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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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향기에서 묘용의 면목을 만나다

 청량사 카페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에서


이서연
시인


경험 못한 신열을 앓은 것 같다. 지난 여름은 자연을 훼손하는 이들을 향한 하늘의 분노가 울음으로 쏟아진 빗물과 잎새라도 뚫어낼 듯한 햇살에 불붙은 더위가 몸부림쳤다. 삶의 자리가 흙탕물로 채워지면서 섭리의 불가항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그 또한 지나갔다. 약속 없이 왔고, 기약 없이 가는 세월이 한 점 바람이었다. 하늘에 겹겹의 구름을 옮기는 바람. 사는 게 야단법석인 자리에서 부서지는 것이 어찌 바람뿐이겠는가, 다 그런거지 싶은 시간들이 여름을 다 덮고 갔다. 미세한 흔들림이 겉잡을 수 없는 회오리를 만들어 삶의 복판을 강타하는 일 없이 인생 접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나치게 민감한 감정이 풍경소리만 더 요란하게 만드는 것이란 생각에 찾아간 청량산. 유불선儒佛仙교의 발상지로 퇴계 이황 선생이 어린시절부터 이 산에서 사색을 즐겼으며,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서도 틈틈이 찾아오실 만큼 매우 좋아했다는 산답게 입석대부터 바람맛이 범상치 않다.
힘껏 굴려 온 인생에 삐걱거리는 일이 생기면 뿌연 안개 같은 시야에 보이는 건 일그러진 바람, 그리고 검은 그림자만 안개 낀 숲을 기웃대는 것 같고 귓가에 들리는 건 악다구니 같은 장송곡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럴수록 푸른 바람을 마실 필요가 있고, 이왕이면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에서 마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바람이 만져진다 부처의 살결같은
바람이 젖어온다 부처의 입술같은
바람이 오늘 불어 좋다 살아있는 이 순간  
                                             -<이 순간> 전문-


청송에 가면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 가로 46m 세로 6.5m나 되는 야송 이원좌 화백의 역작 ‘청량대운도’가 있다. 이 어마어마한 그림만으로도 청량산이 태백산 줄기 중앙산맥의 명산으로서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릴만함을 알게 된다. 이 아름다운 청량산 연화봉을 바라보는 연꽃의 꽃술 같은 자리에 청량사는 지금도 운무가 끼는 날이면 기암절벽에서 뿜어내는 신비한 기운에 저절로 선경仙境의 자리임을 실감한다. 입석대에서 원효대사 구도의 길을 따라 청량사로 향하면 바람을 마주하며 오르는 가파른 산길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시문이 있다.
“묻노니 청량산 어떠하던고/하늘이 열어놓은 보탑이라네/적성노을 대낮에 표지가 되고/바윗물엔 하늘빛 쏟아 내리네/험한 돌길 승려는 잘도 다니고/높은 솔 송학은 졸다가 깨네/고운은 숨은 고인 기꺼워하니/한 잔 술로 영령들 위로하리라” 청량산 도량에서 도를 닦는 이들을 느껴보는 감동이 어찌 이 시대 나만의 감정이겠는가. 청백리의 상징 신재 주세붕 선생님이 시에 담긴 진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에서도 나타나 있지만 금탑봉 중층에는 고운 최치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최치원 선생이 마신 후 과거 준비를 하던 선비들은 물론 맑은 기운을 얻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마셨다는 총명수와 잠시 고운이 기거했던 암자 터가 여전히 신령스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끈다.
청량사로 들어가면 원효대사가 문무왕 3년(663년)에 창건한 도량답게 삼각우송이 오층석탑 의 풍경을 한층 운치있게 해 준다. 이 절을 창건하던 당시 아랫동네에 뿔이 셋 달린 소가 있었는데 이 소가 농부의 말을 듣지 않자 원효스님이 소를 절 짓는데 시주하게 하였다고 한다. 절에 온 소는 마치 불사를 위해 온 듯 절집을 짓는데 험하고 힘든 일을 다 하더니 준공 하루 전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소를 도량에 묻고 재를 지내 주자 소가 묻힌 자리에서 소나무가 자라더니 가지가 삼각우의 뿔처럼 세 갈래로 뻗어 삼각우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도통하는 것을 ‘소 찾는 것’이라 한다. 절에 심우당尋牛堂이 있고,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진 것에서 불교와 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도가에서는 소가 하늘이자 지구의 지축을 상징한다. 소를 찾는 수행자들의 수도처를 원효스님이 이곳에 마련한 것이 도맥과도 통하는 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자리가 되어 기도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공민왕의 친필이 새겨진 유리보전에서 약사불 영험을 빌어본 사람들은 느끼지만 번뇌에 시달린 마음을 치료하는데 그만인 도량이 아닌가 싶다.


