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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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가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구룡사 회주


입춘立春은 ‘봄으로 들어 선다.는 뜻입니다. 계절상으로 보면 봄은 3월부터 5월까지를 이르는 말 인데, 어찌하여 선조들은 입춘을 봄의 시작으로 보았을까요?
그것은 북쪽으로부터 밀려오는 혹한의 찬 기운을 극복하며 미리미리 준비하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입춘의 의미는 어렵고 힘든 환경의 시간들을 함께 이겨내자는 지혜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오천만 국민이 1천 원씩만 모아도 500억 원이니 1만 원씩 모으면 5천억 원이 될 것입니다.
지난, 연말부터 구룡사와 여래사 등 우리 포교당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자비의 쌀을 모으고 있습니다. 불자들이 동참하여 모아진 공양미를 10kg들이 포대에 담아 법당에 쌓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옛날방식(80kg)으로 계산하면서 절실한 마음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동참하는 자비나눔은 다다익선多多益善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찰에서는 가난했던 그 시절부터 해오던 일이였습니다. 그리고 강남지역 사암연합회에서도 정초正初 기도 중에 공양미를 모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환경이,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작가 볼트 슈나이더는 《인간이력서》에서, 50년 동안 인류사 연구로 얻은 결론을, 그는 망설임 없이 ‘문제는 탐욕貪慾이다’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하는 원인으로 번뇌煩惱를 말합니다. 번뇌는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노여움의 작용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노여움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명無明으로 인한 번뇌입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팔부금강역사八部金剛力士, 호법신중護法神衆, 화엄성중華嚴聖衆의 기도를 하면서 위신력威神力을 구하고, 불보살佛菩薩님의 가피加被를 원하고,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불보살님께 공덕을 차용하려는 의지의 표현일까요? 무엇을 얻기 위함 인가요? 볼트 슈나이더는 “문제는 경제 문제도 아니고 정치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환경문제의 주범은 우리 인류이다.” 했습니다. 왜 우리 인간이 문제일까요?
어떤 생명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절대로 세상을 떠나지 않을 생명체는 없습니다.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세상에서 오래 사는 축에 속합니다. 그런 세상에 인간은 최고의 영역 속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다가오는 그 시간이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다가오는 멸종의 시간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그게 언제 올지 모를 뿐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우울할 뿐이다. 인간 이력서를 꼼꼼하게 작성해서 반성으로 전망하는 사람만이 호모 사피엔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인류人類는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목말라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류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소비를 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갑이고 우리 인간이 을인데, 세입자貰入者에 불과한 인류가 쓸데없는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를 보복하는 정복으로 21세기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문명文明의 정점에 다다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지구는 온난화 현상으로, 북극이나 남극의 빙하氷河는 극단적으로 녹고 있습니다. 다른 해보다 금년 겨울은 더 춥고 눈도 많이 오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는 여름철에 태풍과 홍수를 걱정하게 됩니다.
갑과 을이 자연스러운 조화로움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세입자는 세입자로, 주인은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참담하기가 짝이 없다. 오만불손한 지배자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양한 미래를 예언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측하면서 이에 대처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측 가능한 세상에 살도록 노력해야 하고, 함께 고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노여워하는 이력서 앞에서 겸손과 겸허한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흘러가는 물도 아껴 쓰라』 하신 가르침은 무엇을 전하기 위함이었을까요? 그것은 나눔이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사소한 것이라고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풀어가야할 문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이 나눔입니다. 춥고 힘든 겨울의 환경을 지혜롭게 이겨내고자 하는 입춘은 이러한 우리 조상님들의 예지가 꽃피워진 절기節氣입니다.
‘탐욕이 문제이고 우리 다음 세대들이 이민 안가고 얼마만이라도 지구에서 좀 더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볼트 슈나이더는, 세상을 지킬 수 있는 화두로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나쁜 세상(惡道)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그렇다면,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의 정진력精進力으로 기도하는 그 모습은 우리도 부처님 같이 살겠다는 서원誓願의 염원念願이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든 세상의 환경을 맑힐 수는 없는 것일까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갈 때도, 올 때도, 머물 때도, 멀리 떨어진 저 세상으로 가야할 때도 따로따로 갑니다.
《증일아함경》에 『세상에는 섬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이 있는데, 첫째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둘째 연민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셋째 남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사람, 넷째 남을 보호하고 감싸는 사람, 다섯째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사람, 여섯째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 일곱째 바라는 것 없이 사는 사람이다.』 하셨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조건 없이 삽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무조건 삽니다. 용기는 지혜 있는 자의 힘이요. 어리석은 자의 힘은 만용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한 여인이 새로 생긴 가게에 갔습니다. 그 가게에는 없는 것 없이 다 판다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세상의 좋은 건 다 사고 싶었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우리 가게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 있을 뿐 입니다.’”
그렇습니다. 씨앗만 있습니다.
세상은, 행복의 씨앗을 키울 수 있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불행의 씨앗을 키우는 것도 내가 하는 일입니다. 어떠한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세상으로 다가가는 길일까요?
인생은 뒤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에 머물러서는 우리네 인생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긍정적인 삶속에 행복의 씨앗을 가꾸는 그런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mail : asanjungwoo@goog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