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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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동사섭하는 불자의 마음가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부처님의 팔만장교八萬藏敎 가르침을 크게 구분지어 보면, 성문소승聲聞小乘의 부정적인 가르침과 연각중승緣覺中乘인 불자들에게 설하신 12연기十二緣起의 긍정적인 가르침, 대승보살도인 육바라밀六波羅密이라하는 보살행원菩薩行願을 부정과 긍정으로 한 가르침, 그리고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인 대 긍정의 가르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세 가지 특징인 삼법인三法印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인데,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은 무아이며 나[我]라고 하는 실다움이 한결같지 못하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열반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경계와 일체 모든 행위는 고통과 괴로움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영원한 것처럼, 착각 속에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것들이 부질없다는 생각, 허전하고 허탈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로인한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2연기의 무명의 얼굴입니다. 실질적으로 내 곁을 떠나지 않아도 어느 날 문득 내 스스로가 그것들로부터 떠나게 되는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만석지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구두쇠인지 평생 보리밥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리밥을 먹으니까 함께 살고 있는 머슴들은 자신보다 더 안 좋은 꽁보리밥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부인이 지혜가 있어서 가마솥에 밥을 지으면서 일꾼들에게 줄 쌀밥 위에 꽁보리 한 줌을 얹어 밥을 지은 뒤 꽁보리밥은 영감에게 주고 흰쌀밥은 일꾼들에게 주었답니다. 그렇게 평생을 꽁보리밥만 먹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죽기 전 그동안 모아놓은 재물이 아까워서 양손에 각각 금화 1천 냥씩을 쥐고 입에도 천 냥의 금화를 물고 죽었답니다. 그런데 정작 죽은 원인은 먹지 못하는 병이 들어 굶어서 죽게 된 것입니다.
가족들이 장례를 치를 때 손에 움켜쥐고 입에 물고 있는 금화를 그대로 두고 입관을 하려다가 결국 다 빼내고 양손에 각각 동전 한 닙만 쥐어주고 ‘1천 냥이요, 2천 냥이요, 3천 냥이요’라 외쳤답니다. 또 쌀 몇 톨을 가져와서 입에 한 알을 물리면서 ‘1천석이요, 2천석이요, 3천석이요’ 하면서 입관을 했다 합니다. 자기 먹는 것까지도 아까워서 벌벌 떨다가 그렇게 모아놓은 재산을 가지고 갈 수 있어야 될 터인데,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러니 얼마나 허망한 노릇입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육신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며 생각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고 했습니다. 그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과 괴로움이 나타나는 허망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그런 큰 재앙과 고통, 괴로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는 참 자유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 장님이 길을 가다가 비탈길에 넘어졌는데, 미끄러지면서 나뭇가지를 간신히 붙들 수 있었습니다. 그 장님이 도와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지나는 행인들 중 누구도 그의 팔을 붙잡아주지도 않고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으라고만 합니다. 장님은 볼 수 없으니 그 높이를 짐작하지 못해 손을 놓으면 큰일 날 줄 알았지만, 정작 그 높이는 발만 닿지 않았을 뿐, 땅이나 다름없는 높이였던 것입니다. 결국 팔에 힘이 빠져 손을 놓고 말았는데, 그제야 매달린 것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들 인생살이 속에는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놓으면 그만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움켜쥐면 쥘수록 힘들고 내려놓으면 놓을수록 편안하고 좋은 이치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 짐 지고 봉정암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는 얼마나 힘들고 어렵 습니까.
그러나 지고 간 공양물은 봉정암 오는 불자들이 공양하는데 보탬이 되기 위해서 한 등짐 지고 올라갔으니 절에 내려놓고 빈 몸으로 내려올 때는 얼마나 몸이 가뿐하겠습니까. 그 이치를 우리 불자들이 좀 더 살피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이치적으로 보면 별일 아닌 것 같은데, 내려놓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려놓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습니다.


뉴욕 원각사의 30만 평에는 담이 없습니다. 구룡사 도량에도 담이 없습니다. 현관문만 있습니다. 여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이 없으면 눈으로 보이는 도량 밖의 길도 우리 땅입니다. 여래사에서 낮은 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중학교 운동장도 우리 공간입니다. 정발산 12만 평도 우리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재산권을 형성해야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안 가지고 보면 모두 다 내 것입니다. 손에 컵을 쥐고 있는 한, 이 손은 딴 일은 못합니다. 컵을 쥐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는 컵에 내손이 붙들려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려놓을 줄 아는 연습을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기도요 수행 정진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종교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우리 사회의 윤활유이어야 하고 비타민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본연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종교에 미치지 맙시다. 종교에 미치지 않으려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면 됩니다. 그러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 작용에서 모든 것들이 바탕을 이룬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은 바람과 같아서 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머무르는 일도 없이 흐르다가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부처님께서 『숫따니빠따』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앉아라. 잠을 자서 그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화살에 맞아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자에게 잠이 도대체 웬 말인가?”
집에 드러누워서 텔레비전 보고 있고, 늦잠 자고 일어나서 법회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이에게 게으름은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독화살에 맞아 고통 받는 이에게 잠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일어나 앉아야 합니다.
그리고 평안을 얻기 위해 일념 기도하고 정진하고 명상하며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마지막 유훈으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如來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여기에서 떠나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말한 이 가르침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행이란 깨달음의 완성이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


유튜브에 어느 스님이 윤회輪廻는 없다고 하던데,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내가 떠난 후에 내가 말한 이 가르침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덧없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불자들은 모든 것은 무상하고 제법무아이며 일체개고이니 열반적정을 충분히 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생각, 내가 살아있다는 그 생각, 영원할 것이라는 그 생각, 언젠가는 가겠지만 설마 오늘 내일 사이에 가겠느냐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 으셨습니다.
“인생은 얼마쯤이라 생각하는가?”
제자들이 다양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몇 년입니다. 몇 달입니다. 며칠입니다. 몇 시간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그대들은 아직 멀었다.”
그러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인생은 호흡 하나에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역부여시亦復如是라, 그렇고 그러하니라.”
그런데 설마 그 호흡 멈춤이 나에게 지금 당장 오겠느냐 하는 생각,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 번만 접어두면, 한 발자국 물러나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시작할 때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요량으로 그 일을 하고 그 일을 마치고는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을 때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내가 되어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괴로움은 진리(지혜)를 얻으면 사라집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내지 말고, 바르게 관찰하고 바른 사유력을 가질 것이며, 지식知識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智慧에 의지하여, 바른 가르침 따라 능히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이 될 수 있는 포교에 앞장서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