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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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얼마 전 후배 하나가 출가했다. 50이 다 된 나이에 “더 이상 이대로 살 순 없다”며 늦깎이 출가를 한 것이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출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을 때 나는 두 말 않고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축하의 의미로 식당에 데리고 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게 했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한 마디 했다.
“처음엔 돌을 만져주고 살다가, 중간엔 사람을 만져주고 살다가, 이젠 마지막으로 마음을 만져주고 살러 가구먼.”
후배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다.
C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젊은날부터 돌조각보다는 마음조각을 더 많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가 돌조각과 마음조각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지압사였다. 대학시절부터 기수련을 많이 한데다 운동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후배는 지압을 배워 (오로지 생계를 위해) 대중목욕탕에서 지압을 해주는 일로 한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후배의 늦깎이 출가는 젊은날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그렇게 마음조각을 찾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십 몇 년 전, 어느 영성수련회장에 나도 마음조각을 찾기 위해 갔고, 후배도 마음조각을 찾기 위해 왔던 거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 그 강렬한 눈빛과 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영성수련회장에서 이십 몇 년 만에 그 후배와 다시 마주친 것이다.
후배의 강렬한 눈빛과 인상은 그제나 이제나 똑같았다. 다만 박박 깎은 머리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과 한층 평온해진 얼굴빛이 그 동안 못 만나고 산 동안의 후배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후배는 나에게 조용히 출가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길을 물었다.
그의 출가는 퍽 아름다운 결정이었다.
인도에서는 인생의 주기를 네 단계로 나눈다. 학습기學習期와 가주기家住期와 임서기林棲期와 유행기遊行期다.
학습기는 태어나서부터 25세까지로 학교에 다니며 경전을 공부하고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시기다.
가주기는 26세부터 50세까지로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고, 돈을 벌며 사회적인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시기다.
50세가 넘으면 인생의 급회전이 시작된다. 임서기다.
임서기는 말 그대로 집을 떠나 ‘숲에 깃들어 사는 시기’를 말한다. 가족을 떠나 (출가해서) 숲속에 혼자 살며 명상과 고행을 통해 삶의 대 자유를 얻기 위해 부단히 수행하고 정진하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대략 75세까지를 이 기간으로 본다.
마지막 유행기는 그런 수행과 정진을 통해 얻은 초탈超脫의 경지로 삶의 모든 고苦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편력하며 죽을 곳을 찾아 떠나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임서기다.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먹고 살만한 나이에(우리나라 얘기로 치면 한참 잘 먹고 인생을 즐기며 살만한 나이) 인도인들은 왜 가족을 떠나 숲으로 갔을까? 그 동안 쌓아올린 부귀공명과 사회적 토대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괴나리봇짐을 싸들고 숲으로 들어가 고생을 자처했을까?
여기에 인도인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인생 50이 넘으면 인간은 누구나 현저히 육체적인 힘이 떨어진다. 종족을 번식할 생물학적 에너지도 거의 소진된다. 자칫하면 거꾸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도 남자들은 50이 넘으면 단호하게 집을 떠나 숲으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인도인들에게 임서기가 중요했던 이유는 또 있다. 가정을 일구고 사회적 책무와 의무를 다하느라 밖으로만 내달리고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안으로 되돌리기 위한 탈바꿈의 시간이 임서기였던 것이다.
임서기는 밖으로만 치닫던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단행斷行하고, (이제 자신이 없어도 처자식들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으므로)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갖기 위해 숲속에 오롯이 들어 자기 자신에게만 직면하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하고. 그러다가 대 자유의 길을 찾으면 그들은 다시 단호하게 숲을 떠나 죽을 때까지 세상을 유랑하다 죽을 곳에 가 죽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대 자유의 삶인가? 해탈의 삶인가? 어쩌면 이것이 인간이 끝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그리고 가야 할, 대 자유의 길이고, 대 자연의 길이고, 행복해탈의 길이고, 구원의 길이 아닐런가?
풍문에 후배가 행자생활을 아주 열심히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늦깎이 행자생활이 쉽진 않을 텐데 온힘을 다해 행자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에 후배 모습 위로 내 행자시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기쁜 눈물이 났다. 늦깎이 행자시절을 보내면서 나도 참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힘든 여정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만이라도 이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자생활을 할 때는 그리도 고달프고 힘들게 했던 은사님과 사형들이 서운하고, 인간적인 모멸감도 많이 느꼈지만, 그것이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고 수행과 정진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출가를 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6개월 뒤 파르라니 깎은 머리로 해맑게 나타날 후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후배를 위해 나도 마음의 향연을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후배의 모습에 뒤지지 않게 내 마음청소를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 그래서 더욱 준엄한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