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특집 생전예수재1
    특집 생전예수재2
    특집 생전예수재3
    생활세계와 불교
    절문밖 풍경소리
    취재현장에서 본 불교
    인간 붓다 기행
    금강계단
    불화의 세계
    지상법문
    반야샘터
    건강한 생활
    입시광장

과월호보기

무상, 무아의 이치 깨달아 왕생극락 성취를

심상현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1. 윤달에 거행하는 불사(佛事)의 종류와 의미


윤달이 드는 해에는 이런저런 불사(佛事)로 사찰마다 성시를 이룬다. 종류도 많아 대충 꼽아도 생전예수재를 위시하여 수륙재․개금불사․단청불사․가사불사․종불사․보살계 등이 있는가하면 삼사순례도 있다.


이들 불사의 의미를 간단히 살피면,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 외롭게 떠도는 영가가 아귀들에게 법공양(法供養)과 재공양(齋供養)을 베풀어 이고득락케 하려는 재의식이다. ‘개금불사’는 부처님 존상(尊像)에 금을 입혀드려 진리의 화현(化現)이심을 나타내려는 불사고, ‘단청불사’는 삼보님께서 머무시는 진리의 전당인 법전을 채색장엄하는 불사며, ‘가사불사’는 법복인 가사(袈裟)를 조성하여 스님들께 공양하는 불사다. 또, ‘종불사’는 진리의 말씀을 종소리에 실어 널리 전하기 위해 종을 조성하는 불사고, ‘보살계’는 진정한 대승불자로 거듭 태어나려는 불사다. 또, ‘생전예수재’는 전생과 금생의 업을 소멸하고 사후 불국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불자가 생전에 미리 그 공덕을 닦으려는 재의식으로서 역수(逆修)라고도 한다. ‘삼사순례’ 역시 마음의 고향인 사찰을 찾아 잊고 살았던 자신을 성찰케 하려는 일종의 ‘자기 찾기 운동’이며 굳이 세 군데 사찰을 말함은 세 번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라 하겠다.


  2. 윤달에 대작불사(大作佛事)를 거행하는 이유


각종 불사의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았거니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불사다. 그런 만큼 한결같이 긴 시간과 적잖은 재물을 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그 시기를 공(空)달 이라는 윤달을 택해 시간에 대한 부담을 덜고, 평소 뜻을 함께 하는 인연불자들의 정성을 결집하여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윤달을 택했던 것이니 윤달을 불사에 활용함은 지혜의 소산이라 하겠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윤달이면 서울 장안의 여인들이 불공을 드리고자 다투어 사찰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즉 윤달은 자칫 과속하기 쉬운 인생의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는 브레이크(brake)인 셈이다.


  3. 상근기(上根機)라야 행할 수 있는 예수재


여기서는 위 불사 가운데 금번 구룡사에서 거행하는 ‘생전예수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명키로 한다. 우선 “예수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겠는데, 이런 질문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칫 논리의 비약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예수재는 다음 생(生)을 위해 공덕을 미리 닦는 의식인 만큼, 이를 행하려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시간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고, 공간 위에 자리한 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자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불교의 근본 교의인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에 투철한 자로서 이미 열반(涅槃)의 문고리를 잡은 사람이 행하는 의식이라는 말이다.


  4. 예수재의 유래


「예수천왕통의(預修薦王通儀)」에 의하면, 생전예수재의 유래를 병사왕(甁沙王)에서 찾을 수 있다. 병사왕은 역사적 실존인물로서 불교 최초의 가람인 죽림정사(竹林精舍)를 건립한 왕으로 중인도 마갈타국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āra)를 말한다.


병사왕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지옥에 이르러 있었다. 왕은 스스로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터였는지라 절로 통곡이 나왔다. 왕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사자(使者)가 일러준 말은 의외였다.


왕은 생전에 예수재와 비슷한 의식을 거행하기는 하였지만, 첫째 명부 관리와 그 권속의 이름을 몰랐고, 둘째 올리는 공양이 법답지 않아 오히려 오늘과 같은 역효과를 가져오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왕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의 기회를 빌었고, 그 원이 받아들여져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환생한 왕은 의식의 내용을 정비하여 법답게 거행하였으니 이것이 생전예수재의 시초이다.


  5. 수생전(壽生錢)과 수생경(壽生經)


예수재 역시 재의식인 만큼 삼보님과 지장보살님을 위시해 다소 많기는 하지만 명부의 259위께 공양을 올린다는 점에서 여타의 재의식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준비물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수생전(壽生錢)’과 ‘수생경(壽生經)’이 그것이다.


‘수생전’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해에 태어나는 사람들을 책임진 명부(冥府)의 관리로부터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빌린 돈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수생경’은 수생전이 물질적 은혜에 대한 갚음인데 비해 정신적인 면에서의 보은(報恩)인 셈이다. 즉, 우리의 삶 자체가 빚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재」는 이런 빚을 이승에서 미리 갚으려는 목적으로 거행하는 의식이며, 그 공덕 또한 지대해서 18가지 횡재(橫災)를 예방할 수 있고 삼세(三世)의 부귀와 길상(吉祥)을 보장받게 된다고 한다.


일견 미신스럽기까지 한 이런 사상과 의식(儀式)이 생명력을 지닌 채 오늘날에도 거행되고 있음은 왜일까. 이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모른 채 자칫 자만하거나 작은 선행에도 자신을 내세우기 쉬운 중생심(衆生心)을 경계하고, 『금강경』의 말씀과 같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으로 명실공히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하게 하여 성불의 시기를 앞당기게 하는 훌륭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6. 예수재의 공덕


행위에는 업(業)이 따르게 마련이다. 선행에는 선업(善業. white energy)이 악행에는 악업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제 삼법인(三法印)이나 무주상(無住相) 등 불법의 골수를 이해한 불자에게 선업이 따름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생전예수재를 거행한 이에 대한 공덕을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의 내용에 근거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마음이 항상 즐겁고 희망 차있다 ②전생 내생의 죄업이 소멸된다 ③심신이 경쾌해진다 ④가정이 평안하다 ⑤무병장수 한다 ⑥심덕(心德)이 깨끗해진다 ⑦원을 성취한다 ⑧공덕을 쌓게된다 ⑨깨달음을 얻는다 ⑩극락세계에 태어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생전예수재’는, 【누가】무상(無常)․무아(無我)의 이치를 아는 불자가, 【언제】주로 윤달에, 【어디서】예수재를 베푸는 사찰에서, 【무엇을】병사왕(甁沙王)의 증언을 토대로, 【어떻게】수생전(壽生錢)과 수생경(壽生經)을 조성해 스님의 인도로 명부에 바친다. 【왜】사후의 왕생극락 등 위에서 열거한 공덕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발문>


‘생전예수재’는, 무상(無常)․무아(無我)의 이치를 아는 불자가, 사후의 왕생극락 등의 공덕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윤달에, 예수재를 베푸는 사찰에서, 병사왕(甁沙王)의 증언을 토대로, 수생전(壽生錢)과 수생경(壽生經)을 조성해 스님의 인도로 명부에 바치는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