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꼭 읽어야 할 화엄경
    반야샘터
    시심불심
    시심불심
    불서
    선지식을 찾아서
    산사카페
    인간불교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5) 『화엄경』에 등장하는 교리 양상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 현담의 <황자권黃字卷>과 <우자권宇字卷>에서는 ‘입교개종立敎開宗’이라는 과목을 설정하여, 중국과 인도 지역에서 유행했던 각종 교리와 그에 따르는 학파들을 나누어 평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황자권>에서는 중국을, <우자권>에서는 인도로 각각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번호에는 인도지역에 한정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그 내용은 소위 ‘교상판석敎相判釋’에 해당한다. ‘교상판석’을 줄여서 교판이론이라고도 한다. ‘교상’이란 ‘교’의 양상이라는 뜻이고, ‘교’란 언어 문자로 표현된 체험의 내용을 말한다. 체험의 내용 자체는 ‘의義’라고 한다. 이 모두 훈고학의 전문 용어로서 처음 들으면 생소할 수 있지만, 경전의 교리 내용을 이해하는 데여는 큰 도움이 된다. 이하에 화엄교학에서 분석하는 교리들 양상을 간단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그들은 경전 속에 나타나는 교리들의 양상을 다섯 부류로 나눈 것이다.


1.
인천교人天敎의 교리 행은 대개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처음 불교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과거·현재·미래 3세에 걸쳐 자기가 지은 업으로 인하여 선악의 과보를 받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를테면 아주 못된 10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중간 정도의 10악을 지으면 아귀에 떨어지고, 가벼운 10악을 지으면 축생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10선을 아주 잘 행하거나 남에게 재물 등을 보시하거나 계율을 지키면, 그 결과로 욕망이 모두 충족되는 6종류의 하늘나라에 태어나며, 4종류의 선정과 8종류의 선정을 닦으면, 욕망으로부터는 자유로우나 육체적인 한계가 있는 세계에서 태어나고, 더 나아가면 욕망이나 육체의 그 어디에도 지배를 받지 않는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2.
소승교小乘敎 교리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살과 뼈를 이루고 있는 물질적 요소와 사고판단 작용을 하는 정신적 요소가, 끝없는 옛적부터 이어져 오는 인연의 힘 때문에 찰나마다 생주이멸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마치 졸졸 흐르는 물과도 같고 활활 타오르는 불과도 같다.
인간의 몸과 마음도 임시적으로 화합한 것이지만, 그 존재가 흡사 한결같고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범부와 어리석은 이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 하고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가 화합해서 생긴 몸과 마음을 집착하여 ‘나’라고 믿는다. 그러고 나서는 이 ‘나’를 보배로 여기므로 탐냄 따위의 3독이 곧바로 생긴다.
이 3독이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이 다시 몸과 입을 발동시켜 갖가지의 업을 짓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업이 이루어지면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의 다섯 길로 윤회하면서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즐거움을 겪기도 하고, 색계·욕계·무색계의 3가지 환경 중에서 제가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세상 또는 나쁜 세상에 태어난다.
이렇게 해서 받은 몸인데도 이것을 도리어 ‘나’라고 집착하고, 다시 그것에 탐심 따위를 일으켜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란 태어나서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마침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우리가 사는 환경 세계도 생성되어 일정기간 유지되다가 점점 파괴되어 마침내는 소멸했다가 다시 또 생성된다.
위와 같이 윤회하는 원인은 이 몸이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왜 ‘나’가 아닌가 하면, 이 몸은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가 서로 임시로 화합하여 지금의 모양이 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색계·욕계·무색계의 3계 속에서 일어나는 유루有漏의 모든 선과 악에 마음을 두지 말고,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는 무아관의 지혜를 닦아 탐내는 행위, 성내는 행위, 어리석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모든 업을 짓지 않아야 ‘나’는 실로 공하다는 참 모습을 깨친다. 그리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어, 나의 몸이 있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 잊고 모든 지혜마저도 말끔하게 끊어버려, 마침내는 모든 괴로움을 끊어버린다.


