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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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문명

 


홍성범
숲해설가


모든 문명은 큰 강을 끼고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발원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에서,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에서, 인도 문명은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에서, 그리고 중국 문명은 황하 강에서.
그러나 그토록 번성했던 문명이 어쩌다가 몰락한 것일까? 그 답은 숲에 있다.
문명의 몰락은 숲을 파괴한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상류의 울창했던 숲이 사라지면 강은 홍수와 갈수를 반복하며 자연재앙을 부른다. 우기에 물을 저장했다가 건기에 내보내는 숲의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인도, 마야 문명은 가뭄과 갈수에 사라졌다. 앙코르와트의 크메르 문명은 홍수에 무너졌다. 갈수든 홍수든 모두 숲을 경시하고 파괴한 대가다. 이집트 문명과 황하 문명은 강이 워낙 길어서 상류의 모든 숲을 파괴할 수 없었기에 몰락을 면했다.
고대문명들이 숲을 파괴한 이유는 동일하다. 거대한 도시와 신전을 건설하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베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몰락 이야기는 구약성서에도 등장한다. 환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하늘을 찌를 듯한 바벨탑, 노아의 방주 등에 등장하는 건물들은 모두 벽돌이나 목재로 지어졌다. 이를 위해 대규모 벌목은 불가피했다.
기원전 3,500년 경 등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약 1,500년간 번영을 누리다가 기원전 2,000년 이후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상류 산악지대가 황폐화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산림의 파괴는 수원인 고산설봉의 만년설을 급속히 녹였고 우기와 건기에 두 강이 홍수와 갈수를 거듭하자 중, 상류의 초원과 농경지는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찬란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영화는 막을 내린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이즈음 잦은 가뭄과 홍수를 배경으로 전해진 이야기다.
기원전 2,500년 경 인더스 강 유역에 드라비다 족이 일군 인더스 문명도 마찬가지다. 상류에 건설한 고대 도시 하라파와 하류의 모헨조다로 유적을 보면 매우 정교한 상·하수도와 건축물로 꾸민 수준 높은 계획도시였다. 이런 시설과 건물은 대부분 구운 벽돌로 건설되었는데 이 수많은 벽돌을 구워내기까지 파괴된 숲의 규모는 매우 컸다. 기원전 1,500년 경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아리안족이 이곳을 정복할 즈음 인더스 강은 상류의 산림이 파괴된 탓에 가뭄과 홍수를 반복했다. 아리안족은 기원전 1,000년 경 이곳을 버리고 갠지스 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갠지스 문명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곳도 인더스 문명의 전철을 밟고 몰락하고 만다.
반면 기원전 3,000년 경 발원한 이후 무려 3,000년간 번성했던 이집트 문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때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긴 했지만 문명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집트 문명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으나 마르지 않는 나일 강 덕분이다.
이집트 문명은 길이 6,671km의 나일 강의 풍부한 물과 우기마다 홍수가 남긴 퇴적물로 비옥한 토지를 가져 농업이 번성했다.
