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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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길러 가꾸어야 할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범망경󰡕에서는 불교의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실천 수행 덕목을 모두 넷으로 묶어서 설명합니다. 그 묶음이란 ‘신-해-행-증’인데,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수행이라는 긴 기간을 놓고 보면,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이론으로 이해하고, 그리하여 실천해서, 끝내는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소위 수행의 한 마디[一期]가 완결되는데, 화엄교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화엄교학자들은 󰡔범망경󰡕에서 제시하는 수행 과정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범망경󰡕 구성 자체 속에 있습니다. 󰡔범망경󰡕의 구성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일정한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①믿음을 단단하게 하는 지혜[堅信忍], ②진리를 단단하게 하는 지혜[堅法忍], ③실천을 단단하게 하는 지혜[堅修忍], ④체험을 단단하게 하는 지혜[堅聖忍]를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에서 ②로, 계속해서 ③으로, 그리하여 ④로 향(向)하고 있습니다.
초기 불교의 교리에 등장하는 문·사·수聞思修 3혜의 용어를 아실 겁니다. 들어서 지혜로워지고, 사유해서 지혜로워지고, 실천해서 지혜로워지는 것인데, 󰡔범망경󰡕에 등장하는 ①, ②, ③, ④는 3혜 중에서 사유하여 지혜로워지는 ‘사혜思慧’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忍이란 무슨 뜻일까요? 범어의 <크샤티[kśāti]>를 뜻으로 번역한 것으로,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확실하다고 인정하고 인가하는 특수한 지혜’를 뜻합니다. 한문의 ‘忍’ 자에는 ‘냉정함’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데, 이 뜻에 주목하여 역경하시던 스님들이 그렇게 번역하신 것입니다.
󰡔범망경󰡕에는 ①에 입각해서 ‘발심해서 도로 나아가려는 마음’ 열 가지, 이어서 ②에 입각해서 ‘길러 가꾸어야 할 마음’ 열 가지, 또 이어서 ③에 입각해서 ‘굳건히 해야 할 마음’ 열 가지, 끝으로 ④에 입각해서 ‘체험해야 할 경지’ 열 가지, 이런 등의 내용을 차례로 밝혀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문 용어로 소개하면, 십발취심十發趣心, 십장양심十長養心, 십금강심十金剛心, 십지十地입니다.


2.
지난 6월호부터 독자 여러분께 저는 ‘십장양심’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기하는 차원에서 열 가지 마음을 한문으로 다시 또 소개하면, ⑴자심慈心, ⑵비심悲心, ⑶희심喜心, ⑷사심捨心, ⑸시심施心, ⑹호어심好語心, ⑺익심益心, ⑻동심同心, ⑼정심定心, ⑽혜심慧心입니다. 6월호에서는 ⑴자심慈心을 ‘자애심’으로 풀이하여 소개했습니다. 이제 7월호에서는 ⑵비심悲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풀어 소개하려 합니다.
󰡔범망경󰡕에서 말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세상에 흔히 말하는 소위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나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과는 좀 다릅니다. 이 경에서 말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란 불교에 관통하는 연기, 무상, 무아, 공 사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6월호에서 소개한 ‘자애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고통받는 데에는 일체법이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한 줄을 모르는 무지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보살이라면 자신도 무상 내지는 공을 확실히 알고, 남에게도 그렇게 알게 하여,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주목해야 할 방점은 ‘연기법을 알고 실천하는 지혜’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한 일이 실상은 자식을 망치는 결과를 이룰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어린 게 고생하는 걸 보면 부모의 마음은 애잔해집니다. 동물에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부모가 대신해 주다 보면, 장성해서도 제 앞가림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큰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어머니가 혼자 남겨질 어린 자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겁입니다. 이 어린 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방 청소하고 살림하는 걸 보며 한없이 눈물짓습니다. 아픈 몸이지만 당장이라도 돕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혼자 남을 애를 생각하는 게 어머니의 지혜입니다.
