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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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는 일

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의-식-주’순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옷 입는 일이 인간 생활에
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물론 따뜻한 지방의 원시부족이나 자이나교의 일부
수행자와 같이 옷을 입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
분의 사람들은 옷 없이는 살아갈 수 가 없다. 그래서‘옷은 제 2의 피부’라고도 하는 것이다.
인류가 처음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수만년 전 구석기시대였던 것 같다. 선사시대의
무덤이나 동굴벽화 등을 살펴보면 사냥한 짐승의 털로 몸을 감싼 흔적이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나약한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뜨거운 태양열이나
눈보라나 비바람을 막아 체온을 조절하고 해충이나 나뭇가지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흙과 모래
와 먼지 등을 차단하여 몸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옷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옷에는 이러
한 일차적인 보건 위생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기능도 없지 않다.
바이블에,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은 후 자신들의 발가벗은 몸을 부끄러
워하여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인간은 수치심 때문에 옷을 입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종족보존을 위해 이성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옷이
이용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한 의복은 자신의 직업이나 지위, 신분과 소속 집단을 표현
하는 기능이 있고, 통과의례의 상징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
현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종종 옷을 활용한다.
이러한 옷의 다양한 기능 때문에 우리 생활 속에도 다양한 종류의 옷이 필요하게 된다. 속
옷, 잠옷, 평상복, 외출복, 교복, 군복, 운동복, 작업복, 정장, 상복, 예복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특히 정장의 경우에는 세트 개념이 도입된다. 우리의 전통적인 한복의 예를 들면, 속적삼, 속고
의, 바지, 저고리, 대님,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 등이 한 세트를 이룬다. 그러므로 걸치기만 하
면 옷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옷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다.
옷은 우선 실용적이어야 한다. 속옷처럼 피부에 직접 착용하는 옷은 땀이나 피지를 잘 흡수하
고 세탁에 쉽게 마모되지 않는 것이 좋고, 겉옷은 장식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것이 좋다. 다음으
로 옷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의 직업이나 신분, 때와 장소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
을 불쾌하게 하거나 당혹스럽게 하는 옷은 피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옷이 날개라는 속담처
럼 옷은 이왕이면 멋지고 아름다워야 한다. 따라서 옷을 고를 때는 자신의 체형에 맞는 무늬와
색깔, 옷감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키가 큰 사람에게는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가로선의 옷이 어울린다. 또한 큼직한
무늬와 넓은 칼라, 상의와 하의가 대비되는 색채의 옷이 어울리며, 악세서리를 할 경우에는 가
능한 큼직한 것으로 선택한다. 반대로 키가 작은 사람은 위엄있고 권위있는 세로선으로 수직효
과를 강조한 디자인이 좋다. 가급적 장식이 없고 단순한 디자인과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의 옷을
선택한다. 뚱뚱한 사람에게는 수직이나 사선 무늬가 어울리며 비대칭의 단순한 디자인이 좋고
얇고 광택이 나는 옷감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마른 사람에게는 광택이 있는 옷감과 볼륨감있는
디자인, 그리고 명도가 높은 색의 옷이 좋다.
자신의 체형에 어울리고 자신이 연출하고 싶은 분위기의 옷을 고르기 위해서는 질감과 무늬,


색깔 등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몸을 커 보이
게 하는 데는 두껍고 거친 질감이 좋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살리는 데는 얇고 매끄러운
질감이 좋다. 또한 자연 무늬는 명랑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고, 기하학적인 무늬는 세련되고 활
동적인 이미지를 주며, 점무늬는 깨끗하고 단순한 느낌을 갖게 하며, 추상적인 무늬는 환상적
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빨강과 노랑, 주황 등의 색깔은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하며, 녹색과 파랑
등은 추운 느낌을 준다. 명도가 높은 노란색 계통은 사물을 팽창되어 보이게 하며 명도가 낮은
검정색 계통은 사물을 수축되어 보이게 한다. 그러나 불교적으로 보면 옷으로 자신을 지나치
게 치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성찰의 시간과 정력을 빼앗아 해
탈과 열반의 길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불교 문헌에 따르면, 부처님 당시의 출가 수행자들은 참으로 단순하고 거친옷을 입어야 했
다. 출가자들이 입는 옷은 분소
의(糞掃衣)라고 불린다. 분소의
란 말 그대로 똥 묻은 것과 같이
더러운 헌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만든 옷이다. 출가자는 세속인들
이 버린 더럽고 낡은 옷을 주워
다 깨끗이 빨아, 그것을 조각조
각 기워서 옷을 지어 입었다. 그
것을‘납의’(衲衣)라고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율장에
는 시체를 쌌던 옷을 주워서 이
용한 제자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출가자들이 이런 옷을 입는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
만, 수행의 큰 장애물인 탐심(貪心)을 여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분소의는 거칠고 단순할 뿐만 아니라 빛깔도 화려하면 안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자들
이 입을 가사의 염색으로 괴색(壞色)만을 허락하셨다. 괴색이란 파랑·노랑·빨강·하양·검정
의 선명한 정색(正色)을 부수어 희석시키고 탈색시킨‘파괴된 색깔’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괴색의 전통은 불교교단이 훗날 부파불교시대를 맞이하여 각 부파가 그 부파의 상
징을 가사 색깔을 통해 드러내려 하면서 온전히 전승되지 못하게 된다. ≪대비구삼천위의(大比
丘三千威儀)≫에 따르면, 살화다부는 민첩한 지혜를 통달하여 법으로써 교화하여 중생을 이롭
게 하므로 진홍색 가사를, 담무덕부는 중계(重戒)를 잘 지켜 법률을 처단하므로 검정색 가사를,
가섭유부는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중생을 잘 구호하므로 목란색 가사를, 미사색부는 선정에 깊
이 들어 깊고 그윽한 진리를 궁구하므로 청색 가사를, 마하승부는 경전을 부지런히 배워 깊은
뜻을 잘 부연하므로 황색 가사를 입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여러 불교 종단의 스님들이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가사를 착용하는 것도 그
연원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세 가지 이상의 옷을 갖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것은 어느 때 부처
님이 옷을 많이 가진 제자들이 혹은 머리에 이고 혹은 어깨에 메고 혹은 허리에 찬 모습을 보시
고 그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옷의 한도를 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데서 연유한다.
