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 불교신문 편집국장
영축총림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회주 정우스님)가 발간하는 <월간붓다(月刊佛陀)>가 창간 24주년을 맞았다. 사반세기에 한해를 남겨 놓았다. 내년에는 지령(紙齡) 300호의 대역사도 이루게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사찰 단위에서 펴내는 ‘불교잡지’의 이 같은 장정(長征)은 흔치 않은 일로 매체포교의 금자탑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월간붓다>의 쾌거는 서울 불광사가 1974년 11월부터 발간하는 <불광(佛光)>이나 1982년 3월 해인총림 해인사 승가대학이 펴내기 시작한 <월간해인(月刊海印)>과 더불어 독자와 불자들을 꾸준하게 찾아가는 드문 사례로 불교잡지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에 비해 매체를 통한 포교가 취약한 불교계 현실을 고려할 때 창간 사반세기를 눈앞에 둔 <월간붓다>의 공로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월간붓다>가 첫 걸음을 시작한 것은 1988년 3월이다. 대한민국의 중심에 부처님 가르침을 펴겠다는 ‘서울포교 원력’을 세운 정우스님이 통도사 서울포교당으로 구룡사가 도심포교를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이다. 1985년 지금의 양재동에서 천막법당으로 어렵게 출발한 구룡사의 형편에서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노천에 천막법당 하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신도들과 함께 부처님을 온전하게 모시고 불자들이 법회를 볼 수 있는 만불보전 불사의 원력을 실천에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매체포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월간붓다>의 모태인 <구룡사보>를 창간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어려운 재정 상황에도 ‘사보’ 창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무엇보다 정우스님의 결단과 신도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구룡사 주지 소임을 보고 있던 정우스님은 <구룡사보> 창간호에 실린 ‘설법’을 창간사로 대신하면서 사보 발간의 동기를 상징적으로 밝히고 있다.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여 넉넉함을 가진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우선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력이란 용기 있는 인생을 말함이지만 근본은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맹목적인 믿음은 진정한 종교적 믿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자 하는 그 믿음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스님은 창간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불자들의 신행생활에 있어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하면서 ‘부처님 말씀’ 즉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신행생활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처님 말씀을 정확하고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월간붓다>의 전신인 <구룡사보> 창간의 결단을 내린 것 또한 부처님 말씀을 바르게 배우는 중요한 방편 가운데 하나로 인식했음을 창간호 설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매체포교를 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정우스님은 <월간붓다> 2008년 2월호에서 보다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구룡사를 창건하는 과정 속에서 처음 세웠던 포교의 원력을 끝까지 견지하고 여러 가지 기도와 법회를 진행하면서 절을 찾는 시민들에게 불교를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문화포교를 시도할 목적으로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불교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기복불교와 무속불교를 탈피하고, 그 자리에 순수불교가, 수행 정진하는 불교가 자리 잡기를 발원했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정신문명의 정립과 가치의 구현을 통해 사회를 맑히는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달하여 인간의 참된 가치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이념을 창출하는 나름의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매체포교의 신기원을 이룩한 <구룡사보>는 창간 후 독자들과 불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속적인 발전으로 호평을 받았다. 물론 처음에는 사찰에서 발행하는 <구룡사보>를 낯설어 하는 신도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까지 불자들의 일반적인 신행생활은 절에 가면 단순히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가족의 건강이나 염원을 성취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당시로는 매주 일요일 법회에 참여하기 위해 절에 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신도들에게 다양한 불교 소식과 법문을 담은 <구룡사보>는 ‘낯선 친구’ 같았다. 하지만 사찰에서 진행되는 법회 소식과 스님들의 법문을 가정이나 직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안 후 <구룡사보>는 ‘오래된 도반’처럼 가까워졌다. 비록 몇 페이지 안 되는 분량이었지만 <구룡사보>는 지면을 충실하게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방장스님의 법문과 주지스님의 설법은 물론 참선수행법과 신행생활, 그리고 성보(聖寶,불교문화재) 소개와 불교학자들의 논문 등을 수록해 독자들에게는 친근한 ‘불교 길잡이’로 자리매김 했다.
1989년 11월 구룡사 만불보전이 완공되면서 서울 도심포교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특히 강남에 위치한 구룡사는 지역적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는 한편 만불보전에 ‘최신식·최첨단 시설’을 구비했다. 지하 2층, 지상 7층으로 조성된 만불보전에는 법당은 물론 참회실, 적멸전, 시민선방, 염화실, 극락전 등을 구비해 불자들이 불편 없이 신행생활을 하도록 했다. 또한 극단 신시와 유치원까지 갖추고 비디오 시설과 냉난방 시설을 완비해 도심포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구룡사보>는 불사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불자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사찰과 신도들의 소통 공간으로 사부대중이 구룡사 불사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도록 한 것이다.
1991년 10월 사격(寺格)을 일신하고 서울 도심포교의 선두주자로 나선 구룡사의 위상에 맞도록 <구룡사보>는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1991년 10월 <월간구룡(月刊九龍)>으로 제호를 변경하면서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담아 나가기 시작했다. 구룡사 신도들의 사보(寺報)에서 시민과 일반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불교매체’로 외연(外延)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불광>이나 <월간해인> 등 몇몇 잡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불교잡지들이 창간 후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 이슬처럼 사라지거나, 사찰 소식을 전하는 ‘소규모 사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외연을 확장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같은 변화와 발전 또한 당시 주지 정우스님의 결단과 신도들의 동의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도심포교당의 위상을 확고하게 자리 잡은 구룡사 사부대중이 ‘건물불사’ 외에도 매체를 통한 불법 홍포에 강력한 의지가 결집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례이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월간구룡>은 제3의 도약을 시도하며 교계 안팎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집중시켰다. <월간붓다>로 제호를 바꾸면서 명실상부한 ‘불교매체’로 전환된 것이다. 제호 변경 후 처음으로 발간된 <월간붓다> 2000년 3월호에서 정우스님은 “<월간구룡>은 구룡사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점이 있었다”고 술회하고 “다시 시작하는 <월간붓다>는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다”며 <월간붓다>의 출발을 선언했다.
