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생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수료

『수행본기경』 등 초기경전을 살펴보면 싯다르타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날 적에 한 손으로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서 일곱 걸음을 걸으며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외쳤다던 탄생일화가 전한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로지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 있으니 내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는 외침이다.

출가 전 싯다르타의 최대 고민은 생노병사라고 하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싯다르타는 중생 가운데 최초로 이를 성취하여 붓다가 되었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누구도 서원하지 못했던 일체중생구제의 원을 세워 실천하였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것이다. 탄생게가 던져주는 현대적 의미요, 출가와 성도에 공유되고 있는 본질적 가치를 예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리이타의 의미를 그대로 함축하고 있는 탄생게는 한마디로 우리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생사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가의 당위성은 물론 성도직후 망설였던 고민을 중생 속에 구현해간 그의 행적과 가르침이 던져주는 역사적 존재의의에 대한 가장 압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수행의 편력과 극한의 고행을 넘어

 

29세 되던 해, 라훌라가 태어나던 날 마침내 출가를 결행한 싯다르타는 궁성을 빠져나온 지 7일 만에 당시 새로운 종교사상가들이 모여 있다는 마가다국 왕사성(Rājagṛha)에 도착했다. 출가자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판다바(Paṇḑava)산을 찾아 ‘사문 고따마(Gotama)’가 되어 수행에 몰입했다. 고따마는 싯다르타의 성(姓)으로 ‘가장 훌륭한 소’라는 뜻이다. 본고는 출가이후 ‘사문’의 의미를 부여해 고따마를 출가이전의 싯다르타와 성도이후의 붓다를 잇는 가교적 호칭으로 선택했다.

판다바산에서 수행하던 중 고따마는 마가다국 빔비사라 왕의 예방을 받고 대화를 나누었다. 빔비사라 왕은 고따마가 성도한 이후 감화를 받고 귀의한 인물이다. 훗날 붓다에게 사원을 지어 바쳤는데, 그 절이 바로 불교사원의 시초가 되는 죽림정사다.

고따마는 저명한 수행자들을 두루 찾아 나섰다. 먼저 하늘에 태어날 목적으로 고행하고 있던 고행주의자 바가바(Bhagavā)와 범천과 일월과 수화(水火)를 섬기는 배화주의자(拜火主義者)를 찾아갔으나 생사윤회를 벗고자 출가했던 자신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수행관을 확인하고 그들을 떠났다.

고따마는 계속해서 당시 가장 명성이 높던 수정주의자(修定主義者) 알라라 깔라마(Ālāra-Kālā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Rāmaputta)를 찾아가 사사했다. 알라라의 수행목표는 무소유처(無所有處)였고, 웃다까의 수행목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였다. 이는 당시 불교 이외의 일반수행자들이 목표로 삼고 있던 경지였으며 초기불교사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경지도 일단 정신집중을 끝내고 나면 다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돌아가기에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수행이었다.

고따마는 또다시 이를 버리고 다른 수행자를 찾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가야(Gayā)의 네란자라강 근처 고행림을 찾아 목숨을 건 혹독한 고행에 들어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때 부왕이 다섯 비구를 보내 고따마의 수행을 돕도록 하였다.

극한의 고행에 돌입한 고따마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앙상한 얼굴은 영락없는 해골 같았고, 움푹 패인 눈동자는 물이 오래전 말라버린 우물 속을 보는 듯하였다. 살가죽이 바짝 붙어버린 갈비뼈는 폐가의 서까래처럼 드러나 있었고, 쭈글쭈글한 뱃가죽은 말라비틀어진 조롱박과 같았다. 고따마는 육체를 괴롭히는 극한적 고행으로도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당대의 유명한 종교사상가들을 만나 그들의 교의체계와 수행방법을 공부하며 극단적인 고행에 몰두했으나 궁극적인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고따마는 마침내 고행을 버렸다. 네란자라강에서 지치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는 수자따(Sujātā)라는 여인이 올리는 우유죽을 먹고 근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사라수 숲 속에서 낮 한때 휴식을 취했다. 함께 수행하던 다섯 비구가 그 광경을 보고 “고따마는 타락했다”라며 고행림을 떠났다.

고따마는 이와 같이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 깊이 체감한 생사고뇌와 출가이후 당시 인도사회의 보편화된 모든 전통적인 종교와 수행방법들을 모두 경험하는 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깨달음을 향한 사문 고따마의 인간적인 방황의 모습이었고, 붓다의 출현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는 보편적 진리를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생사의 괴로움을 끊고 진리를 바로 보다

 

사라수 숲 속에서 휴식을 충분히 취한 고따마는 저녁 무렵 보리수 아래에 목동 소띠야(Sotthiya)가 제공해준 길상초를 깔고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보리수 아래에 정좌한 고따마는 보리수를 등지고 얼굴을 동쪽으로 향한 뒤 󰡒가죽도 근육도 뼈도 마를 테면 마르라. 체내의 살도 피도 마르라. 위없는 정각에 도달하지 않고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확고부동한 가부좌를 취했다.

깊은 명상에 잠긴 고따마는 그의 출가동기가 그랬듯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끝없이 고통스럽게 하는 노․병․사는 어떤 근본적인 원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알기 시작했다.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마음 속 깊이 파고들었고 급기야 그것은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스며있는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無明)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상안온의 내적 자유라는 해탈의 경지는 노․병․사의 근본원인인 무명을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이를 수 있으며, 이는 곧 ‘모든 것은 연기한다’는 이치를 말한다는 사실을 고따마는 깨닫고 있었다. 연기의 도리를 깊이 관찰한 고따마는 이윽고 새벽녘 반짝이는 별빛을 보면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 진리에 대한 무지를 소멸시켜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끊고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고따마는 그로부터 ‘붓다’라고 불렸다. 그의 나이 35세, 인도의 달력으로 제2 바이샤카(Vaiśākha)달의 만월일이었다. 불전은 고따마가 붓다가 되는 과정을 수하항마(樹下降魔)라는 드라마틱한 설화로 엮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