3.
대승법상교에서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오래 전부터 원래 항상 8종의 식識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제8 아뢰야식이 근본이 되는데, 그 식이 갑자기 전변하여, 인간의 감각기관과 몸뚱이와 중생이 사는 자연환경 속에 간직된 종자에 변화를 주고 싹을 틔워 제7식인 말나식을 만든다. 이렇게 아뢰야식은 스스로가 변해서 자기 자신의 인식 대상을 만들어내는데, 거기에서 나온 모든 존재는 전혀 참된 존재가 아니고 다만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떻게 변하는가? 말하자면 아뢰야식에 축적된 종자 속에 습관적으로 배어버린 힘, 즉 ‘나’와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가 실체로서 영원하게 실재한다고 사량 분별하는 잠재적 힘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식識이 생길 적에 ‘나’와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그리고 거기에 무명에 물든 제6식과 제7식 때문에, 이 두 식에 반영된 것을 가지고 거기에 실체로서 불변하는 나와 나를 이루는 요소가 실재한다고 집착한다.
이는 마치 병들거나 꿈꾸는 사람에게 병과 꿈의 힘 때문에 가지가지 허망한 대상과 여러 물체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 꿈속에서는 그 물체들이 실로 있다고 여기지만, 그 꿈을 깬 후에는 마침내 꿈 때문에 그런 것들이 나타난 것인 줄 알게 된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아뢰야식의 전변轉變에 의해서 생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에 대해 미혹했기 때문에, 영원불변하게 실체적으로 실재하는 ‘나’와 의식의 대상이 되는 온갖 대상세계가 실재한다고 고집한다. 그리하여 미혹한 생각을 일으켜 업을 지어서는 끝없이 생사에 윤회하여 벗어나지를 못한다. 만일 이런 진리를 깨달으면, 비로소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오직 아뢰야식이 변해서 된 것이고, 아뢰야식은 인간의 본원이라는 진리를 알게 된다.


4.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는 소승 법상과 대승 법상의 교학에 드러난 잘못된 집착을 논파하는 동시에, 다음에 설명하는 ‘일승현성교’에서 주장하는 참된 성품은 공적하다는 주장을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가르침이다. 상을 쳐부수는 말들은 반야부에 속하는 여러 경전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대승 경전에도 곳곳에 있다. 이런 부류의 교리들은 무상, 무아, 공, 연기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면서, 집착을 떨쳐 버리게 한다.


5.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 교상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일체중생은 모두 본래부터 또렷한 참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끝없는 옛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존재하고, 청정하고, 매우 밝아 어둡지 않고, ‘또렷하면서도 항상 작용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기능’이다. 이것을 때로는 불성이라고 명칭하기도 하며, 또는 여래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끝없는 옛적부터 또렷한 참 마음에 망상이 가려서, 자신 속에 이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육체가 참된 자기인줄로 잘못 알고, 거기에 집착하여 업을 지어,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대각 세존께서 이것을 가엾게 여기시어 일체가 모두 공하다고 하셨고, 또 ‘신령스러운 또렷한 참 마음’이 청정한 점에서는 부처님과 중생이 똑같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불자들아, 어느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지 않은 이가 없건마는 망상 집착 때문에 그를 증득하지 못한다. 만일 그 망상을 여의면 일체지와 자연지와 무애지가 곧 나타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를 비유하여 작은 먼지 속에 무수한 경전이 들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작은 먼지는 중생에 비유한 것이고, 경전은 부처님의 지혜에 비유한 것이다.
그 다음에 또 『화엄경』에서, “이때 여래께서 법계의 일체 중생을 널리 관찰하시고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이 모든 중생이여,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어찌 미혹하여 보지 못하는가? 나는 마땅히 성스런 진리를 가르쳐 주어 그들이 망상을 영원히 떠나, 제 스스로 자신 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를 볼 수 있게 하여 부처님과 더불어 조금도 다름없게 하리라’고 하셨다”고 이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