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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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날개에서 달향의 차를 마시다

-수타사 카페 ‘월인쉼터’에서-


이서연
시인


꽃 지면 그 자리에 바람이 머물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달빛이 스미고, 달빛이 스며든 자리에 씨앗이 머문다. 그 씨앗은 가을을 품고 긴 겨울을 이겨내며 봄을 기다린다. 가을비는 씨앗의 품을 찾는 듯이 내린다. 작은 씨앗의 품을 촉촉이 적셔주며 긴 기다림의 여행을 함께 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또한 깊은 밤에 가을비를 보낸 구름은 새벽에 맑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파란 하늘로 잠시 마음을 헹구어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눈 뜨고 있어도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구름 한 자락을 바라보며 숨 한 번 쉬어 보고 싶다는 말에 눈을 뜨고 제대로 앞을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렇게 보고 느끼고 숨 쉬는 것을 함부로 여길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할퀴고 간 자리만 털어내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이에 시간이 보듬어 준 자리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사는 것만큼이나 이 순간 자체에 감사하자는 생각을 해서일까, 홍천 공작산을 찾아가니 기암절벽과 백색 암반에 수타계곡을 보는 순간, 걸음걸음조차 저절로 우아하게 된다.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는 공작산 기슭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일월사로 불렸던 수타사壽陁寺가 있다. 세종대왕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한글로 만든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사찰 수리 중에 사천왕상 복중에서 발견되어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절이다.
지금 세상은 맑은 가을하늘을 보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먹구름 속 창살에 갇혀 눈물을 흘리는 형국이다. 시절이 이렇고, 시국이 이런 것은 공업共業중생으로서 고통을 나누며 보살행을 하라는 의미일까. 우아한 공작산 품에 놓인 수타사 도량이 그저 넉넉한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답하는 듯 했다. 아마타불의 무량한 수명을 상징하는 수타사는 치유의 미학을 보여 주는 천년 고찰이다. 우선 수타사 자체가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병화로 모든 것을 잃었다가 도량의 위치를 옮기고 시절시절마다 인연중생에 의해 중창된 절이다. 또한 사찰로 들어가는 솔숲 길엔 소나무마다 참혹한 상처가 있다. 일제강점기말 자원이 부족한 일본이 송탄유松炭油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인을 강제동원하여 송진을 채취하게 하였다. 소나무마다 그때 얻은 상처가 수탈의 흔적으로 남아 있고, 소나무는 그 상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푸른 기백을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 세월 속에 많은 상처를 갖게 된 절이지만 지금은 고색이 창연하고, 생태 숲으로 중생들을 보듬어 주는 아름다운 도량이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걷고 보고 듣고 있음에 감사하며 많은 이들이 치유의 도량을 돌아보는 인연으로 고통을 이겨낼 기운을 얻길 바라본다. 


시절 상처가 마음 눈을 뜨게 하는 숲길에
딛고 온 세월을 푸르게 하는 미쁜 나무들
여기서 숨을 쉬며 허접하게 끌고 온 먼지를 털어본다
창자를 끊어내서라도 순간순간 비웠어야 할 욕망
가닥가닥 거침없이 찢어내고 태워본다
견딜수록 견고한 가치로 흘러가는 사리 같은 섭리 앞에
더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워지지 않은 저 상처를 녹여 보며 다짐해 본다
-<상처 품은 소나무의 기백을 보며>-
 