당시 스님은 “상대방에 대한 칭찬은 이해라고 생각한다”면서 “서로가 서로를 칭찬함으로써 세상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 것”이라고 <월간붓다>의 발행 정신을 설명했다. 험담하거나 헐뜯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과 긍정으로 상생(相生)의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진실한 삶은 늘 우리 마음자리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위대해지지 않고서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결코 위대해 질 수 없습니다.”
당시 종단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스님은 공심(公心)과 승가화합, 그리고 출가자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월간붓다>의 지면으로 반박하기 보다는 ‘발로참회(發露懺悔)합니다’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는 글을 통해 “모두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길 것이고, 늘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업을 소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월간붓다>로 제호를 바꾸면서 발표한 글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구룡사보>와 <월간구룡>의 역사와 정신을 온전히 계승한 <월간붓다>는 스님들의 법문과 설법은 물론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며 위상을 강화해 왔다. 시끄러운 세속의 번잡한 일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쉼터’이자 ‘법당’의 역할을 묵묵히 담당해 왔다. 산사를 자주 찾는 일이 쉽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월간붓다>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언제나 친근하게 부처님을 친견하는 장을 제공했다. 또한 가정이나 직장으로 배달된 <월간붓다>는 가족이나 이웃, 동료들에게 전달되어 ‘찾아가는 포교사’ 역할도 수행했다.
2012년 1월호 목차를 보면 <월간붓다>가 독자와 불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위한 노력을 확인 할 수 있다. 창간호 이후 계속되고 있는 월하대종사의 법문과 정우스님의 설법은 사바세계에서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는 감로수처럼 다가온다. 고해(苦海)인 사바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에게 부처님과 스님의 가르침은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또한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침반처럼 지향점을 제시해 준다. 1월호에는 △구룡사 12월 행사 화보 △구룡사, 여래사, 장안사, 연화사, 법계사 주지스님의 신년사 △특별기획(임진년 용의 해) △다람살라 소식 △불교설화 △건강칼럼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사를 싣고 있다. 부처님 정법에서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사를 생산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엿보인다.
지난 2008년 창간 20주년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축하메시지를 전해 왔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교매체’를 지속적으로 발간하는 노고를 치하하면서 몇 가지 당부를 했다. 귀담아 들을 내용들이다. 지관스님은 “기본적으로 ‘도심지역에서 생활불교를 실천하고 호흡하는 전법도량’이라는 구룡사 창건 목적에 맞추어,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도시민들에게 부처님의 바른 법, 정법을 전하는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면서 “서양문명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다양한 불교문화와 민족문화를 전달하여 한국불자로서의 자긍심을 확립하게 하고 문화적 소양을 높여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월간붓다>는 그동안 창간 정신을 면면히 계승하고, 지관스님의 당부를 잊지 않으며 정진해 왔다. 특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국민에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내년 초면 <월간붓다>는 창간 25주년을 맞이한다. 나이 25세면 청년이다. 가장 의욕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이다. 사보로 출발했지만, <월간구룡>을 거쳐 매체포교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월간붓다>가 사반세기의 역사를 눈앞에 두고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불교의 현대화·생활화·대중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월간붓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지평을 더욱 확장해 나가길 기원하며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무엇보다 <월간붓다>가 기존에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만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 종이신문이나 방송매체도 인터넷을 병행하여 소식을 전하고 있다. 물론 교계의 다른 매체처럼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기존에 축적된 정보를 백분 활용해야 한다. 즉 <구룡사보>와 <월간구룡>·<월간붓다>에 게재된 각종 기사와 글들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월간붓다>사이트(mbuddha.com.ne.kr)를 통해 2000년 2월호부터 2006년 11월까지 기사제공을 하고 있으며, 2007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붓다월드>사이트(buddhaworld.org)와 구룡사 홈페이지(guryongsa.com)를 통해 기사제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월간붓다>사이트의 기사 내용을 <붓다월드>사이트로 가져오는 방법과 2000년 이전에 수록된 기사들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만 2000만 명이 넘게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서비스 제공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종이를 통한 포교와 함께 젊은 세대에게 빠르게 전달될 수 있는 스마트폰을 통한 서비스 제공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동안 게재된 스님들의 법문이나 교수들의 논단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도 있다. 이와 함께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과 스님들의 법문, 그리고 다양한 교계소식과 사찰행사 등을 담은 <월간붓다>를 가족 모두 본다면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부처님 가르침을 보다 많은 이에게 전하고자 하는 ‘창간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등 미래세대가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노력도 경주할 필요가 있다.
1988년 3월호 <구룡사보> 창간호에는 당시 영축총림 방장 월하대종사(제9대 조계종 종정 예하)의 법문이 실려 있다. 월하대종사는 창간호 법문에서 (조계종이 간화선 수행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선(禪)과 교(敎)를 균형 있게 공부할 때 ‘바른 깨침’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는 곧 부처님 가르침인 교(敎)의 내용을 불자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월간붓다>의 필요성과 사명감을 상징적으로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수행의 근본은 선(禪)과 교(敎)의 갈라짐이 아니다. 선시지불(禪是之佛)이요 교시지어(敎是之語)의 참뜻을 헤아리는 지혜(智慧)가 있어야 힘을 얻을 수 있다.”
사반세기를 앞둔 <월간붓다>가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창간 정신의 초발심(初發心)을 더욱 선명하게 발현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