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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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품에서 눈을 뜨는 아침을 맞이하다

동화사 카페 ‘가피’에서


이서연
시인



삶은 늘 선택으로 이뤄진다. 영화를 보듯 지난 시간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내 선택에 의해 결정되고 만들어졌음이 발견된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순간마다 주춤된다. 그러므로 선택하지 않은 ‘뜻밖의’ 일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지금도 누구나 그런 귀로에 서 있다. 당황스런 상황이 ‘나’ 만이 아니라 ‘누구나’라는 것에 작은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홀로 부딪쳐나가야 하고, 홀로 책임져야 한다. 점점 이 시대를 살아내는 게 어느 순간도 곡예를 하듯 수월하지 않다. 한 해가 시작된 시점에 숨 고르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곡예 하듯 살아내야 하는 시대에 그 어느 선택도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시간, 책꽂이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와 눈이 마주쳤다. 하필 『법구경』 옆에 그 책이 있는 것일까 싶으면서 태양은 이 세상이 어둠에 묻히게 두지 않음이 생각났다.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듯해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곤 한다. 그러나 해는 그렇지 않다. 어김도, 어긋남도 없다. 지난 한 해는 불편함과 위기감이 삶을 깊숙하게 흔들어 놓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물리적으로 멀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특히 그 어떤 노력도 소용없어서 포기하고, 지워야 했던 기회와 시간들이 많았다. 그렇더라도 숨 가쁘게 살아내야 할 시간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 시간을 어떻게 포착하고, 더이상 환멸이 아닌 재생명의 순간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가 과제일 수밖에 없다.
신축년辛丑年을 맞이할 태양을 만나러 팔공산을 갔다. 팔공산은 영남 지역의 명산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중악中岳’ ‘부악父岳’으로 불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삼국사기』 권32, 「제사지祭祀志」에 신라는 산악을 신격화하여 호국신군으로 받드는 산악숭배사상으로서 삼산 오악을 두었는데 이를 대사와 중사로 표현하여 국가 최상의 제전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의 대사삼산大祀三山과 중사오악中祀五岳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확장되는 신라 최고의 호국성신護國聖神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팔공산을 ‘중악’이라 한 것은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 그리고 중앙의 공산(중악)을 지칭하므로 신라 오악의 하나로 불린 명칭이었다.
나라가 바로 서고, 국가가 안녕해야 국민이 평온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 팔공산에는 유독 대찰이 많다. 신라 왕실의 원찰지였고, 고려의 초조대장경이 봉안되기도 했던 곳(부인사)이며, 인종태실수보사찰(은해사)과 영조의 장수를 비는 원찰(파계사)이 있다. 부처님의 성지가 많은 것은 신라, 고려, 조선 등 불교가 수용되던 시대부터 불교가 탄압받던 시대에까지 왕조가 달라도 그만큼 팔공산이 불국佛國의 영산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팔공산 중심에 봉황의 알을 품고 있는 동화사가 있다. 493년(소지왕 15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신라 흥덕왕 7년에 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하여 동화사桐華寺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조선 영조 때 지어진 대부분의 건물들에서 고찰의 고풍스런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동화문에서 연못 동화지를 지나 비로암 뒤편으로 동화사를 들어가면 제일 먼저 봉서루鳳棲樓를 만나게 된다.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봉황을 상징하는 누각이다. 네모로 된 반듯한 돌기둥에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이 세워졌는데 그 앞에 널찍한 자연석이 봉황의 꼬리 부분이라고 한다.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둥근 돌이 귀한 법을 가슴으로 품고 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꿈으로 만난 듯이 봉황이 맞이하네
귀한 법 만난 뜻이 알알에 담긴 것은
다음생 귀한 인연까지 품으라는 가피인 듯
- 동화사 ‘봉서루’에서 -
 