중국 황하 문명 역시 길이 5,464km의 긴 강에 의지해 발원한 덕분에 상류의 숲이 보존되었다. 특히 황하 문명은 거대한 신전도 도시도 건설하지 않았다. 중국 전역의 큰 강변에서 황하 문명에 버금가는 선사 유적들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 적어도 기원전 1,000년 이전까지는 대규모 산림 파괴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원전 700년대 열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을 다투어 지었고 더 많은 식량을 얻으려고 산림을 파괴하고 초원을 개간하였다. 오늘날 중국 내륙 곳곳의 황막荒漠 지대가 그 흔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구상 가장 황폐한 땅으로 알려진 불모지라는 뜻의 사하라 사막은 가라만테스 문명이 있던 곳으로 5,000년 전만 해도 호수를 낀 초원과 숲이 울창했던 곳이다. 우기에는 빗물이 강을 이루고 흘렀다. 이를 증명하는 유적과 유물이 리비아 영내 사하라 바위산에서 여럿 발견되었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산의 암벽에는 신석기인들이 그려놓은 그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습지동물인 하마와 초원동물인 누와 양, 그리고 농경에 사용된 농기구들이 발굴되어 이곳이 농경이 가능한 초원지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1만 2,000년 전 사하라 곳곳에 호수와 강이 있었고 구석기인들이 농경을 시작하여 7,000년 전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초원을 농지로 개간하고 숲을 파괴하고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분석한다. 5,000년 전 땅이 메마르기 시작하여 2,000년 전 가라만테스 족이 거대 도시를 세울 즈음 강과 호수는 바닥을 드러냈다. 우물을 파 식수를 구했고 지하수를 연결하여 어렵게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러다가 지하수마저 바닥나자 사막화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사하라 사막이다.
중동 요르단 고대 도시 페드라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6세기 나바테아족이 세운 왕국의 수도 페드라에는 협곡 상류에서 거대한 댐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반지름 25km의 넓이의 저수지에 물을 가둘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이다. 페드라는 기원전 4세기 이후 중동과 인도를 잇는 실크로드의 기착지로 번성했고 106년 로마제국이 이곳을 정복한 뒤 전략 요충지로 삼으면서 상주인구 3만 명 이상의 거대도시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우기에 제법 많은 비가 내렸고 협곡 상류에는 초원과 울창한 숲이 있었다. 로마점령군은 인구가 급증하자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초원과 숲을 농지와 목축지로 개간했다. 그 결과 우기에도 강수량이 줄어들었는데 비를 만드는 수증기의 공급원인 숲과 초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숲을 파괴하고 무분별한 개간이 부른 최악의 재앙은 1936년 북미대륙을 덮친 흙폭풍이다. 미국 남서부에서 시작하여 중부를 휩쓸고 동부의 뉴욕까지 덮친 이 폭풍으로 불과 2시간 동안 3억 톤의 흙먼지가 하늘로 솟구쳤고 여름 낮 기온이 46도까지 기록됐다. 무려 3년 동안 흙먼지 탓에 태양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미국 국토의 3분의 1이 초토화 되었다. 미국인들은 폭풍이 잦아진 뒤에도 폐렴 등 호흡기질환에 시달렸고 기근과 식량난도 이어졌다. 초원과 숲을 파괴한 결과였다.
대가를 치루고 난 뒤에야 연방정부 농무부 휴 베넷의 “초지 복원만이 흙폭풍을 막을 수 있으며 초원을 복원하기 위해 먼저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채택되어 최대 규모의 조림 사업이 시작된다. 10년 뒤 숲과 초원은 되살아났고 대부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 추후 훼손을 방지하였다. 오늘날 야생동물이 한가로이 뛰노는 남서부 초원은 재앙 끝에 복원한 탁월한 산림 정책의 결과이다.
네덜란드는 초지와 숲을 조성해 자연재해를 줄인 모범국가이다. 네덜란드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21m이며 국토의 3분의 2가 해수면보다 낮다.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세 개의 큰 강인 라인, 마스, 스헬더가 이 나라로 흘러왔다가 북해로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상류지역에 큰 비가 오면 홍수를 피할 수 없다. 만약 만조나 해일이 겹치면 작은 홍수에도 큰 피해를 입는다. 네덜란드는 ‘유수공간 프로젝트’를 통해 하류의 강폭을 넓히고 상습 범람지역에 유수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초지와 녹지를 대대적으로 조성하였다. 녹지에는 뿌리를 깊이 내리는 풀과 관목을 심었다. 풀과 나무는 홍수의 흐름을 늦추고 표토를 보호했다. 오늘날 농업강국 네덜란드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숲을 파괴하면 강이 보복한다. 찬란했던 문명도 거대 도시도 사라진다.
예나 지금이나 숲은 인류 문명의 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