그러면 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범망경󰡕에서는 말합니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하다고 말입니다. 조건들이 작동하는 동안만 그 상태가 유지됩니다. 우리의 육체도 그렇고, 이런저런 심리적 현상들도 그렇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내가 소유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영원하다고 착각하거나 집착하는 속에서 괴로움이 생긴다고 불교는 말합니다. 잘 살펴보면 인연 따라 생겼다가 순간순간 변하다 끝내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 점을 확실하게 아는 지혜에 기대어, 살殺·도盜·음淫·망妄으로 얼룩져 살아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인생이 설사 나의 부모나 형제나 처자 등 소위 6친을 해친 극악무도한 자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고원高遠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지난 6월호 끝부분에서도 썼지만, 유가儒家의 선비들이 하는 불교 비판, 즉 불교도 저들은 허虛를 좋아하고 무無를 좋아하고 적寂을 좋아하고 멸滅을 좋아한다는 말이 필자에게는 자꾸 맴돕니다. 6월호 끝부분을 인용하여 다시 여쭙니다. “여러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우리의 현실을 봅시다. ‘힘’으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무엇이 ‘힘’일까요? 재물이 힘이고 권력이 힘이 아닙니까? 이런 힘은 그 어느 시절보다 막강함을 우리 사회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언론으로 보도되는 각종 재판의 법리 다툼에서, 의료 현장에서, 나아가 각종 시험에 활용되는 ‘아빠 찬스’에서. 국제간에는 군사력이 힘입니다. 북한을 보세요. 국제적으로 비난을 넘어 각종 제제를 무릅쓰고 핵무기와 그걸 이동시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는 힘으로 가까이는 ‘무력’이 있고, ‘재력’이 있고, ‘권력’이 있습니다. 역사가 알려준 교훈이고 현실이 알려준 경험입니다.
물론, 그런 힘들이란 모두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연기 구성체이며, 무상無常하고 거기에는 그렇게 하도록 하는 불변하고 주재主宰하는 아我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줄을 잘 알고, 그것이 생성소멸하는 조건들을 잘 갖추어 잘 관리하면, 그 힘은 일정한 조건 속에서 작용할 것입니다. 재력을 좀 양보하고 권력을 잡고. 긴 시간 부모가 재력을 써서 자식이 권력을 잡도록 준비하고. 이것 놓고 저것 잡고, 저것 놓고 이것 잡고. 요리조리 조건을 잘 갖추게 하여, 그런 인연 조건만 갖추면, 그렇게 만들어진 연기 구성체는 계속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그러라고 가르치는 종교인가요?
이상에서 필자는 아주 단적으로 현행하는 ‘힘’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그 ‘힘’이란 연기 구성체이고, 공한 것이고, 무상하고 무아임을 알았으면, 그다음은 어쩌란 말입니까? 버릴까요? 그런데 그걸 버리고는 개인도 공동체도 나아가 국가도 존망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다만 집착하지 말란 말인가요? 집착? 어느 정도까지가 집착인가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4.
󰡔범망경󰡕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경에서는 보살의 길을 가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기르고 가꾸어야 하는 마음 열 가지를 제시합니다. 그 둘째가 가엾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원문을 먼저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비공공무상以悲空空無相, 비연행도悲緣行道” 풀이하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공하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렇게 공하다고 말한 공 역시 공하여 모양이 없다. 공하여 무상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도를 실천한다.” 그러면 실천 해야 하는 도는 무엇인가요? 다음의 원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망어하지 말고, 아我에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살도음망을 하지 않는 도덕의 덕목 자체보다, 그런 덕목을 행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범망경󰡕의 작가는 연기법을 잘 아는 상태에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기초해서, 그 마음에 반연하여, 계의 덕목을 실천하라고 주문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범망경󰡕에서는 <3단계의 심층 구조>로 초기 불교의 율법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가장 저변에 있는 마음은 연기법에 대한 지혜의 작동이고, 그런 지혜를 작동하면서 비심悲心 즉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작동시키고, 그런 마음을 작동하며서 살도음망 등 각종 계행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힘’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힘을 기르고 힘을 쓰되, 위에서 말한 <3단계의 심층 구조>를 역동적으로 작동시키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는 ‘힘’ 나와 남을 해치고 끝내는 우리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