내가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건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작업은 타인을 부처로 보고 대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만 부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눈앞의 부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더 부지기수 일어나고 있다. 혹시 이 순간 나 또한 아상我想에 빠지는 습관이 있는 건 아닐까 살피며 공작교를 건넜다.
일주문을 대신해 서 있는 봉황문을 들어서면 효종 9년(1658)에 건립된 흥회루興懷樓가 보인다. 보통은 사찰 중심으로 들어갈 때 루樓 아래로 드나드는 경우가 많지만 수타사는 이 누각 옆으로 들어가는 진입방식이다. 수타사를 기억할 때 이 흥회루를 떠올리게 되는 건 이처럼 다른 사찰에서 보기 드문 단층 누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흥회루 뒤로 대적광전과 원통보전이 보이고, 원통보전 정면에 성보박물관이 있다. 소박해 보이는 박물관이지만 여기에 보물 제745-5호 월인석보와 유형문화재 영상회상도, 지장시왕도 등 수타사의 역사를 담고 있는 보물들이 가득하다.
수타사 경외로 나오면 생태숲 입구 쪽에 마치 아담한 섬처럼 느껴지는 작은 선방이 있다. 몇 년 전, 혜민 스님이 차인표·박찬호와 출연한 ‘땡큐’라는 프로그램에서 1박2일 여행 마지막 코스에 들렸던 선방이다. 한번쯤 산사에서 머물며 스스로 자신의 속을 살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각각 다른 색깔을 가진 세 명이 이 호젓한 선방에 머물며 깊은 내면들을 들여다보았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견디고 풀어내며 걸어가야 하는 것인가 스스로를 격려하며 다독일 공간 하나쯤 갖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수타사 생태숲은 기존 숲을 보존하면서 교육과 체험을 목적으로 조성된 생태체험공간이다. 다양한 식물과 생물들이 있어서 사철 아름답고 가족단위 산책로로 그만인 곳이다. 곳곳에 마련된 장자에서 생태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내 몸에 자연이 문신되고, 산소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인생은 예기치 못하게 한 번도 경험 못한 일들을 겪으며 지나가는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나 세월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답답하게 늘어나는 시절이다. 그냥 견디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캄캄한 세상일수록 달을 찾는다. 달빛은 어둠 속에 더욱 빛난다. 달빛을 만나면 그 순간 다시 세상은 적묵에 든다. 물에서 달빛 윤슬의 아름다움에 젖어 본 사람은 느낄 수 있다. 고독에 깊이 놓인 영혼이 달빛 윤슬을 만나는 날 가슴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로 인연자리가 놓인다는 것을…. 한낮 산사에서 달빛은 만날 수 없으나 그 서정적 편안함을 느낄만한 곳에 ‘월인쉼터’가 있다.
산사카페가 점점 카페라는 개념보다는 문화공간으로서 불교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전통한옥 건물이어도 전망이 산사마다 달라서 어느 곳을 가나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수타사 ‘월인쉼터’ 역시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현대적 감각의 인테리어가 세련된 분위기 만들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와 숲향을 담은 차맛의 정취는 산사가 들려주는 무언의 정담情談이요, 선우로 함께하고자 하는 정표情表가 아닐 수 없다. 언어로 표현하거나 전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하고 받는 불향佛香 한 조각 가슴 한 켠에 찍어 보고자 찻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맞은편 선반에 작은 찻잔과 온갖 종류의 차가 놓인 곳에서 차를 마시는 스님께 저절로 발길이 간다. 스스로 ‘게으른 소(懶牛)’라시며 토굴에서 잠시 나와 포행 후 차를 마신다는 나우 스님의 모습에서 한 조각 달빛이 호수를 젓고 있는 정서가 풍겼다. 나옹선사 ‘토굴가’에 보면 “풍경도 좋거니와 물색이 더욱 좋다”는 구절이 있다. 깨달음의 경지에선 이미 서두를 것 없고, 깨닫지 못했어도 마음밭을 경작하는 소는 그 자체가 이미 수행이다. 깊은 산이 맑은 물향을 내려주면 그 물향이 깊은 차향을 우려낸다. 스님께서 우려 주시는 녹차를 마시다 혹여 복업이 쌓여 어느 생엔가 나옹 선사를 만난다면 “여긴 풍경도 좋거니와 좋은 물색이 우려낸 차향이 더욱 좋습디다”하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기억의 파일 속에 깊이 묻어 두어도 
인연자리에 놓였던 기억은 차 한 잔에도 떠오른다
씻어도 씻을 수 없는 업
숨겨도 숨길 수 없는 업
지워도 지울 수 없는 업
끊어도 끊을 수 없는 업
태워도 태울 수 없는 업
녹여도 녹일 수 없는 업
한 모금 또 한 모금 그리고 다시 한 모금
한 모금에 한 업씩 사라지길 두 손 모아 본다
-<월인찻집에서>-


가을 물향기를 담고 떨어지는 빗물에 그만 발목을 붙들렸다. 찻집서 보살행을 하는 분의 자비행으로 무사히 자동차까지 올 수 있었다. 처음 만나 받은 친절은 또 하나의 업이 보태진 것일까 아니면 태워진 업 하나 덕에 받은 수타사의 불은佛恩일까…잊지 못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