살다가 엎어지고 깨지고 하는 날이 있다면 흔들리는 심신을 추스를 수 있는 곳으로 산신각 뒤편 솔숲을 권하고 싶다. 혹시라도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끌려 살다 보니 화와 복이 뒤섞여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고苦’의 고리가 풀릴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면 대웅전 뒤 영산전 도량을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귀한 인연과 바람 한 점 나누고 싶어 동화사 도량을 찾았다면 봉서루 앞 노천카페 ‘가피’에서 차를 한 잔 나누라고 권하고 싶다.
카페 ‘가피’는 세 가지가 아름답다. 첫째 커피를 뽑는 젊은 바리스타다. ‘아메리카노’를 ‘미국커피’로 부르는 보살님들을 위해 부드럽게 브랜딩한 커피를 주면서 받아가는 사람이 뜨겁지 않을지, 커피 맛이 취향에 잘 맞을지를 염려하며 정성과 친절을 다한다. 그 덕분일까, 커피엔 자비가 함께 브랜딩 된 듯 부드러운 감이 있다. 둘째, 팔공산의 품처럼 넓은 느티나무다. 수백 년 간 동화사 도량을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여름엔 쾌적한 그늘이 되어 주고, 가을엔 그윽한 정취를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의 굵기만큼 우람한 느티나무가 요즘은 젊은 바리스타가 온 후 젊어 보인다. 어쩌면 점점 산사의 노천카페 ‘가피’가 연인들의 쉼터가 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가피에서 ‘미국커피’ 마시고 젊어지는 것 같다는 노보살님의 농담이 진담이 아닐까 싶다. 셋째는 바람 소리다. ‘가피’는 노천카페다. 종루 아래 담에 유리종이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유리종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을 소리로 만나게 된다. 맺고 싶은 사랑, 영원하고 싶은 사랑, 기원의 사랑, 귀한 사랑, 좋은 사랑의 사연과 소원을 담아 둔 유리종은 어디에도 걸림 없는 바람처럼 투명한 소리로 걸림 없는 법을 설하는 듯하다.
하루를 살아도 봉황의 품에서 잠들고
한 번을 만나도 아름다운 인연이고 싶은데
부처님, ‘가피’에서 차 마시면 그 가피가 열린다는 말씀
경전 어느 구절에 있겠죠?
 
사람의 거리마다 마음 거리 멀어지지 않고
남루한 사랑의 틈새마다 촘촘히 자비를 심어야 하는데
부처님, 이왕이면 차 한 잔 주실 때
‘가피’도 주시면 어떨까요?
-카페 ‘가피’에서 부처님께 소원지를 올리며-
 
차를 마신 후 따뜻해진 몸으로 통일약사여래대불 계신 도량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사천왕들이 나를 옹호해 주시는 듯한 ‘옹호문’을 나서면 수령 500년이 된 느티나무가 맞은 편 소나무와 함께 아치를 이루고 있다. 인악대사와 인연이 깊어 ‘인악대사나무’라 불리고 있는데 노령에도 불구하고 율동을 하는 듯한 자태가 용이 꿈틀 거리는 듯 봉황이 춤을 추는 듯 아름답다. 용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으로 용이 조각된 계단을 내려가면 인악대사의 일생이 새겨진 비각과 당간지주를 보게 된다. 여기까지가 동화사에서 역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992년, 남북통일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며 불사를 마친 통일약사여래불은 전통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이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법화보궁’에는 세계인들에게 한국 선불교 역사 및 정신의 재정립을 위해 ‘선禪’을 테마로 조성된 선체험관이 있다. 이젠 사찰마다 글로벌 문화트렌드를 세워나가야 하는 시대라는 게 느껴진다.
귀가 빨개지도록 시린 날의 하늘은 유독 파랗다. 하늘빛에 빠져드는 날이 있다. 묵은 어둠을 떨치고 떠오른 태양이 깨질 듯한 파란 하늘을 유난히 빛나게 한다. 햇살이 퍼져도 눈까지 짜릿해지는 추위가 선물처럼 내놓은 청명한 하늘을 가능하다면 한쪽 떼어 입안에 쏙 넣고 싶은 심정이다. 더욱 가능하다면 귀한 이에게도 한쪽 건네고 싶다. 가족마저도 모이지 못하고, 마지막 이별도 제대로 못 하는 시대일지라도 마음만은 종종 건네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여기저기 안부를 전하며 마음으로 하늘을 떼어 보내본다. 이렇게 맑은 풍경 한쪽이 얼마나 귀한 일상의 한 컷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