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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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하면 관상觀相도 바뀔까?

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 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
/ Blog.daum.net/hyun-jaeho


주제어 :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선가귀감 중에서)
이번 호는 요즘 주부들에게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성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불투명한 미래를 늘 우려하고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유불선’은 물론 여타 종교와 탈무드 등 선지식이 될 만한 모든 곳에서 지금 이순간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지금 이순간의 현실이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이니, 미래는 지금 너의 행동에 달려있다’라는 의미로 우리를 교화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따르기 보다는 손금, 관상 등에 귀를 쫑긋 세우곤 합니다.
눈앞의 현실에 급급한 지금의 세상, 어느덧 우리가 살아가는 아름다웠던 세상은 인스턴트 세상으로 변하고 있고, 사람의 얼굴마저 인스턴트화 시키고 있습니다. ‘성형’의 필요성을 아무리 고상하게 설명한다고 하여도, 조상이 물려준 것을 훼손하는 것은 바람직한 처사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1. 관상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 해 봅니다
일전에 뜨거운 열풍을 몰고 왔던 ‘관상’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그 영화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이던 간에 그 내용에서나, 세간에서나 관상에 대한 궁금증은 가득합니다. 그런 궁금증을 때때로 주변의 어르신들이 풀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내 친구가 2천원 빌려가더니 나만 보면 슬슬 피해.”
“걔 사진 있냐?”
“응. 저번에 놀이동산에서 찍은 거 있어.”
“어디 보자꾸나… 쯔쯔쯔…. 받을 생각은커녕, 사귀지도 말아라.”
세상을 오래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고 그들의 장단점에 울고 웃던 기억들이 어느덧 할아버지를 관상쟁이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관상으로 과거를 알 수 있으며, 미래 또한 점칠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손주한테 이야기 한 것처럼, 관상이 정말 맞을까요? 예컨대, 지금은 제아무리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살고 있어도,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했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마에 어지러운 주름이 있었던 것이죠. 이마에 크고 작은 주름이 산발적으로 있다는 것은 어려운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징표거든요. 흠이 되나요? 아니죠! 자랑거리일 수도 있죠. 그 어려움 속을 헤치고 나왔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관상은 우리에게 많은 흥미를 제공해줍니다. 사람들은 재미 삼아 본다며 손금, 점, 관상, 타로 등을 보려 하지만, 속내는 막연하게라도 ‘뭐 좋은 소리 나오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점치는 이가 자기한테 한 말들은 거의 영원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장난으로 들락거릴 곳이 아님이 분명해 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막연한 미래를 그리워하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친구들과 발걸음을 함께 합니다.  
우리는 수상(手相, 손금), 관상 등을 통해 미래를 점치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상이든 관상이든 이러한 ‘상법相法’은 100%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미래가 궁금하다면 100% 족집게 ‘상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글을 통해서 100% 확실한 상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 성형을 하면 견적(?)이 안 나옵니다.
성형을 하면 관상이 바뀝니다. 그 상(相, 모양)이 바뀌는 것이지 (소위 말하는) 팔자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굴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합니다.
“야야! 걔는 견적이 안 나와.”
하도 못생겨서 성형비가 얼마 나올지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온다는 친한 친구들의 우스개 농담입니다. 그런데 성형을 해도 견적이 안 나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성형하신 분의 얼굴(관상)을 보면, 미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설혹 조금 느껴져도 미래를 헤쳐 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관상법’이 100% 맞지 않지만 그나마 미래를 점쳤을 때, 뭔가 어려움이 예상되면, (얼굴의) 다른 여러 곳의 상태를 보고 총체적인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이 으뜸가는 관상가입니다. 인생은 문제가 있는 만큼 해결책 또한 지니고 있건만 우리는 원망의 그늘 속에 자신도 모르게 해결책을 외면하고 맙니다. 그러나, 성형을 하게 되면 미래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왜? 얼굴에 조화가 깨졌기 때문이죠!
앞서 말씀 드렸듯이 할아버지들은 얼마간 관상을 봅니다. (아마추어 관상가죠) 과거와 미래를 모르더라도 성격 정도는 얼추 맞춥니다. 그런데 성형한 얼굴을 보면 알쏭달쏭합니다.
성형한 얼굴은 미래를 개척할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젊음을 유지하고픈 욕망, 눈에 띄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미래를 어둡게 만든 것입니다.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도록… 말입니다.
지금쯤 다시 한 번 주제어를 읽어보시죠.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그렇습니다. 내일을 고려하지 못하고 오늘에 급급해 저지른 작은 행동이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현실에 따른 행동만 일삼는다면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무명無明 아니겠습니까? 무명이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이 참에 상법相法에 대해 공부 해 볼까요?
상법 세상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수상불여관상手相不如觀相 : 손금으로 보는 것은 관상을 보는 것만 못하고
관상불여골상觀相不如骨相 : 관상으로 보는 것은 뼈의 모양을 보는 것만 못하니
골상불여심상骨相不如心相 : 골상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의 모양을 보는 것이 으뜸이다.
