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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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과 연민으로 변화하는 오늘을 살라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나를 사랑과 연민으로 변화하는 오늘을 살라.”


고통. 그 원인을 살피네
몸을 사유하고 감각과 마음을 챙기네
공성의 지혜만이 유일한 나침반
찰나 매 순간 변화하는 마음이 보이네
내 의식이 머무는 곳이 비로소 없음을 알아차리네
괴로움은 나의 안락을 원함에서 생하니
원만한 붓다는 타인을 이롭게 함에서 생하니
오로지 무량한 보리심으로 중생을 살피도록 하소서.
-14대 달라이라마, 다람살라-


월칭보살께서는, ‘세간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가는 것과 오는 것 그리고 발생과 소멸이 이름으로 명해져 존재한다고 사유되는 것은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계의 명제를 기반으로 실제로 명백히 그러한가를 면밀히 살펴보면 실상이 본래 발생하고 소멸하는 그 무엇의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공성의 지혜로써 분석할 수 있습니다. 무상의 정등각을 성취하신 석가모니 붓다는 상호의존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일체 자성이 가고 오는 것이 없음의 실체를 스스로 깨달아 증명하셨습니다.
의존하여 발생하였기에 소멸합니다. 우리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성이 있다 여기기에 번뇌가 일어나며 허물이 생겨납니다. 그러한 현상에 집착하게 되면 장애를 일으킵니다. 이를 소지장이라고 합니다. 번뇌로 인한 흔적 다시 말해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는 바를 해체하여 깊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는 티베트불교의 수행 차제를 정립한 제 쫑카파 대사의 탄생과 열반 600주년입니다. 쫑카파 대사는 문수보살을 뵙고 공성의 난해함에 의문을 들어 의중을 구하였습니다. 문수보살은 보다 더 공덕과 복덕 자량을 닦는 수행에 정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표현하는 말로 삶은 괴로움이라고 정의를 하지요. 고통은 업의 결과물이자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합니다. 업은 번뇌에 의해 생겨나며 번뇌는 왜곡된 분별과 망상에 의해 생겨납니다.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하여 대상이 마치 내가 사유하는 바와 같이 실제 한다고 여기는 것을 일컬어 망상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망상을 진실하다고 여기며 이에 집착하면서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중생의 근기와 성품에 따라 그에 준하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멸하는 수행의 차제를 밟아 가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그러한 근기에 맞추어 법을 설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불교는 법당에 조성된 거대한 황금 불상을 향하여 자신의 몸을 낮추어 절을 하는 것이 하심을 하는 방법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정작 하심의 대상은 불상이 아니라 나와 마주한 사람이자 이 세상이라는 것을 망각시켰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우선 설명을 잘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법우 또는 스승에게 법을 듣고 합당하게 논리적인 방식으로 사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지닌 사유의 힘과 지혜가 수행자 본인의 자량입니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거듭된 분석으로 모순점 또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로소 희망적으로 변화되고 발전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 편제한 집착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은 사랑과 인내 그리고 인욕으로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실상의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아 인식하고 실천하는 대는 오로지 공성의 지혜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적천보살의 입보리행론에서 이르기를, ‘세상의 모든 고통은 나를 위하는 마음 때문에 비롯되며 세상의 모든 행복은 더불어 위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자아에 자리한 이기심과 이타심의 무게를 진중히 가늠해 봐야 합니다. 더불어 내가 지닌 이기심의 허물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로지 나를 위하는 마음은 근거도 없으며 논리적이지도 않음을 알아차릴 때 아무 쓸 곳이 없는 아집은 서서히 제거되고 이타심이 증장됩니다. 이기심의 본질을 헤아려 보면 타당한 근거를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비단 인간의 역사를 회자해 보십시오. 말 그대로 번뇌로 인한 업의 인과입니다.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때이며 그 역할은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맑지 않고 악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변에서 나를 타락시키며 벗이라는 가면을 쓴 이들을 잘 선별해야 합니다. 심지어 스승을 악한 벗으로 만나는 것만큼 큰 불행도 없을 것입니다. 이생에 대한 집착에 연연한 만큼 이별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작 죽음에 임박하면 부와 명예의 산물들을 단 한 푼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이 생명 지닌 이라면 반드시 도달할 임종의 순간,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싶을까요. 긴 시간 사랑한 사람과 이별하고 육신의 처소를 버리는 때는 곧 옵니다. 정작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부디 선한 인연으로 선지식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붓다에게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수행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정돈해 가야 합니다. 불보와 법보 그리고 삼보에 귀의하여 수행의 여여한 벗으로 삼으십시오. 붓다는 오로지 바른 법의 이치를 보이는 분입니다. 맑고 바른 법에 의지하고 따르면서 오늘도 붓다에게 보다 더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