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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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선선야禪優先善也

현재호
연세대학교 의료공학 박사과정|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blog.daum.net/hyun-jaeho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면 분수대로 나누어주라.”…… 《선가귀감 . 46》
이번 달은 “선禪 보다 우선이 선善이다”라는 제목으로 ‘선善’의 중요성을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불교 공부를 하다 보면 ‘선禪’을 만나게 됩니다. 이른바 선법禪法이라 하여 참선, 좌선을 비롯하여 ‘선禪’을 추구하는 불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일본이 서방에 먼저 알리게 되어 ‘Zen’으로 불리는 ‘선禪’. 하지만 올곧은 ‘선禪’을 위하여 먼저 행하여야 할 것이 있으니, 이 또한 ‘선善’이라 합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선禪’, 그것은 ‘선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자기 마음 안에서 찾게 됩니다. 진정한 ‘선善’이 뭘까요?
왜? 부처님은 가난한 사람도 남들에게 보시布施를 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왜? 그 대상의 조건(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의미)을 가리지 말고 보시를 하라고 했을까요?
왜? 보시를 하되 이름을 남기지 말고, 보시한 기억 마저 잊어버리라 했을까요?
부처님의 명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려 하지 말고, 철저히 따지고 밝힌 후 따르라”
그래서 부처님 말씀대로 위에 세 가지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선善’과 ‘선행善行’에 대하여 불자님들과 법담法談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본 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선가귀감-49》
누구에게나 천진한 마음이 있습니다. 천진한 마음은 태곳적 어린아이의 마음입니다. 그때 그 마음, 오염되지 않은 그 마음이 바로 천진한 마음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오염되어 이제는 천진한 마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잃어버린 마음이 아니라 잊어버린 마음이라 합니다. 천진한 마음을 잃어버렸다면 찾기 어려울 것이나 잊어 버렸다고 하는 것은 잠시 자기 자신이 천진한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에 마음만 먹으면 담박에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그래서 천진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천진한 마음이 이미 우리한테 있으니 그것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우리들이 천진한 마음을 되찾고 간직할 수 있도록 갖가지 꿀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밀경蜜經》.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법화경(묘법연화경)》’일 것입니다. 법화경의 많은 이야기의 핵심은 ‘선행善行’입니다.
모든 경전이 비슷한 것 같아도 서로 지향하는 핵심이 있습니다. 예컨대, 보리심菩提心의 증장을 위한 ‘관세음보살보문품’이 있다면, 보리심을 행하고 간직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금강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고통 받는 불자들에게 근기根機에 맞는 부처님의 명호 또는 암송하여야 할 경전을 소개(또는 지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법화경’은 근기에 관계없이 필독 경전이라 할 만큼 세속의 삶과 불가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경전이라 하겠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선행善行’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법화경’ 단 하나만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남무묘호랭게(南無妙法蓮華)교敎’라는 ‘교敎’가 있습니다. 묘법연화경이 인간세상과 자연세상의 근원(선善)을 근간으로 하다 보니 경전 하나 만으로도 하나의 ‘교敎’가 만들어 졌나 봅니다.


[우리는 잠깐만이라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선행’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묘법연화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이 ‘선행’을 조명 했는지에 대해서…… ]


2. ‘선禪’에 대한 잘못된 접근
‘선禪’을 고려하는 불자님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성격이 급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선禪은 급하게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며 선善을 배제하고 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불교(또는 경전) 공부를 함에 있어서 ‘선禪’을 상위 계층으로 고려하는 것
불법佛法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나면 선법禪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선법禪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뭔가 많이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자 하는 것
선禪문답이라는 미명아래 엉뚱한 질문과 답변을, 마치 공부를 많이 한 듯 착각하는 것


많은 분들이 선禪에 관한 공부를 하시지만,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불법佛法에서 중요시 하는 선善을 간과 했거나, 선善을 안다 하여도 실행하지 않아서 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진언을 빠르게 암송하는 것을 ‘선정’에 빠졌다고 표현하거나, 숨 안 쉬고 다라니경을 한번에 암송한다거나, 삼매의 경계를 빠른 시간 안에 경험하고자 하는 등, 빠른 결과를 얻으려는 잘못된 접근으로, 오히려 상기上氣병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지난 호에 ‘점漸’이라는 것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불법佛法에 있어서 스님도 아닌 일반 불자에게 무슨 단계가 있겠습니까? 조급함을 버리고 점漸의 원리를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실행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쌓이고, 진심으로 선善을 행行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도 어느덧 선禪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 없이 엉뚱한 선禪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은 아마도 세인들에게 ‘사오정’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3.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선善’, 그것이 무엇이길래?
‘착할 선善’ 이지요. 그리고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선행善行) 선행이 좋은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무엇이 선행인지 명확히 이야기 하는 분은 의외로 적습니다. 예컨대 선행은 ‘금일봉’으로 기부 하거나,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거나, 양로원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하거나, 오지에 가서 길을 닦아 주는 등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행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선행이라면, 선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선행이라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여야 하며, 시간도 많이 여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의 선행은 저 멀리 자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아주 쉬운 선행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결국 불법佛法이란,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여 선善하게 만들자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선禪을 닦는 것은 옵션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선善의 사전적 의미대로 착하게 살다가는 억울한 일만 생길 것이라는 생각, 착하면 당한다는 관념을 없애주고, 진정한 선善은 악惡을 물리친다는 세상의 이치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불법佛法 아니겠습니까?
왜, 선善을 중요시 하였는지?
선善이란 무엇인지?
선善을 실행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선善을 생각하며 실행하는지?
선善이 몸에 배었는지?
이러한 답변을 얻기 위하여 바로 실습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실습 후에는 아마도 스스로 답을 얻으실 것입니다.