관상보다 골상이 정확하다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예컨대 앞에 있는 사람이 총명한가 보려면 어딜 봅니까? 일반적으로 눈빛을 보죠. (물론 관상법에서는 눈빛만 보고 결정하지 않습니다만)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피곤한 날, 속상해서 우울한 날, 기분 좋은 날에 따라 눈빛도 얼굴도 바뀌거든요. 그래서 잘 알 수 없죠. 그런데 뼈를 만져보면 거의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죠? 바로 ‘족삼리足三里(우측사진에서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위치)’라는 혈점 윗부분의 볼록한 뼈입니다. 그 부분을 만져보면 총명함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총명하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신경세포의 속도가 평균보다 좀 빠른가 늦은가를 가늠할 뿐입니다. 따라서 굳이 따질 일도 아니지요.
그리고, 양미간 밑의 콧등 뼈가 예리하거나, 둥글거나 하는 정도에 따라 부모 (또는 조상)의 도움을 받았는지 (또는 받을 것인지)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뼈 모양을 통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골상법이지요.
4. 심상心相이 무엇이기에 상법 중의 최고인가?
주제어의 뒷부분을 함께 보면…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선가귀감 중에서)
불가에서는 어지러운 마음을 가리켜 날뛰는 ‘망아지’와 같다고 합니다. 행동을 단정히 하고, 말을 곱게 하고 더 나아가 마음마저 가지런히 하고자 함이 바로 수도인이 마음을 붙잡으려는 이유겠지요. 그렇듯 우리의 마음은 말과 행동의 인자因子인 것입니다. 마음이 안정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옛 노래 가락이 떠오릅니다.
심상心相은 곧 마음의 모양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모양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마음의 모양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말씨, 그 사람의 행동, 좋은 내용 이야기 할 때의 표정, 나쁜 이야기 할 때의 표정, 이타심, 경계심, 주의력 등등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봄으로써 마음 모양을 가늠할 따름입니다.
좋은 심상이란 곧 맑은 영혼을 이야기 합니다. 좋은 심상을 피부에 닿게 (그리고 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피’가 맑다는 이야기 일수도 있겠습니다.
5. 심상心相을 예쁘게 만들자!
똑같은 ‘자극’을 주었을 때, 어떤 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사람은 ‘화’가 난 것이지요. 왜 ‘화’가 날까요? ‘화’의 원인이 ‘자극’이라면, 같은 자극에 누구나 ‘화’가 나야 맞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동일한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다르지?
‘화’를 내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 화 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만 분명히 화가 덜 나거나, 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자극’이 ‘화’를 내게 한 것이 아니라 ‘자극’이 화를 돋운 것입니다. 돋우었다는 것은 이미 있는 ‘화’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지요.
결국 ‘화’는 그 사람의 근根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으로 보며 육근을 통하여 육식六識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구조라고 부처님은 설법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우리 인간은 자신의 ‘근’에 맞추어 외부의 ’경(환경)’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가, 나는 어찌하여야 하는지 느끼는 ‘식’을 통하여 2차적인 말 (또는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배경에서 근기根機라는 말을 합니다.
근기라 함은 자신에게 익숙한 습習에 맞추어 사물을 판단하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습’된다는 것인가요? 우리의 마음, 우리의 피, 세포, 뼈 등 모든 기관에 ‘습’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자리잡은 ‘습’을 바탕으로 근기가 형성되고 그 ‘근’에 따라 우리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심상心相을 본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근기根機를 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 앞에서 언행을 정말이지 철저히 조심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근기’를 노출시키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근기에 맞게 (근기 수준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는 《법구경》의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 간절히 생각납니다.
근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경전 공부’를 하고 ‘선행’을 하여야 합니다.
공부함에 있어서 선사들의 말 한마디, 조사들의 어록을 인용하여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불교 공부 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한 마디라도 가슴에 심고 한 달, 두 달, 석 달 동안 곱씹어 생각하고 연구하여 그 깊은 의미를 알았을 때, 가슴이 터져 나오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얻는 것입니다.
선행을 함에 있어서, 생각만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야 합니다. 연등을 달았는데 내 이름이 어디 있는지 목이 빠져라 법당 천정을 살피기보다, 믿음으로 사찰을 아끼고, 믿음으로 사찰의 운영을 돕는 불사공덕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연등을 살피는 순간 불사공덕은 멀리 가고 아상만 키우는 것이지요. 남을 믿어주는 마음, 긍정으로 보는 마음, 거리에 휴지를 말없이 줍는 그 마음이 나의 근기를 좋게 만듭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좋아진 근기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6. 아름다운 생각이 아름다운 나를 만들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근’의 참뜻을 이해하고 ‘안이비설신의’를 다시금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살펴보아 본인의 근기를 좋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근기가 예뻐지면 ‘심상’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사회가 ‘성형’보다 ‘근기’를 중시할 때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근본’이라는 말 또한 ‘근’의 중간, 바탕을 뜻하니, ‘근기’는 종교를 초월하여 우리 곁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깊이 고려하고 있지 않음이 문제인 것이지요. ‘성형’ 같은 방편보다 ‘근본’을 중요시 여기는 불자가 되어 온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들기를 서원誓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