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대승 보살 운동의 핵심 경전 범망경
    숲에서 배우는 불교
    텃밭불교
    자연과 시
    자연과 시
    불교관리학
    불서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길고 긴 장마가 무섭다

 


정성운
텃밭농부


올해 또 수박 키우기에 나섰다. 작년에 심었던 무등산수박은 장마를 견디지 못했다. 긴 장마 탓도 있었지만, 튼실하지 못한 모종, 내 부족한 재배기술도 한몫했다. 이번에 키우는 수박은 무등산수박과 망고수박 두 종이다. 5월 초에 심은 10그루의 모종은 잘 자라주어 열매를 키우고 있다. 6월 20일쯤에 첫 꽃가루받이를 해주었다. 망고수박은 수정 후에 한 달쯤이면 맛이 든다. 내가 키운 첫 수박을 맛볼 날이 다가오고 있다.
수박도 여느 작물과 마찬가지로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 순치기를 해주어야 보암직한 열매를 내준다. 꽃가루받이도 해주어야 한다. 벌과 나비들이 주로 이 일을 했는데, 이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서 수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설 재배의 경우에는 내부에 벌을 키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텃밭의 경우는 그럴 수 없으니 내 손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열매를 맺었다고 하여 다 된 것이 아니다. 복병이 있다. 장마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수박이 시원하고 달콤하고 아삭하다면 그것은 필시 농부들의 구슬땀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팔·다리·허리·손가락 욱신거리는 근육통도 몇 움큼 더해졌을 것이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구릿빛으로 짙어진 그만큼의 맛일 것이다.


‘적당하다’라는 말


‘적당하다’는 참 좋은 말이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어다. 사전에서는 “기준, 조건, 정도에 알맞다”라고 풀이한다. 비슷한 말로 ‘적절하다’가 있다. 그런데 애매한 표현이다. 기준이나 조건을 알아야 적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농사의 풍흉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날씨이다. 맑고 흐림, 비, 눈, 바람, 온도 등인데, 이 중에서도 비와 온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봄날의 비는 밭을 촉촉이 적셔주어 씨앗의 움을 틔운다. 그래서 농부들은 예부터 봄비를 일러 우삼雨蔘, 천삼天蔘이라 했다.
농사에 적당한 날씨는 어떤 상태의 것일까. 농부들은 늘 이 질문을 늘 품고 있다. 일상화되다시피 한 고온과 집중폭우를 경험하는 요즘에 이 질문은 절박한 화두 같은 것이 되었다.
장마가 닥쳤다. 피할 수 없다. 기상학자들은 장마를 제5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계절을 어찌 피해갈 수 있겠는가. 햇볕에 데워진 바다를 식히는 자연의 과정이니 잘 맞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장마 기간은 대개 한 달이며, 이 기간에 비 내리는 날이 평균 17일 정도다. 내내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하루를 걸러 비가 온다는 것인데, 무서운 것은 내리 몇 날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다. 또 국지적으로 집중적으로 내리는 경우는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더구나 밤에 폭우가 내리면 주변의 위험 상황을 알지 못해 더 무섭다.
논밭이 물에 잠기면 거의 모든 작물이 버텨내지 못한다. 작년의 내 작은 텃밭의 쉰 그루 고추는 장마 후 한 그루도 남지 않고 전부 죽었다. 두둑까지 물이 차올랐는데, 뿌리썩음병이 번졌다. 작물은 잎으로 광합성과 증산작용을 한다. 뿌리는 필요한 영양물질을 빨아들인다. 비 내리고 흐른 날이 며칠 지속되면, 이 모든 작용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한다. 하루 이틀쯤이야 견뎌내겠지만 사나흘 이어지고 두둑까지 물에 잠기면 어찌해낼 도리가 없다. 배수로를 잘 정비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온 밭을 바다로 만드는 폭우를 배수로로는 감당해내지 못한다. 하늘이 하는 일이다.
장마철인데도 비가 적게 내리는 경우도 있다. 내내 흐리고 습도가 높아 푹푹 찌는 날이 이어지는, 이른바 마른장마다. 폭우의 장마보다야 낫겠지만, 농사짓는 이들에게 힘겹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병해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흙과 공기 중에는 작물에 해로운 병원균이 상존한다. 습한 날씨는 병을 불러온다. 그래서 농부들은 비가 잠깐 그치는 틈을 타 약을 친다. 봄날처럼 바쁜 때가 장마철이다.


