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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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풀’의 정신






   성운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작은 풀이라고 얕잡아 보면 안 됩니다.
담장이나 절벽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풀 한포기가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올 때, 비바람이 쳐도, 뜨거운 태양이나 밤이슬이 내려도 언제나 꿋꿋이 싹을 틔웁니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아주 조용히 세상 사람을 향해 생명의 자태를 보여줍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작은 풀 한포기 앞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분발하지 않는다면,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작은 풀들은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를 작다고 못났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풀의 정신입니다.
불경(佛經)에 ‘네 가지 작은 것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주 주변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작디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울 수 있고, 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돌아서 바다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한 씨앗 한 알이 자라서 풍성한 과실이 가득 열리고, 나사 못 하나가 일부 기계의 정상적인 작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작다고 하여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크기는 비록 작지만 오히려 크게 쓰임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린 왕자도 장성하면 왕위 계승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할 수 있고, 어린 소녀는 장래 왕비가 되어 만백성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사미승은 시일을 빌려 학문이 이루어지면, 온 세계의 모범이 되는 이름난 법왕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 용은 자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며 천하에 위엄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는 하나의 세계요, 꽃잎 하나는 한분 부처님이다’고 하는 것은 모래 한 알, 돌 하나에도 모두 다 삼천 세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동진(東晋)의 불도징(佛圖澄, 232~348)은 신비한 기적을 보이며 마침내 돌미륵을 감동시켜 한인(漢人)들의 학살을 막았고, 남송시대의 빙도(憑道)는 한마디 말로 요금(療金)을 설득시켜 대량학살을 막았습니다. 신비한 기적 한 번으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하였고, 한 마디 말로 천하의 백성들을 도탄에서 벗어나게 했으니 작다고 경시할 수 있겠습니까.
달마 대사(達磨大師)가 던진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너를 편안하게 해주마!”라는 한 마디는 결국 이조(李祖) 혜가(慧可, 487~593)를 배출했으며, 계침 선사(桂琛禪師, ?~928)의 “돌을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무겁지 않느냐?”는 말 한 마디는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의 법안을 열어 도를 깨치는 아름다운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고 하였으니, 작다고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는 먼지를 털고 청소하면서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었으며, 유방은 작은 고을의 장에서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홍랑(紅娘)은 비천한 노비 신분에서 고관과 거상(巨價) 중에 중심인물이 될 수 있었으며, 사행(四行) 창고의 양혜민(楊惠敏)은 비천한 소녀군사였지만 오히려 백만 대군도 할 수 없는 큰일을 해냈습니다.
7세의 묘혜동녀(妙慧童女)는 대승불법을 설 할 수 있었으며, 보타산의 어린 사미승은 총림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감라(甘羅)는 12세에 재상이 되었으며, 항탁(項)은 7세에 공자(孔子)와 더불어 변론을 하여 공자스승이라 불렀습니다. 조영(祖瑩)은 8세에 시경과 상서를 외워 당시 사람들이 ‘어린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선이 작다하여 안 베풀지 말며, 사람이 작다하여 얕보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풀’의 정신인 것입니다.
제영()이 아버지를 구하고, 화목란(花木蘭: 영화 ‘뮬란’의 주인공)이 아버지 대신 종군한 것은 연약해도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풀’의 정신입니다.
드높은 산 정상에 서서 깊고 깊은 바다 밑을 가노라,
내 그 무엇을 마다하랴? 이것 역시 ‘작은 풀’의 정신입니다.
단아한 방은 구태여 클 필요가 없고, 꽃향기는 꽃의 가지 수에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작은 풀’의 정신만 있다면 천지간에 신명을 편안히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