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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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보살의 독백

승한 스님
북한산 중흥사 총무


내 나이 다섯 살,
나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순수 그 자체였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만 보면 “오냐. 오냐. 내 새끼.” “오냐. 오냐. 내 강아지” 하면서 내가 옷에 똥을 싸도 “아이고 내 강아지, 큰일 하셨네.” 하시며 웃어주시고, 내가 요에 오줌을 싸도 “아이고 내 새끼, 쉬 하셨네.” 하시면서 웃어주셨습니다.


내 나이 열 살,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달라지기 시작하셨습니다.
“너는 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공부를 못하냐?” “도대체 너는 커서 무엇이 되려고 그 모양이냐?” 하시면서 내 마음에 먹물을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맘대로 놀지도 못하게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하며 공부해야 출세한다고 하기 싫은 공부만 하게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뭐? 엄마 아빠가 좋아서 나를 만드셨지.’ ‘내가 뭐 다른 사람을 닮았나? 엄마 아빠가 나를 만들었으니까 반반씩 똑같이 나눠 닮았지.’


내 나이 열다섯 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자꾸 집 밖으로만 뛰쳐나갔습니다. 엄마 아빠의 그늘을 벗어나 먼 하늘로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남자애들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가슴에 무엇이 돋아나려는지 젖꼭지 끝이 아프고, 괜히 간섭하는 엄마 아빠가 미워지고, 짜증이 나고, 덤벼들고 싶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는 그런 내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은 채 공부, 공부,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며 공부, 공부, 공부만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나만했을 때 그렇게 공부만 하고 살았어요?’
그러나 엄마 아빠가 무서워 그 말을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이제 그토록 그리던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담배를 피워도 괜찮고 어디 가서나 술도 사서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는 그때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고, “공부 안 하고 놀 때부터 네가 그런 대학밖에 못 갈 줄 알았다”고 하시더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학까지 졸업한 놈이 취직도 안 하고 놀기만 한다며 차라리 일찍 시집이나 가라며 집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열다섯 살 때는 집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도 안 놓아주시더니, 이젠 집밖으로 나가기 싫은데도 빨리 나가라고 거꾸로 내쫓았습니다. 그럴수록 내 마음엔 시커먼 먹물만 더 쌓여갔습니다.


내 나이 서른 살,
나도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자식도 낳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깨 같은 날이었습니다. 천 년 만 년 언제까지나 그 행복이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아지더니, 어느 날 부턴가는 아예 집에 안 들어오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벌이기도 하고, 홧김에 나도 술을 엉망으로 마셔보기도 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정어머니 아버지는 오히려 “거 봐라. 우리가 뭐라고 하든? 그놈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말하고 하지 안든?” 하면서 제 마음에 시커먼 먹물을 동이 째 쏟아 부었습니다.


내 나이 마흔 살,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벌써 마흔 살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아침에 일찍 나갔다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와서 다음날 아침이면 또 부리나케 집에서 나가는 하숙생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아침마다 아이들은 학교 갈 준비 해달라고 보채고,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나는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남편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그 자리에 서서 기계적으로 일만 하는 로봇 한 대만 서 있었습니다.


내 나이 어느덧 쉰 살,
어느새 이렇게 쉰내 펄펄 나는 쉰 살이 되어버렸는지… 그래도 이제 자식들도 다 대학에 가고 모처럼 내 시간을 갖게 됐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부터 남편이 집에만 들어오면 나를 피해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한밤중에도 휴대폰으로 문자 들어오는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 거실로 가서 답문자를 보내고 들어왔습니다. 뒤늦게야 나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남편들의 외도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내 일이 되다니, 서럽고도 분했습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데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오히려 저에게 큰소리쳤습니다. “오죽하면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겠느냐? 당신처럼 멋없고 재미없는 여자는 처음이야!” 라며 나를 두들겨 패기도 했습니다. 아니! 죽고 못 살겠다고 할 때는 언제더니, 이제 와서 나보고 멋없고 재미없는 여자라니, 그 탓이 뭐 나 때문이나요. 자기들 때문에 반지르르 하게 멋 내고 사는 여자들처럼 꾸미고 살 틈이 없어서 그랬지. 차라리 나는 죽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을 피기 시작한 남편은 나에게 들킨 김에 이젠 잘 됐다 싶은지 더 내놓고 바람을 피우고 외도를 했습니다.
결국 나는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니, 이제 내 인생을 한번 살아보기 위해서라도 이혼을 하고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내 나이 예순 살,
애비 없이도 착하게 잘 커준 자식들은 결혼해서 각각 딴 살림을 차려 나가고, 어느덧 나도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혼한 남편이 10년 만에 죽을병에 걸려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식들도 저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며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죽을 날을 받아둔 채 앙상하게 뼈만 남아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뜨거운 것이 가슴을 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 맞아. 남편이 저렇게 된 건 다 내 탓이야. 그때 조금만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했더라면 남편이 저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남편 말이 맞았어. 남편 수발 들어주고 자식들 뒷바라지 한다는 핑계로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식모처럼 꾀죄죄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내 꼴이 얼마나 보기 싫고 재미가 없었겠어. 따지고 보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게 된 것도 다 내 탓이야.’ 그러면서 회한의 눈물이 가슴을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 나이 일흔 살,
남편은 그렇게 가고 내 나이 벌써 일흔 살이 되었네요.
고희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알았습니다. 삶은 제행무상이라는 것을. 생겨난 것은 언젠가는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소멸한다는 것을,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은 텅 빈 것이라는 것을, 채울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텅 빈 허공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 본래 마음자리라는 것을, 본래 내 면목이라는 것을, 내가 있으므로 당신이 있고, 당신이 있으므로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여보! 사랑해요. 머지않아 나도 당신 곁으로 갈게요. 당신처럼 언젠가는 죽게 될 나를, 내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며, 남은 여생 욕심 부리지 않고 당신 몫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갈게요. 천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