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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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서광사 카페 ‘산사’에서

이서연
시인


겨울이 들어오는 자리엔 가슴 비우는 나무들의 숨소리가 시간의 눈금을 채운다. 어디서 시작된 시간이고, 어디로 가는 시간인지를 헤아려 볼 사이 없이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금은 시간의 눈금마다 새겨진 추억을 낙엽이 덮어 주고 있다. 그 사이 높은 곳도 낮은 곳도 없는 자리를 바람이 만들어 갈 때 나무들은 지나온 시간의 흔적에 뿌리를 내린다. 다시 그 뿌리가
잎을 틔울 때 새로운 삶이 올라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 버겁다. 안녕이라는 인사도 마스크 속에서 맴돌 뿐인 시대에 넌지시 물어본다. 어디에 무엇을 향한 발걸음이 필요한가, 괜찮겠지 싶은 눈빛도 멈칫멈칫하는데 나를 위한 안녕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일상의 일 분 일 초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의미가 된 시절에 놓인 나를 내 안의 그는 지금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쪽은 핑계 될 틈없이 사라지는 시간을 다독다독여 주는 힘이 있다. 서산으로 발길을 옮긴 건 그 다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심 속에 가슴을 다독여 주는 도량이 있다. 신라말인 928년(경순왕 2)에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893년(진성여왕 7)에 최치원 선생이 부성군(현 서산) 태수로 역임하면서 공부하였다던 구전이 있는 부춘산 서광사다. 본래 부춘산내의 상부, 중부 아래 부분에 3개의 암자를 건립하였으나 조선 말엽 상부와 중부에 있는 암자가 폐사되고 현재의 사찰만 남아 삼선암이라 불리어 오다가 1987년 서광사瑞光寺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1926년 서산군지에 따르면 서산 팔경의 하나로 ‘제5경 선암모종仙唵暮鍾 : 삼선암의 저녁 종소리’라는 기록이 있다. 은은한 종소리의 정취가 하나의 경치로 꼽힌다는 건 어둠이 어둠을 몰아내고, 밝음이 밝음을 밝히는 울림은 귀로만 듣는 게 아님을 느끼게 한다. ‘상서로운 빛의 도량’이란 ‘서광사’와 잘 어울리는 의미가 생각된다.


서광사를 품고 있는 부춘산은 다정한 연인의 가슴인양 겨울을 부추키는 시간에도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솔향을 풍기며 시민들의 가슴을 다독여 주는 둘레길은 벌써 눈을 기다리는 눈치다. 때 되면 내리는 눈처럼 때 되어 만나는 인연들 속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었는지 되돌아 보게 되는 시기, 높지 않아서 부담 없고 품이 넓어 걷기 좋은 산길에서 한 해의 시간을 정리해 본다. 온 듯 가고, 없는 듯 남아 있는 시간들이 추억이라는 기억의 책장을 채웠다. 한 장씩 들추는 동안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나’만 있고, ‘내 안의 그’를 잊었던 시간들이 그 부끄러움의 껍질이 되어 부스러진다. 삶의 틈새에 허한 바람이 불지 않게 공부한다고 했건만 부족한 공부는 역시 마음공부였구나를 깨닫게 된다.


생명을 나누는 자비행의 스승이셨던 법장 스님이 자취가 서린 서광사는 3층 법당 중 1층 편액이 ‘인곡수련원’으로 되어 있다. 아직도 그곳에 들어서면 어진 미소로 맞아 주시던 큰스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대웅전 안의 벽과 외벽에는 『화엄경華嚴經』의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구도의 길을 떠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동자를 바라보시는 백의관음보살의 미소를 보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다정한 연인인 듯 부춘산 가슴으로
넉넉한 자애향이 관음처럼 퍼져오니
법장의 법향 아닐까 두 손 모아 담아본다


눈 뜨면 부처 따라 백일을 하루처럼
목탁 들면 선재 따라 사바를 도는 기도
도신의 구도 법음에 서산마루 젖어간다


경계에 시달리다 본마음 잃거들랑
사는 길 헤매다가 여여함 잃거들랑
한 호흡 가다듬어 본다 상서로운 빛도량서
                       -상서로운 빛도량에서-


