화엄경』을 높이려는 또는 높다는 고백의 ‘뜻’이 담겨져 있다. 둘째는 『화엄경』 편찬 근거는 알 수 없다는 ‘뜻’도 담겨져 있다. 사실 ‘약본경’이라고 하는 『화엄경』의 출생은 누구도 모른다. 소위 ‘대승부’에 속하는 경전들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아함부(또는 니카야)’에 속하는 경전들은 역사적으로 현존했던 석가모니 제자들이 암송해 온 증거가 있다. 그것도 긴 세월, 게다가 서로 오고가지도 않고 떨어져 살던 부파들이 증거하고 있다.
현존하는 『화엄경』은 세월 속에서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 짜깁기 한 것이다. 「십지품」은 『대십지경』, 「입법계품」은 『마하가경』, 「이세간품」은 『도세경』으로 각각 따로 유통되던 것이다. 나아가 「여래명호품」은 『도솔경』, 「정행품」은 『보살본업경』, 「십주품」은 『대십주경』, 「십정품」은 『등목보살소문삼매경』, 「여래수량품」은 『무변공덕경』, 「여래출현품」은 『여래성기미밀장경』으로 별행別行되었던 것이다. 즉 한 마디로 말하면, 『화엄경』의 원형은 알 수 없다. 어디에서 언제 누가 편집했는지도 모른다. 기원 후 2세경 중앙아시아 지역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4.
한문으로 된 『화엄경』의 세 종류 ‘버전(version)’을 모두 한글로 번역한 사례는 운허 스님이 최초인데, 이 번역서들은 1964년 7월 21일 ‘동국역경원’을 설립 개원하고 그곳에서 낸 것이다. 한편, ‘80권본 버전’에는 청량 국사께서 자세한 주석을 붙였고, 그것을 조선 순조 임금 때 백암 성총 스님께서 증광사에서 나무판에 새겨 종이에 찍었다. 모두 78책으로 묶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화엄경』 강의가 전국에 퍼졌다. 필자는 이런 전후의 정황을 ‘화엄르네상스’라고 논문에 소개했다. 그 후 천재 화엄강사들이 출현했고, 일제 말기와 광복을 전후해서 석전 박한영, 그의 제자 운허, 그의 제자 월운 등이 이 전통을 지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엄강사들은 기본적으로 청량 국사의 주석서를 근본으로 강의했다. 일곱 장소, 아홉 번의 모임, 서른일곱품, 즉 7처 9회 37품의 80권본 『화엄경』에 방대한 주석을 붙인 『청량소초』를 열심히 읽었다. 신앙적으로는 법당 한 쪽에 『화엄경』에 등장하는 청중들을 상징화해서 탱화를 걸어 붙이고, 「화엄경약찬게」도 용수보살의 이름을 빌어 제작했다. 한 해의 처음이나, 한 달의 처음이나, 즉 정월과 초하루에 올리는 <신중불공> 의례문도 만들었다.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져서 ‘초하루 법회’를 모든 절이 시행한다.


5.
78책으로 된 『청량소초』는 원체 방대하다. <현담> 8책을 뺀 나머지 70책을 대상으로 최근 반산 서봉 스님이 약간 생략해가면서 번역 출판했다. 한 권에 약 450쪽으로 모두 34권이 된다. 스님은 본사가 남쪽 통도사인데, 멀리 북쪽 봉선사로 와서 고생하면서 글을 배웠고, 마침내 월운 강백으로부터 교학으로 부처님 은혜를 갚으라는 부촉을 받았다. 반산 스님은 위의 번역서를 내면서, 운허 스님께서 번역하신 한글 『화엄경』을, 그리고 월운 스님께서 그리신 『화엄경소초과도집』과 역시 월운 스님께서 탈초하신 『화엄청량소초사기』를 인용한다고 밝혀, 스승들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경학經學의 전통은 이렇게 사법師法이 중요하다.
현재 출판 유통되는 한글 『화엄경』은 직간접적으로 모두 운허의 <한글대장경본>에 신세를 지고 있다. 빨간 장정으로 1966년에 그리고 1968년에 인쇄된 두 책이, 운허 스님의 원 뜻이 그대로 반영된 책이다. 현재 가로 쓰기로 다시 찍은 5권의 책은 요새 사람들이 손을 대서 좀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6.
운허 스님께서 번역하신 빨간 책을 보면, 문단 나누기이며, 어법 구사이며, 어휘 선택이며, 과목 붙이기이며, 독자들은 아는 만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엄의 <수현기>, 현수의 <탐현기>, 청량의 <청량소초>를 깊이 읽으면 ‘차 마시고 경전 읽고 번역하시던 운허당 용하 대종사’의 세계를 엿볼 수가 있을런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2010년 10월 9일 한글날, “앙지미고, 찬지미견仰之彌高, 鑽之彌堅”이라고, 스승 공자님을 회고하던 안연의 말을 인용하여, 사부님을 회고 하시던 월운 스님의 그 말씀. 그 시선. 필자에게는 지금도 생생하다.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으시고, 뚫으려 할수록 더욱 단단하시단다.
경전은 분석적으로 읽어야 본뜻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반복이 많고, 게다가 여러 경전을 대조해 읽으면 모순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함부’ 경전의 경우는 듣는 상대가 제각기 다르고, 한편 ‘대승부’ 경전들은 ‘아함부’를 바탕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붙여서 대형 경전으로 짜깁기를 했기 때문에, 경전은 어느 경우나 ‘조직’ 적일 수가 없다. ‘조직’을 갖춘 경전이 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뒤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결국 경전의 ‘조직화 작업’은 뒷날 제자들의 몫이다. 논리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 심성을 가진 천재들이 ‘경전 조직화’에 큰 성과를 내었다. 그게 ‘교학敎學’이다.


7.
『화엄경』의 ‘조직적 읽기’의 한 축을 형성한 학승이 청량 징관이다. 스님께서는 <현담> 제8권 <황荒>자 권 “별해문의別解文義” 과목에서, 기왕에 전래되는 『화엄경』 읽기에 사용되는 해석 조직 10종류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①본부삼분과本部三分科, ②문답상속과問答相屬科, ③이문종의과以文從義科, ④전후섭첩과前後攝疊科, ⑤전후구쇄과前後鉤鎖科, ⑥수품장분과隨品長分科, ⑦수기본회과隨其本會科, ⑧본말대위과本末大位科, ⑨본말편수과本末.收科, ⑩주반무진과主伴無盡科.
조선 후기 묵암자 최눌(1717~1790) 스님의 『화엄품목』도 이런 전통 위에서 만들어졌고,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화엄경』도 그것을 활용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조직적 읽기의 분석틀로, 위의 ②와 ③이 많이 활용된다. ②는 『화엄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에 주목해서 분석적 읽기를 시도했다. 한편 ③은 『화엄경』 교리의 핵심을 ‘이제인연법二諦因緣’으로 규정하고, 다양하고 중첩적인 ‘원인-결과’ 관계에 주목하면서 분석적 읽기를 시도했다. ②와 ③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필자는 단연 ②문답상속과問答相屬科를 꼽는다. 방대한 경전 속에는 질문을 즉시 대답한 것도 있고, 저 뒤편에 가서 대답한 것도 있어서, 이것을 살펴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각 질문들 사이의 구조도 살펴 읽어야 한다.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본> 『화엄경』과 묵암 스님의 『화엄품목』을 항상 대조하면서 ‘구조 파악’에 주목하면서 읽기를 권한다. 이 둘은 화엄교가의 필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