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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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씨앗, 자비심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이 법회를 들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은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이 성불하도록 하소서.”
티베트력 새해로부터 보름인 2월 19일,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4)의 신년 법회가 인도 다람살라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에서 열렸다. 전 세계 54개국에서 7천명 이상의 외국인이 이번 법회에 동참, 러시아를 비롯한 몽골 불자들의 참석이 눈에 띄었다. 티베트에서는 역사적으로 새해 보름이 되는 날이 오면 부처님의 전생담 가운데 한 대목을 골라 야단법석을 벌여왔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신년 법회에 임하기 위한 바른 동기를 먼저 세우고자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금 더 타인을 아낄수록 우리는 조금 더 더불어서 함께 안락할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와 무관하게 인류의 공통된 가치입니다.
중관심론의 설에 근거하면, 의식은 끊임없는 상속으로 이어집니다. 육체와 분리된 불멸의 주체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생명 지닌 모든 존재가 고통을 원하지 않음은 예외가 없습니다. 지금 누군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이러한 고통이 일어날 원인을 발생시켰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무한대의 세계를 인정합니다. 상호 의존하는 연기법의 도리를 통해 삼라만상의 이치를 헤아립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사성제를 통해 이를 분석하였고 일체법이 공함으로 귀결시켰습니다. 색 수 상 행 식을 통해 ‘나’라고 하는 관념을 일으킨 바 역시 인과의 조합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이는 중전법륜에 이르러 해심밀경을 통해 일체 법의 공함에 대해 원성실성 의타기성 변계 소집성으로 재 논의하여 보다 면밀히 증명하였습니다. 또한 삼전법륜에서는 의식에 대해 오로지 앎이라 하셨습니다.
여전히 영원히 불멸하는 ‘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용수보살의 중론 26장을 펼쳐 보십시오. 무명에 근거한 윤회의 원인에 대해 명확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는 18장에서 보다 심화되고 24장에서 귀결됩니다. 과거 날란다 승원의 수행자는 나의 주장과 타인의 주장이 지닌 모순점을 집중해 토론하는 학제를 고수해 왔습니다. 중론에 근거하여 연기법이 아닌 논리로써 존재하는 실상은 없습니다.
여전히 내가 보는 것이 항시 옳다고 고집하십니까? 업과 번뇌를 여의면 그 자리가 해탈입니다. 그리고 그 인연이 되는 사유의 체계는 공성의 논리에 근거합니다. 내가 보는 것이 온전하다는 편견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영위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에서는 실제 하는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기게 된 것은 뿌리 깊은 실집에 의한 사유의 착각이자 논리의 오류입니다. 상호 의존한다고 하는 연기법의 논리는 오늘날 현대과학 양자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면밀히 교류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분노를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화가 일어나는데 대상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우리는 어떠한 대상으로 인해 내가 화를 일으킨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실제에 대한 고착된 편견입니다. 때문에 거듭 사유하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노가 일어나는 시점에 나와 상대의 실체 그리고 그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권의 경전과 논전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붓다의 말씀과 논사의 논의를 거듭 의심하여 의중을 살피고 스스로 확신을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중생을 외면하면 수행자는 안락할 수 없습니다.
본생담의 9장을 시작하겠습니다. 붓다께서 전생에 한 때 왕자로 태어났을 때 한 바라문의 성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붓다에게 요청했습니다.
“당신이 지닌 코끼리 중에 뛰어난 한 마리를 내게 주십시오.”
수승한 보시 바라밀을 행하는 왕자는 흔쾌히 코끼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른 바라문이 찾아와 왕자에게 진귀한 보물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왕자는 이번에도 흔쾌히 행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난한 이가 찾아와 왕자가 살고 있는 집을 달라고 청하였고 왕자는 이 또한 머무는 바 없이 흔쾌히 내주었습니다.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과 집경론, 무착보살의 보살지는 티베트불교 까담빠의 기초 논서입니다. 수행을 하는 제자는 붓다께서 설하신 모든 가르침을 무자성의 논리로써 사유할 수 있도록 성실히 정진해야 합니다. 사유의 지혜는 수행자의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붓다의 귀한 법에 대해 왜 이러한 법을 설하셨는가를 명분을 올곧이 세워야 합니다. 반드시 고찰되어지고 분석되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견해로써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에서 얼마나 오롯이 타인을 위하는 이타심을 내십니까? 또한 불현 듯 일어나는 성내는 마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습니까? 반면 여러분은 화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화를 줄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오직 중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보리심이 일으키는 것은 자비심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자비심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발생합니다. 자비심은 모든 수행의 씨앗입니다.
여전히 나만을 위하는 마음만이 일어난다면 이번 생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구상의 70억 인류는 사랑과 자비의 결정적 산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격리되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어우러져야 하는 연기적 산물입니다. 과거 인간의 역사를 통해 자행된 지구상의 분쟁과 학살 등은 모두 이기적인 욕심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평화의 시대를 지향합니다. 그러한 때에 21세기의 불교도로서 우리가 보다 멀리 행복한 인류의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이유와 책임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