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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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리라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중생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세속의 여덟 가지 장애가 있다. 이익, 쇠락, 비방, 명예, 칭찬, 속임, 고통, 쾌락이 그것이다. 우리를 흔드는 이러한 세속적인 장애들 때문에 자만하게 되고 또한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대승의 도를 수행하는 이는 그러한 섭리를 알기에 스스로 마음을 챙기는 방도를 구한다. 그러한 마음 다스림에 있어 항시 그 바탕으로 삼아야 할 것이 바로 ‘보리심’이다.
14대 달라이라마(뗀진 갸초, 79)는 항시 강조해 왔다. ‘시기적으로 오늘은 21세기의 에필로그’와 같다고. 부디 경제적 부귀영화만을 목표로 한 삶을 살지 말아 달라고. 우리가 지향해온 지난 반세기의 인과는 바로 지난 4월 16일 한국의 진도 해안에서 발생한 세월호 재난을 통해 확인되었다. 달라이라마는 4월 19일 한국정부에 보낸 애도문을 통해 침통한 심정을 전했다. 전문에는 21세기를 주도할 젊은이들이 대다수의 희생자임을 비통해 하면서, 불교의 승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임에 안타까워했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보름간의 유럽 순방과 법회를 마무리하고 5월 17일 그의 두 번째 고향 인도 다람살라로 돌아왔다. 어디에 머물더라도 그곳을 집과 같이 여기며 어디서든 소중한 벗과 함께라면 부모를 만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그다.
달라이라마의 노르웨이 방문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 정부에 일방적인 ‘달라이라마 회동 금지령’을 내렸다. 양국의 무역 협력에 있어 중국은 노르웨이 연어의 주요 수출국이었기에 노르웨이 정부는 중국 정부의 압박에 순응해 달라이라마와 회동하는 것을 금하는 부서 지시를 내렸다. 노르웨이 국민들은 분노했다. 노벨평화상의 종주국인 노르웨이의 평화 이념을 고수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달라이라마의 노벨평화상 25주년을 기념해 노르웨이에 초청을 받은 달라이라마 측의 입장은 시종일관 유연했다.
급기야 중국정부는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서장자치주
(티베트)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오는 6월의 티베트력 석가모니 붓다의 탄생일을 맞아 개최되는 칼라차크라 법회에 중국 내륙의 불자들이 집중적으로 몰릴 것에 대비해 외국인을 통제한다는 이유였다. 매년 3월 티베트의 민중봉기일에 즈음하여 내려졌던 외국인 통제와 이례적으로 내려진 이번 금지령에 티베트를 방문 계획했던 많은 여행객들의 발목이 묶였다. 지난 2012년 여수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삼동 린포체와 종교문화부 장관(빼마친조르)을 대표로 한 티베트망명정부 불교단과 중국불교 대표단들의 마찰로 대회 직후 중국정부는 일시적으로 한국인의 티베트 출입을 통제하고 불허한 사례도 있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일본 고야산 법회에서 세속의 장애로부터 보리심을 발현하고 대승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마음 다스림에 대해 법문한 바 있다. 나와 타인이 지닌 공통의 업을 인정하고 나를 바꾸면 세상도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을 일깨우는 말씀이 주된 골자였다. 그 가운데 게쉬 랑리탕바의 <수심팔훈>은 대승불자의 복 밭을 가꾸는 지침이 될 것을 기대했다. 
보리심은 불과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다시 강조하면 보리심은 해탈을 이루고 선취에 나기 위한 기반이 됩니다. 결단코 대상을 향한 사랑과 자비심을 낸 마음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내가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계를 지키는 것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마음자리에서 자신을 무한히 확장시켜 출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나가르주나(용수보살)께서 <중관보만론>에서 강조하셨고, 샨티데바(용수보살)의 <입보리행론>에서 역시 구구절절하게 강조하는 바는 오직 보리심입니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윤회에서 고통을 받음은 물론이거니와 열반과는 완전히 등을 지게 됩니다. 여전히 번뇌를 끊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만이라도 낸다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될 것이며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보리심이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행복한 마음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상의 70억 인구가 각각의 개인만을 위하고 너와 나를 구별하면서 많은 문제들을 야기 합니다. 보리심을 일으켜 불법을 따르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이 역시도 행복을 원하는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티샤의 제자 게쉬 랑리탕바는 까담빠의 계보를 잇는 스승입니다. 게쉬 뽀또와의 제자이신 랑리탕바의 <수심팔훈>을 보면, 일체 중생을 내가 서원한 바를 이뤄주는 귀한 보석과 같은 존재로 여기며 존귀하게 대하고 그 생각을 수습하여 닦아 수행할 것을 권합니다. 타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나 보다 낮은 존재로 바라보고 가엾이 여기라는 의미가 아닌 존경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해탈하여 일체 종지를 얻는 것은 스스로의 수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낸 이가 다음 생에 선취에 남 역시도 중생에 비롯하여 의한 것입니다. 삼학의 기본 수행은 계학입니다. 그 계학의 바탕이 중생입니다. 중생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불과의 씨앗입니다. 윤회에 머물며 살아가는 것의 바탕 또한 오직 중생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디에 머물더라도 스스로를 미천하게 가장 낮은 자리에 둬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의지함에 의하여 현현한 것입니다. 붓다의 제자로서 비구이며 나란다 승원의 법통을 이은 티베트불교를 수학한 승려 달라이라마인 저는 다양한 각계각층의 중생과의 만남에서 항시 그들을 저 보다 더 존귀한 이들이라고 여깁니다. 만약 저에게 번뇌가 있다면 달라이라마라고 하는 의미와 위치에 따라 그들을 저 보다 수승한 대상이라고 여기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상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외도와는 달리 불교에서는 분별을 매우 섬세하고 미묘하게 접근하기에 가능한 세속적 윤리에 근거한 마음자리입니다.
