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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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소개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대승 경전은 기본적으로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 먼저 존재한다. 그것을 대본으로 때로는 고대한어(漢文)로, 때로는 티베트어로 번역했다. 󰡔화엄경󰡕도 그렇다. 한국 사람들이 오랜 세월 애독했던 것이 한문본이니, 이것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한문본에는 번역된 순서대로 보면 6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421년), 8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695~699년), 4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795~798년), 이렇게 3종이 있다. 60화엄과 80화엄은 표현이나 내용상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40화엄은 위의 「입법계품」과 거의 일치한다. 티베트어본(8~9c 번역)은 80화엄과 내용이 유사하다. 산스크리트어본은 17~18세기 네팔에서 필사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전하고 있는데, 80화엄의 「십지품」과 「입법계품」과 계통이 같다.
그런데 각 번역들은 품을 나누는 체제와 번역 용어 등에 소소한 차이가 있다.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생기는 언어 철학 문화 등등의 차이로 인해 넘지 못할 장벽이 있다. 각국에서 나온, 심지어는 같은 한글로 번역된 책들 속에도 이런 어려움이 여전히 있다. 물론 그 속에는 실수로 잘못 번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원본’을 확정짓는 일은 특히 고대 문헌자료의 경우는 참으로 어렵다. 게다가 고대 문헌들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면서 ‘이야기’가 보태지기도 하고 줄기도 하면서 다양한 계통을 꾸려간다. 80화엄의 산스크리트어 대본이, 지금 전해지는 네팔사본과 같은 계통인지 여부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점들이 더욱 ‘원본’을 확정하기 어렵게 한다.


2.
이상의 문헌자료 연구만큼이나 어려운 게 있다. 그런 문헌 자료에 담긴 ‘내용’은 어떤 사람의 생각이 담겨진 것이냐는 것이다. 그 사람은 ‘개인’일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 󰡔아함경󰡕은 집단 지성의 산물로서, 그 중심에는 역사적 실존 인물 석가모니가 있다. 그런데 󰡔화엄경󰡕은 그렇지 않다. 소위 불모(佛母 부처의 어머니)’라고 수식이 붙는 󰡔반야경󰡕도 그렇다. 󰡔법화경󰡕도 그렇다. 대승 경전에 담긴 내용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살다간, 또는 그 지성의 담당자가 개인인지 집단인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대승불교 권에 있는 고대의 학승들이, ‘석가경’이니 ‘사나경’이니 하는 용어를 만들어 불경의 종류를 구별했던 것도 이런 통찰의 반영이다. 세상에 전하는 불경 중에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석가부처님께서 말씀한 것도 있고, 종교적 상상의 산물인 사나부처님(노사나부처님)이 말씀한 것도 있다. ‘법신-보신-화신’으로 ‘부처의 본질(佛身)’을 쪼개고 그 층차를 논하는 교학도 출현한다.
󰡔화엄경󰡕은 ‘사나경’이고, ‘진리를 본질로 하는 법신法身’ 비로자나(노사나) 부처님이 등장한다. 필자가 즐겨 읽는 󰡔원각경󰡕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법신부처님이 직접 설법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런데 󰡔화엄경󰡕은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금강경󰡕처럼 실재했던 수보리 존자 등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키는 꾸밈도 없다. 가상의 인물인 각종 보살을 등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아승지품」과 「여래수호공덕품」에서 부처님이 직접 설법을 하지만, 그냥 ‘부처님’이라고만 했을 뿐 ‘석가모니부처님’으로 특정할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3.
결국, 󰡔화엄경󰡕에 담긴 내용은 인도 내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불교 수행자의 종교체험에서 나온 고백이다. 언제 한 고백인가? 이점도 간단하지 않다. 기원전 2~3세기경에 살았다고 하는 용수보살의 저서에 󰡔화엄경󰡕의 일부가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단정하기 어렵다. 기원후 4~5세기경에 활약하던 세친보살은 분명 󰡔화엄경󰡕을 보았다. 그러니 그 이전 언제일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종교체험의 고백이니, 그 고백의 시기가 언제니, 또 지역은 어디니, 또 그런 이야기의 유통과 번역 경로가 어떠니, 이런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에는 의도가 있다. 한마디로 필자의 의도는 결국, “󰡔화엄경󰡕의 내용은 일정 시공 속에 살았던 인간(들)이 겪은 또는 상상한 종교 체험이 문자화된 것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래, 그것을 말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좁게는 󰡔화엄경󰡕 편저자의 종교체험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남의 종교체험을 간접적이나마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런 앎을 통해서 내 인생을 돌아보아 내 삶을 가꾸어가자는 것이다. 과거 사람의 종교 체험을 알아보는 것이 일종의 지식이라면, 내가 어떻게 살지는 실존이다. 전자가 철학사연구라면 후자는 철학하기이다. 학문적으로 필자에게 불교는 인간학이다. 믿음이란 주관적이고 환원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학적 영역에서는 가능한 한 배제하려 한다.


