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화엄경 열두 꼭지
    시심불심
    시심불심
    불서
    선지식을 찾아서
    불교관리학
    건강한 생활
    텃밭불교

과월호보기

불법을 군대로 가져가다 ③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널리 선연 맺기 - 인연 관리


물질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고 설비도 부족했던 이란의 작은 염불회에 이렇게 많은 단체가 주변에서 협조해 주었던 것은, 제가 기꺼이 그들과 함께 의자를 나르고 차를 따라 주며, 그들과 제가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며 우리가 하나라는 느낌을 주었던 덕분입니다.
저는 제가 스님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출가자일 뿐이고, 봉사자일 뿐입니다. 저는 봉사자를 위한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수년간의 이란 홍법에서 저는 인아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배웠습니다.
만일 이것을 관리학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란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특히 군대 안에서 제가 무척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며 불법의 이로움을 얻게 해줄 수 있다는 말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이것도 제가 두루 선연을 맺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군인들의 생활은 매우 무미건조했습니다. 군대에서는 먹을 것도 잘 곳도 제공하지만, 인정 면에서는 매우 가혹했고 인간적 입장에서 인정과 관심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자비를 담은 관심, 존중을 담은 대우, 진심을 담은 찬미로 많은 젊은 장교들을 대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판에 막힌 통신 지식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예술과 회화·음악·노래 등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그들과 교류했습니다.
저도 늘 제 자신의 언행을 관리하였습니다. 한 예로, 매번 타이베이에 가야 될 때면 뇌음사에서 기차역까지 20분 걸리는 거리를 저는 늘 걸어갔습니다. 제가 중산로를 걸어갈 때면 양쪽 점포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스님이 걸어가는 모습을 구경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10년 동안 총림에서 훈련을 거쳐 다른 사람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스님에 대해 믿음이 생기며 염불회 회원도 늘어났습니다. 저는 위의를 갖춰 행동하고 걷는 자세까지도 대중을 탄복시킬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시절, ‘관리’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 왕래하며 그들이 저의 호의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들의 마음 깊이 들어가 그들이 하나둘씩 불법으로 향해 걸어가게 하고, 인생의 광명을 좇아 그들에게 달려 나갈 미래의 목표를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뛰어난 인물들인 이들을 저는 높은 자리에 앉아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존중·상부상조·친절로써 그들이 인정의 따스함·인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불법을 수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많은 군인이 모두 염불회의 신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입니다.


인심을 안정시킴 - 인심 관리


관리의 요결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우선 자신의 마음에 시간적 관념과 공간적 순서, 숫자적인 통계, 일처리의 원칙, 자비로운 언행을 가지고 시대와 도덕에 부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 타인의 존재와 대중의 이익을 담고, 자신의 마음을 자비롭고 부드럽게 관리하고, 인아가 일여하게 마음을 관리하고, 겸허하고 평등하게 마음을 관리하여 진심과 정성으로 타인을 대하게 되면 ‘관리학’의 학점을 채운 셈이 됩니다.
사람이 자신을 잘 관리하고자 한다면 관리할 것이 무척 많습니다. 자신의 사상을 잘 관리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하고, 자신의 위의를 잘 관리해야 하고, 자신의 말을 잘 관리해야 하고, 자신의 태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이라도 관리를 잘못하면 괜히 재앙만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청정해야한다고 하듯, 지금 제창하는 ‘몸으로 좋은 일 하고, 입으로 좋은 말 하고, 마음으로는 좋은 생각 갖자’는 ‘삼호三好 운동’을 우리는 이미 이란 시절부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1962년 무렵입니다. 처음 국방부의 요청을 받아 중국과 가장 가까이 있는 군사 요충지 금문도金門島 홍법을 하러 갔습니다. 당시 금문방위사령부 사령관은 왕다년王多年 중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금문도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 인연을 빌어 금문도를 방문했고, 불법을 설하였습니다. 일반인이 금문도를 한 번 방문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녕두古寧頭에서 저 멀리 5,0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중국의 샤먼(厦門)을 바라보자니 마치 제 고향 양저우를 보는 듯했고,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정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엽경영葉競榮 대장(上將)이 재임할 당시에는 이미 여러 차례 금문도에서 홍법을 펼친 뒤였고, 시간도 수십 년이 지나 단골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금문방위지구 내의 많은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 많은 산의 동굴 속과 그들의 지하갱도 막사를 모두 지나다녔고, 심지어 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지하갱도 강당인 ‘경천청擎天廳’에서도 여러 차례 강연할 수 있었습니다. 경천청 안에는 울림만으로도 매우 분명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마이크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엽경영 대장은 제게 편리를 많이 봐주었습니다. 그때 한 번의 금문도 홍법이 군인의 정신과 마음에 일종의 격려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전쟁은 잔혹하지만 불법에서는 ‘평화’를 강조하며, 물론 저도 군인이 국가를 보위하는 임무를 띠고 복종을 천직으로 삼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앙의 진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설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격하게 말해 제가 그 당시 강연했던 불법은 삼귀의·오계·육도·십선 등과 같은 무척 가벼운 내용이었습니다.
이외에 저는 또 군대의 관리가 매우 완벽하다고 찬탄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매사 정확하게 전달하고 확실하게 설명을 해야만 합니다. 인아 관계에서 보면 이것은 가장 중요한 관리학의 연결고리입니다.
저는 인아 사이에 대립을 피하고 단체의 화합을 중시해야 한다고 설법했습니다. 군대 내에는 본래 이러한 개념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출가자인 저의 입을 통해 나오다 보니 불법의 의미를 담고 있어, 그들은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심리적·정신적으로 더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설법을 원만하게 마친 뒤, 그들은 전차에다 저를 태우고 섬을 일주하며 관람시켜 주었고, 금문도의 전쟁사도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전쟁에는 흥미가 없지만, 그들의 호의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엽경영 대장은 한술 더 떠 저를 작전지휘센터까지 데려가 군사배치의 지세와 환경을 참관시켜 주었고, 중국 측 해안의 시설 등을 이해할 수 있게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지의 수많은 신병들이 두려운 마음에 연이어 삼보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가피와 보호를 구하고 싶다고 하여, 저도 온 김에 그들에게 귀의의식을 치러주었습니다.
역대 금문방위사령관 호련 호胡璉·왕다년王多年·엽경영 장군 등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예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불광산을 건설한 이후 수많은 군인이 불광산을 찾아 참관하여 예불하고 복을 빌고 가피를 주십사 제게 요청했습니다. 금문도와 마조도馬祖島 지역은 최전방이기에 부대가 금문도 접경 지역으로 이동해가기만 하면 두려워하는 사병이 일부 생기고, 심지어 탈영까지 하는 등 전방으로 가길 꺼려한다는 것을 저는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금문도에 도착한 뒤, 차라리 바다에 몸을 던질지언정 싸우지 않겠다는 신병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인도 전쟁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을 보니,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천성이라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일찍이 중국인들은 빈곤 때문에 관직에 나갈 길을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종군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가정이 대부분 부유하고 고등교육까지 받았으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모험과 위험을 겪으려 하지 않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무기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고, 언제든 인생을 마칠 수도 있으니, 그들이 전방에 배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이해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