≪사분율≫에 의하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내가 초저녁에 한 데에 앉을 때는 옷 하나를 입었고, 밤중이 되어 추위를 느껴 둘째 옷을 입
었고 새벽이 되어 더욱 추위를 느껴 셋째 옷을 입었다. 그러므로 생각하되‘오는 세상에 착한
남자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거든 세 벌의 옷만을 갖게 하면 족하리라. 나는 지금 비구들을
규제해서 세 가지 옷만을 가지게 하리라. 더 이상은 가지지 못하게 하리라’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세 가지 옷만을 가지게 하노니, 더는 갖지 못 한다.
또한 ≪사분율≫에는 오늘날 스님들이 입는 가사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있어 흥미롭다. 어느
때 부처님이 왕사성을 떠나 남쪽으로 길을 가던 중, 길가 논의 논두렁이 가지런한 것을 보시고
아난에게 비구들의 옷도 논두렁 모양으로 만들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아난은 왕사
성으로 돌아와 비구들에게 할절의(割截衣), 즉 천을 조각내어 붙인 옷을 만드는 법에 대해 가르쳤
다. 긴 조각〔長條〕과 짧은 조각〔短條〕, 그리고 잎〔葉〕등을 양쪽으로 향하게 하여 꿰매는 방법을
일러준 것이다. 부처님은 나중에 다시 왕사성으로 돌아가 비구들에게 설하신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의 제자들도 이런 옷을 입었으니, 오늘의 내 제자와 같고, 미래의 여러 부처님
의 제자들도 이런 옷을 입으리니, 오늘의 내 제자와 같으리라. 칼로 재단해서 사문의 옷을 이루면
도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 오늘부터 비구들은 안타회, 울다라승, 승가리를 조각내어서 만들라.
불교에서 흔히‘삼의일발(三衣一鉢)’이라는 말은 많이 하는데, 이 삼의가 바로 위의 안타회, 울
다라승, 승가리다. 안타회(安陀會)는 내의(內衣) 또는 중숙의(中宿衣)라고 번역되며, 절 안에서 작
업할 때 또는 상에 누울 때에 입는 5조 가사이다. 울다라승(鬱多羅僧)은 상의(上衣), 중가의(中價
衣), 입중의(入衆衣)라고 하며 예불, 독경, 청강, 포살 때에 입는 7조 가사이다. 승가리(僧伽梨)는
대의(大衣), 중의(重衣)라는 의미이며 마을이나 궁중에 들어갈 때 입는 9조 내지 25조 가사이다.
그 후 비구들이 조각내어 붙인 안타회를 입었는데 잎의 변두리가 금방 해어져서 때가 잎으로 들
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부처님은“지금부터 조각내지 않은 속옷을 만들어도 좋다”라고 설하셨다.
오늘날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가사 밑에 입는 장삼은 이 가르침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여
겨진다.
틱낫한 스님 등이 개정한 바라제목차에는‘광택이 나거나 화려한 색깔의 재료, 또는 금실이나
반짝이는 구슬들과 함께 바느질되어, 어떤 종류든 눈길을 끄는 재료로 만든 법의(法衣) 등을 입는
비구는 사출(捨出)과 참회 고백해야 하는 죄〔捨隨罪〕를 범하는 것이다’는 조항이 들어있어 눈길
을 끈다.
요컨대 출가한 스님들은
이처럼 단순하고 질박한 법
의를 착용하는 것이 상례임
에 비추어 볼 때, 재가불자
들이나 일반인들도 지나치
게 사치스럽거나 화려한 옷
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또
한 출가자들은 세 가지 옷
으로 만족하는데, 우리가
너무나 많은 옷을 지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자원의 낭비와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옷 가운데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하면서
매일처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번뇌이며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는 속담이 있지만, 옷을 너무 자주 새것
으로 바꾸는 것도 삼가는 것이 좋겠다. 새 옷은 비용은 물론 신경도 더 쓰이게 된다. 하지만
오래 입은 옷은 몸에도 편하고 옷매무새에 신경도 덜 쓰여 마음도 편안할 것이다. 불교인은
백팔번뇌든 팔만사천 번뇌든, 모든 번뇌를 극복해야 하므로 번뇌를 일으킬 수 있는 생활환경
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지혜롭다 할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너무 외모 지향적이다. 멀쩡한 얼굴에 칼을 대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이 우리에게 참으로 값진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옷은 자신
의 처지에 맞게, 단정하고 깨끗하게, 쾌적하고 편리하게 하면 그만이다. 남을 의식해서 옷에
신경을 쓸 시간을 지식의 습득과 인격의 고양을 위해 쓰는 것이 현명하다. 옷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기보다는 내면의 멋과 인격의 향기로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