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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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시대 보편적 인간성의 회복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허공계가 남아 있는 한, 중생이 머무는 한,
저 또한 여기 머물러 중생의 고통을 소멸하게 하소서.
For as long as space endures
And for as long as living beings remain,
Until then may I too abide
To dispel the misery of the world.
-입보리행론 회향품 가운데-


“과학을 논의할 때는 과학의 두뇌로, 불교를 논의할 때는 불교의 모자를 써라.”
본인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5)를 본격적인 현대과학의 세계로 안내해준 안드레아 로엡스토프 박사의 명언입니다. 마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IMC에서 정신과학 분야의 다양한 논제를 불교와 접목하는데 앞장선 분이기도 합니다. 마음과 생명 연구소가 미국에서 창립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과학적 근거로 전 세계 지성인들과 연합하여 마음과 생명에 관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이어온 유럽지부 연구소의 활동에 감사드립니다.


유럽연합과 연대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경험과 논제를 나누는데 앞장서온 마음과 생명 연구소의 지식 데이터는 인류의 미래가 나가는 방향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자들과 달라이라마의 대화가 가능케 된 것 역시 마음과 생명 연구소의 지속적인 활동 덕분입니다. 뇌 신경을 비롯한 양자물리학 분야를 중심으로 종교를 넘어선 다양한 분야와 시도된 융합을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마음의 과학이 불교와 통섭 되는 시도는 이 시대가 진정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상호의존성과 불확실성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고립되어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어울리고 자연을 만끽하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어 불확실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으로 너무나 긴 시간동안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불안은 얼마나 지속할 것인가 그 답을 전문가로부터 제안 받기를 원합니다. 마음과 생명 연구소는 이 문제에 대한 혜안을 달라이라마로부터 구하고자 합니다.


명상을 하는 수행자는 이 현안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과거에는 국가 간 교류가 지금과 같지 않았습니다. 공동체간의 연결은 시간의 터울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세계 곳곳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인류를 통틀어 우리라고 정의를 합니다.
불교를 신앙하는 불교도는 생명을 지닌 모든 이들을 중생으로 통칭합니다. 불교에서 우리는 중생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업으로 말미암아 지금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의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 속의 70억 인류는 하나의 우리입니다. 단지 우리와 너희라는 경계는 갈등을 일으킬 뿐임을 신중히 숙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편견을 발생시켜 문제를 일으킬 그 경계에서 잠시 멈춰 주십시오.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인간 집단은 소속을 통해 더불어 생존하고 있습니다. 집단에 소속되지 않고 생존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의 70억 인류가 인간의 최소화된 조직인 가족을 결성함으로써 공존해온 인간의 역사는 사회 국가 그리고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존의 방식은 교육을 통해 배우고 사고하면서 그 원리와 체계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크고 작은 비난을 멈춰야 합니다. 공존을 위해서는 존중만이 해답입니다. 사랑과 자비 관용 절제와 같이 선한 덕목을 더욱 더 증폭시켜야 합니다. 저는 불교의 비구 수행자로서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들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는 오로지 인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스스로의 확신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종교는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하기에 저는 맡은 바 책임을 다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람들은 고독을 느끼지만, 이 고독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라는 것에 집착하는 이기주의자일수록 더 외롭고 고독합니다. 의심하면 할수록 더욱더 외롭기만 합니다. 반면 이타심을 지닌 이들은 덜 외롭습니다. 동일한 인간의 한 사람으로 지금의 고독감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이는 외롭지 않습니다. 저는 외로움을 종용하는 현대 교육의 문제점을 쩍하고 싶습니다. 서로를 차별하게 하고 경계를 짓는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 능력은 잘못된 교육의 영향입니다. 글한 왜곡된 교육을 받은 이에게 티베트에서 망명한 출가승 달라이라마는 자식도 없는 고독한 수행자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승려로만 비칠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지금의 시대에 사람들은 방향성을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현재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불안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가짜 뉴스를 포함한 정보의 과부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지구 곳곳에서 엄청난 뉴스와 정보가 범람했습니다. 이제는 노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덴마크의 경우는 코로나19가 발생된 이후 국가적 봉쇄령이 내려졌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유럽의 뉴스는 난리가 났습니다. 과연 무엇을 신뢰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아무런 예측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교육의 전면 개편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정신과 감정을 배제한 물질에 치우친 어긋난 교육이었습니다. 그러한 교육이 지금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내면의 감정과 정신의 중요성을 우리는 교육을 통해 다시 보급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의 비폭력 사상과 같은 교육을 명상의 방식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교육은 고대의 지혜와 접목 되어야 합니다. 현대 교육으로 물질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충족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을 살피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물질적인 것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정신의 깊은 집중으로 들어가 이 모든 현상이 단지 가립 된 것일 뿐 상호 의존한 것임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연이 되면 합하고 사라지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의 경계란 없는 것임을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꾸준히 습관으로 이어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내면 교육을 통해 건강한 정신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세나 붓다의 정각을 얻으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이 이 순간의 삶을 바르게 해석하도록 하여 지금의 전염병 사태를 이기는 힘을 키워가기 위함 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향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자비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