사흘에 한나절만이라도 쨍쨍한 햇볕을


나와 같은 텃밭농부들에게 장마철인 7월의 적당한 날씨는 이렇다. 장마철이니 비가 오더라도 삼일에 하루, 아니 삼일에 반나절만이라도 햇빛이 쨍한 날이 된다면 좋겠다. 햇빛은 식물의 광합성에 필수이면서 동시에 병원균의 번식을 막아준다.
텃밭농부들의 가장 큰 얘깃거리는 단연 날씨다. 8월의 날씨가 6월에 나타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방송 뉴스의 첫 번째 주제가 날씨이니 온 나라 사람들의 관심사도 날씨다. 6월 19일의 경우, 경북 경산의 낮 한때 기온이 39도까지 치솟았다. 이날 서울은 35.6, 광주 37.2, 대전 36.1도를 기록했다. 미국, 중국의 어떤 지역은 50도까지 올라갔다.
이런 기온은 재앙적이다. 작물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이슬람 교도들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순례하는 중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죽은 이들의 대부분은 돈을 아끼지, 위해 순례단에 등록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인도에서도 뜨거운 날씨로 여러 사람이 죽었는데, 대부분 더위를 피할 곳조차 없는 노숙자들이었다고 한다. 극한기후는 경제적·신체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서로 돌봄의 문화가 옅은 사회에서도 기후재앙은 사회적 약자를 덮친다.
너무 더우면 작물도 생장을 멈춘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에 재배하는 거의 모든 작물의 생장온도는 15~35도쯤이다. 열대·아열대 작물은 25~35도, 온대 작물은 15~25도, 한대 작물은 10~20도이다. 가지에 속하는 가지, 고추, 토마토는 열대·아열대 작물로서, 원산지는 아프리카나 중앙아메리카이니 고온건조한 곳이니 고온에 강한 편이다. 이들의 생육적온은 20~25도이며, 최고한계온도는 35도이다. 기상청이 발표하는 기온보다 밭의 기온이 훨씬 높다. 밭은 햇볕을 피할 곳이 없다. 여기에다 복사열과 습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작물이 고온한계에 이르면 호흡이 많아진다. 자기유지를 위한 에너지와 수분 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볕에 화상을 입기도 하는데, 잎의 바깥부터 말라간다. 기온한계를 벗어나면 단지 유지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쓴다. 잎의 기공을 최소화하여 수분의 증발을 막는다. 더운 여름날 축 늘어진 고춧잎과 호박잎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고온을 견디기 위해 기공을 닫고 광합성 작용을 멈춘 상태이다. 몸집을 불리거나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 고온한계를 넘어서는 시간이 길어지면 끝내 죽고 만다.
날씨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일찍이 집을 짓고, 옷을 입었고, 냉방기를 발명했다. 농사에서도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 등 시설을 들여왔다. 비를 막아주었으며, 온도들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의 영향에서 일정 정도 벗어났으며, 계절의 한계를 넘어섰다. 효과는 적지 않았다. 배고픔을 겪지 않을 정도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이르렀다. 철을 가리지 않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 이래 최고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를 일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 곧 문명화라고 불렀다.


끝내 인간은 자연을 이기지 못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햇볕이 강하면 그림자도 더욱 짙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극한 기후, 기후위기. 표현이야 어떠하든 우리는 지금 문명이 드리운 그림자를 머리 위에 이고 있다. 자연의 한 현상인 기후를 이겨냈다고 찬가를 불렀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연은 극한의 기후변화로 나타났다. 인간은 물론 지구 위의 수많은 생물들에게 재앙으로 닥쳐왔다. 문명은 결국 인간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명의 역전이며 역설이다.
날씨는 사람이 당장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농사짓기에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적당하게끔 변화시킬 수 있다. 해답은 명확하게 나와 있다. 지구를 온난화시키는 요소, 즉 이산화탄소·메탄가스, 이산화질소 등 온난화 가스의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탈탄소의 길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