연꽃이 꽃술자리 하늘이 마련하니
약사불 영험이야 비는 사람 몫이어라
번뇌가 어지러운 날 바람소리 만나보자
여여한 심장자리 어느 부처 상주할까
사리탑 세 번 돌면 그 체온 느껴질터
허무가 쏟아지는 날 청량산에 올라보자
               -<바람이 소리를 만나는 자리-청량산 청량사> 전문-


어풍대에서 청량사 전경을 바라보노라면 비록 급경사에 세워져 있지만 빼어난 암벽들 속에 피어난 꽃처럼 보인다. 이 자리에 머무는 바람은 색이 다양하다. 하늘의 소리를 모아 오는 바람은 하늘빛, 솔향을 모아 오는 바람은 솔빛, 총총한 별들의 소근거림을 모아 오는 바람은 별빛이다. 게다가 요즘은 지현스님의 원력으로 수 년간 불사한 도량에 뿌려진 채송화가 가득해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빛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채송화는 ‘청순 가련함, 순진, 천진난만’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지만 이 꽃을 청량사에서 가득 피운 이유를 나름 생각해 본다. 이 꽃은 몸을 숙여야 자세히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저절로 겸손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꽃이 아침에 피어 오후에 지면서 11월까지 오랫동안 새로운 꽃을 보여 준다. 즉 비록 작지만 정조와 순정의 의미를 보여 준다. 또한 한낮의 햇살이나 가뭄, 척박한 곳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보이며, 바람이 잘 통하고 건조해야 더 아름다움을 오래 볼 수 있어 인내를 배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꽃씨가 마치 부처님의 손길처럼 널리 퍼져 필요한 곳마다 피어난다. 가냘퍼 보이고 엷은 꽃잎이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동자들의 미소를 보여 주고 있어서 일까 오래전부터 어린불자들을 위한 포교에 전력을 다하시는 지현 스님의 사상이 채송화 꽃밭에서도 잘 느껴진다. 하늘의 별들이 땅에서 꽃을 피우는 모습, 즉 이제 청량산의 바람은 천지만물의 빛을 모아 청량사에 뿌리며 그 묘용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눈이 채송화 꽃물로 가득 차고, 가슴에 묘용을 부리는 바람이 일렁여 잠시 마음을 쉬려고 안심당安心堂으로 들어갔다. 안심당은 청량사 문화원으로서 포교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전통다원으로 꾸며졌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다원이름이 청량사를 가장 선적이면서도 시적인 사찰로 기억하게 한다.      
기왓장에 새겨딘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묘용의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도다”는 구절을 읽으며 나 역시 고요히 앉아 갈바람차와 백련차를 마셨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는 자리에 꽃향은 차가 되고
 차향은 다시 바람이 되어 풍경을 건드린다
 묘용의 이치야 하늘의 섭리로 움직이지만
 내 마음은 한 모금 차향따라 고요로 들어가
 원효도 만나고 고운도 만나고 신재와 고운도 만나니
 곧 부처와의 만남도 멀지 않은 듯 하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는 자리에서-청량사 다원>-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늘을 한 번 바라보다 하늘빛 저 바람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리니 그동안 여기서 모아 둔 그리움, 아껴 둔 외로움 그런저런 상념의 그림자들을 내려놓고 가도 괜찮지 않을까 여기며 차 한 모금 마지막 향까지 마시고 청량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