이기심과 번뇌가 일어나면 그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한 때 성품이 약한 중생들과 함께 했던 만남이 기억이 납니다. 인도 델리에서 나병 환자들을 위한 모임에 참석한 때에 느낀 바입니다. 환자 요양원과 관련된 관료들은 정작 나병 환자들과 가까이 하기를 매우 꺼리는 모습을 눈에 띄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현장에서 만난 나병 환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안부를 나누었고 그러한 인사 과정에서 저 또한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을 모함하는 이를 만났을 때 그를 향해 연민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아끼고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 어느 날 신세를 입은 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리심 수행을 하는 이라면 그들을 대상으로 은혜로운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내가 비로소 인욕 수행을 할 수 있는 선지식을 만난 것과 같으며 보물 창고를 열어줄 문지기를 만난 것과 같다고 여겨야 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단기간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닦음에는 분석적인 수행과 관상적인 수행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모두는 습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매일 매일 길들여져야 합니다.
오온조차도 공함을 아십시오. 초전법륜에서 석가모니 붓다께서 설하신 바는 인무아입니다. 중전법륜의 《반야경》 설법에서는 생명체 제반의 실체가 없음을 깨우친 이를 대상으로 향유하는 외부의 법조차도 자상이 없음에 대한 법무아임을 깨우칩니다.
한국에는 보리심 수행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습니다. 나란다 승원의 법통에 근거한 보리심의 구체적인 증장의 지침서가 담긴 것이 적천보살의 <입보리행론>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심화한 것이 용수보살의 <중관보만론>입니다. 중관 사상을 근거로 한 용수보살의 계보로 이어지는 수행법으로 자타상호 교환법을 통한 것과, 미륵보살과 무착보살로 이어지는 칠종 인과법이 있습니다.
보리심은 일종의 마음자리입니다. 이 마음자리는 어느 날 문득 느끼고 체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인과법으로써 증장되는 것입니다. 보리심은 자비심을 근저로 하여 일어납니다. 걸림이 없는 이타심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일상에서 꾸준하게 스스로를 당부하고 다독이십시오. 여기 ‘마음을 다스리는 여덟 가지 게송’을 항시 가까이 하면서 세상과 마주해 보길 바랍니다.
-한량없이 많은 중생을 대함에 여의주 보다 뛰어난 최상의 서원을 성취하도록 하는 존재로 여겨 그들을 공경하도록 하소서.
-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다더라도 나 자신을 겸허히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며 꾸밈이 없는 마음으로 상대를 가장 존귀하게 삼도록 하소서.
- 모든 행동에서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살펴 번뇌가 일어남을 알아차렸다면 나와 상대를 해함을 알아 굳세게 제압하도록 하소서.
- 성품이 악한 중생이 있어 죄를 짓고 거친 행동을 삼는 것을 보았다면 마치 귀한 보석을 만난 것과 같이 그들을 귀한 존재로 여기도록 하소서.
- 질투심에 나를 욕하고 비난하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를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며 그들이 이득을 얻도록 하소서.
- 내가 아끼고 보살피며 크게 기대하던 이가 나를 심하게 해하더라도 마음 깊이 그를 바른 선지식과 같이 여기도록 하소서.
-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모든 행복은 나의 어머니와 다름이 없는 중생들에게 회향하며 그들이 겪는 일체의 장애와 고통들은 내가 짊어지도록 하소서.
- 이러한 행으로서 세속의 팔풍이 지닌 표상의 허물에 물들지 않고 일체의 법이 무상함을 알아 집착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