4. 생활 속의 ‘선善’, 진정한 ‘선행善行’은 뭘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행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상我相’을 버리면 선善이 찾아온다는 어려운 이야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손쉬운 방법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겠습니다. 여기 열거된 내용을 실천하시고 응용하시면 자연스럽게 선善이 쌓이고 우리의 마음이 정화됩니다. 열거된 선행은 아무런 노력도, 시간도,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을 낼 뿐입니다.
윗집 아이가 쿵쾅거려서 시끄럽고 기분 나빠요!
내 주변에 생긴 일을 내 자신이 마음대로 제어 할 수 없다면 이것은 천재지변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윗집 아이를 내가 가서 뛰지 말라고 하여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 아이가 커서 연금내면, 나는 그 연금을 받아서 생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윗집 아이 건강한 것은 내게 행운입니다. 긴 시간 기준으로는 감사한 일입니다.
운전 중에 내 앞에 팍~~ 끼어들어 너무 놀랬어요. 저런 저 몰상식한 사람 같으니!
아마 그 사람은 부모님이 위독한지도 모릅니다. 응급실에 가는 것이지요. 혹은 복통이 나서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수도 있어요. 빨리 화장실을 가야만 해서 매너 지킬 마음에 여유가 없나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 어서 사고 없이 빨리 가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아니 왜 다니지도 못하게 노보살들은 법당 뒤에 기대 앉는 거야?
양반다리 하고 앉을 수밖에 없는 법당은 허리 아픈 사람들에게 아주 고역입니다. 더욱이 나이 들어,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법당 가기도 힘든 상황에 가까스로 나와 벽에라도 기대있지 않으면 어쩌나요? 나도 나이 들고 병약해지면 뒤로 가서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늙고 약해집니다. 그들을 도와주지는 못해도 이해라도 하면 내 마음은 얼마나 예뻐질까요?
분식집에서 내놓은 간판이 바람에 넘어졌네~~ 하하하 우습다.
‘저 살려고 내 놓은 간판 내가 알게 뭐야~~’ 이러지 마시고, 슬그머니 허리 숙여 쓰러진 간판을 일으켜 세워놓고 가셔요. 그 복을 언제든 받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내게 문제가 생기면 누구든 나를 도와줄 사람을 지금 만드시는 거예요. 내가 나 몰라라 하면, 남도 나를 나 몰라라 합니다. 어쩝니까? 세상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데…… 손님이 많은 식당은 음식 맛이 좋다기 보다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내가 벌려고 하지만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는 사람은 남(손님)입니다. 나 잘랐다고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타심利他心입니다.
에구! 누가 길거리에 우유 껍데기를 버렸네?
흉보시면 안 됩니다. 모르고 떨어뜨렸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괜히 흉보시면 ‘기어중죄’ 만드시는 겁니다. 슬그머니 주우세요, 그리고 좀 가다가 휴지통 나오면 넣으세요. 남들이 이 모습을 보면 뭐라 하겠어요? ‘어머 저 사람 멋지다’라고 할 것 같아요? 아니면  ‘어머 저 사람은 쓰레기 주우며 다니네’ 하겠어요? 우유 곽을 버린 사람이 제게 선행의 기회를 주었군요?
걸인을 만났어요! 우체국에서 거스름돈 받고 보니, 옆에 초록색 불우이웃 저금통이 있네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선善을 쌓을(적선積善)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냥 지나치시면 안돼요. 동전 한 잎이라도 좋으니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진심의 마음을…….


5. 소크라테스와 노자老子의 덕담
소크라테스에게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제자 : “스승님 결혼을 해야 하나요 하지 말아야 하나요?”
소크라테스 : “하게나.”
제자 : “결혼 후 아내가 어떻게 바뀔지 불안해요.”
소크라테스 : “아내가 착하다면 자네는 행복할거고, 아내가 나쁘다면 자네는 철학자가 되겠지.”
노자는 일찍이 ‘악은 선감’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옷을 만들려면 옷감이 필요하듯, 선을 만들려면 선감이 필요하다고…… 선善을 지으려면 악惡이 있어줘야 한다고…… 여러분의 포용심이 여러분의 선善을 살찌워 드립니다. 눈 앞에 펼쳐진 기분 나쁜 상황, 그것들이 여러분을 선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시면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활에 선善을 끌어 들이신 후 ‘천수경’을 읽어 보세요, ‘보문품’을 보세요. 정말 느낌이 다릅니다. 꼭 느껴보셔야 합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진정한 깨침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6. 무재칠시無財七施의 기반은 선행善行이다. (무재칠시 : 재물 하나 없이도 가능한 일곱 가지 보시)
선행은 이와 같이 정말 쉬운 것이랍니다. 선행善行 없이 도道와 선禪을 닦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천부당 만부당 한 일이지요. 선善은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善은 곧 각覺, 선禪 그리고 불법佛法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여유가 없을수록 선善을 빨리 쌓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것이 각박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부처님은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설說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참!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선행 후에는 싹~ 잊어버리세요. 그래야 몸에 배거든요.
선행 했다고 자랑해서도 안돼요. 그냥 잊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