충남 문화재자료 제421호로 지정된 후 더욱 그 미소가 환해지신 목조보살좌상께 안부를 건네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 이름이 ‘산사’다. 이름만으로도 차 한 잔에 마음도량의 기운이 스며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음악으로 포교하시는 불교음악의 법사 도신 스님께서 “이곳은 꽃차가 좋아요.”하시더니 우리 부부와의 오랜 인연의 향기를 차로 전해 주신다. 법장 스님께서 서광사에 상서로운 빛이 뿌리 내리게 하셨다면 도신 스님은 부지런히 그 빛을 중생들 가슴으로 퍼 나르시는 분이시다. 오랜 시간 부처님의 향기가 귀에서 가슴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이제는 언어로도 담아내어 그 은근한 문향을 펼치고자 준비 중이신 분이다. 그런 까닭에 카페를 산 어귀에 마련하실 것일까. 어쭙지 못하는 사이 스님은 꽃차를 내어 주시고 다른 중생 돌보시러 나가셨다. 그런데 카페 문 맞은 편 벽의 시가 나를 기다린 듯 맞이한다.


“나무 몇 그루 새 몇 마리/바람 한 다발 구름 두어 송이/어쩌다 꽃과 낙엽을 두고/산이 앉아 있다//생각을 잊은 사람이 산을 오르면/산은 나무가 되고/실연하는 사람이 산을 오르면/산은 새가 된다//어디로든 훌쩍 떠나고픈 사람이/산을 오르면/산은 바람이 되고//덤덤히 살고픈 사람이/산을 오르면/산은 구름이 된다//숨을 걸고 사랑하고픈 사람이/산을 오르면/산은 꽃이 되고//노년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산을 오르면/산은 낙엽이 된다//사람은 그저 오지 않지만/산은 그저 머문다/그저 있어/그저 주며/그가 되어 준다”
                                                          -박도신 시 ‘산사山思’전문”


아, ‘산사’는 ‘산사山寺’가 아니라 ‘산을 생각하다’의 ‘산사山思’였다. 산이 그곳에 있기에 가는 것이지만 산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가느냐에 따라 그 어떤 의미로든 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보살’임을 새기게 된다. 산 같은 사람이 부처요, 부처가 산 같은 사람이다. 산이 부처요, 부처는 내가 지금 만나는 산이 된다. 산이 있어 걷고, 걸으니 생각하고, 생각하는 동안 산이 되는 시간여행을 이렇듯 이번에도 산사카페서 해 본다.


목련, 천일홍, 구절초, 금잔화 꽃차 외에도 면꽃, 쑥차 칡순차, 깻잎 아카시아, 히비스커스, 천년초차 등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창가엔 가슴을 채워줄 책들이 즐비하다. 어느 책 어느 쪽을 펼쳐도 문향이 돋는 언어들을 만날 수 있다. 언어도 인연으로 만난다. 시간을 그런 인연으로 채워간다면 이번 겨울엔 온통 귀한 인연들뿐 아니겠는가. 책과 더불어 노을빛 금잔화 차를 음미하였다. 타오르는 사랑 그 자체였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금잔화는 금송화, 홍화초로도 불리며, 서양에서는 메리골드라 부른다. 국화과 꽃이라 국화차와 함께 가을에 준비해 겨울에 마시면 눈 건강은 물론 비타민E도 보충하게 된다. 동반자는 향이 더 깊고 심신 안정에 좋은 국화차를 선택해 함께 나누며 도란도란 지난 1년의 시간 속을 걸었던 마음을 쉬어 보았다.


마음이 고파서 울던 벗이여
벗이 멀어서 아팠던 선우여
인연의 가시에 상처 난 시간을 걸으며
스스로 ‘내 안의 나’를 지우려 했던 이여
가을이 떠나 겨울이 오던 날도 향기롭듯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날은 얼마나 향기롭겠나
사는 길에 얽혔던 인연 엮어
한 걸음 더 나가는 게 우리 몫 아니겠나


선우여, 나의 벗이여
“네가 오는 날, 여기 있을게”
나를 바라보는 시간 속으로 걸어가다
꽃차 우려 놓고 그대를 기다리는 ‘산사’로 오시게
                    -카페‘산사’에서 꽃차를 우려내며-


머물 수 없는 시간이 어딘가에 담아 두었던 햇살 한 줌을 건네주고 간다.
겨울이 촉촉한 길목에서 시작되는 날 카페 ‘산사’에서 잠시 머물러 보니 시간이 꽃향인 듯 책향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