4.
󰡔화엄경󰡕을 읽다보면, 저자가 털어놓는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라면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를, 물론 저자는 외형적으로는 보살을 등장시켜서 자기 말을 하고 있다. 보살의 이름까지 지어서 말이다. 현실감을 높이려고 진짜 불교인 󰡔아함경󰡕의 ‘이야기’도 좀 섞고, 다른 종교 체험자의 ‘이야기도’ 좀 섞고,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도 좀 섞고, 자신의 희망이나 체험도 좀 섞고, 그렇게 해서 이야기들을 엮어 구성지게 했다. 철두철미 만들어진 산물이다. 작품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화엄경󰡕이 한문으로 번역되었고, 물론 번역하는 과정에서 당시 중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표현들은 부드럽게 또는 에둘러 번역하기도 했다. 또는 아예 빼기도 했다. 그런 다음에는 60화엄에는 지엄 스님이나 현수 스님이 해설을 붙였고, 80화엄과 40화엄에는 청량 스님이 해설을 달아 출판했다. 이 해설서를 쓰는 과정에서 필자들은 또 자신의 독서 체험과 인생 체험을 요령 있게 총 동원했다. 이 또한 인간학의 연구 대상이다.
중국 지역에서 만들어진 해설서는 다시 조선 땅에 전해졌고, 조선 지역 사람들은 또 자신의 독서 경험과 인생 체험을 동원하여 중국 해설서를 읽고 강의하고 때로는 메모를 남긴다. 일본 땅 사람들은 중국의 해설서도 수입하고, 또 조선의 해설서도 수입했고, 그것을 읽고 강의하고 자신의 메모를 적어 남겼다.


5.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이런 지난 역사 속의 체험과 경험과 희망의 집합체이다. 특히 󰡔화엄경󰡕 본문에 등장하는 보살들의 실천이나 수행은 작가의 희망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보살행이 실현된 적은 없다. 대단한 이타적 삶이 보살행의 특징인데, 그런 세상이 실재했다는 역사 기록이나 유물 흔적이 발견된 바 없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꾸며진 이야기이지만, 이 속에는 긴 세월 넓은 지역에서 많은 독자들에의 ‘공감’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인도, 중국, 조선, 일본, 티베트 등지의 위대한 지성인들이 이 책 읽기에 그토록 공을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Buddha’를 소리 번역해서 불타佛陀라 했고, 한국말로 ‘부처님’이라 한다. 󰡔화엄경󰡕 전편의 핵심 주제거리는 이런 ‘부처님’은 이러 이러한 분이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고백이고, 그런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라면 이러 이러하게 세상을 살 것이라는 서원의 산물이다. 이것이 각 지역의 승려들에게 공감되어 환영 받았던 것이다.
 
6.
현재 한국에 유행하는 불교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이후까지 그 연원이 올라간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이전 특히 고려 또는 통일신라와는 연속선을 복원하기 쉽지 않다. 󰡔화엄경󰡕 연구와 신앙도 그렇다. 조선 불교는 철저하게 ‘교학’ 방면에는 청량 징관과 규봉 종밀의 영향에 들어 있다.
80화엄에 청량 징관 국사께서 ‘소’를 달았고, 다시 그것에 ‘초’를 달아 주석했다. ‘경’, ‘소’, ‘초’가 함께 편집된 책을 우리는 ‘청량소초’라고 줄여서 부르는데, 숙종 이후 이 책이 성총 스님에 의해 보급된 이래, 조선불교 최고의 책으로 읽혀졌다. 많은 고승들이 독서 과정에서 ‘사적 메모(私記)’와 ‘과목 그림(科圖)’들을 남겼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봉선사 월운 스님에 의해 정서 출판되었다. ‘청량소초’ 해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놀라운 일이 생겼다. 2011년 퇴직 무렵 김윤수 판사님이 총7책으로 엮어 ‘경’과 청량 국사의 ‘소’ 전체와, 그리고 ‘초’의 일부를 완역했다. 대단한 일이다. 그 후 2020년 9월 통도사의 반산 스님이 총34권으로 번역판을 내었다. 이 시대의 역사이다. 반산 스님은 봉선사 월운 스님 회상에서 수학한 강사로, 󰡔화엄경󰡕 본문은 운허 스님의 번역을, 그리고 과목은 월운 스님이 정리한 ‘과도집’을 활용했다.
운허 스님은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설립하고, 40화엄경은 1966년 3월, 80화엄경 전반부는 1966년 11월에 후반부는 1968년, 60화엄 전반부는 1974년에 후반부는 1975년, 총 5책으로 출간했다. 한글다운 번역은 이것이 최고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백용성 선사께서 1927년 국한문 혼용으로 완역 출간한 바 있는데, 이 역시 대단하다. 최근 범어사 무비 스님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