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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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 원전 『금강경』을 해석하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정가 28,000원
이중표 역해
152×225mm|400쪽
불광출판사 펴냄


 


언어가 만든 거짓 관념을 부수고
지혜를 갖춰 보살의 길로 나아가라


『금강경』은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불경佛經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난해하다. 어쩌면 이 난해함 때문에 『금강경』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지도 모른다. 숨겨진 보물을 찾듯 맹목적으로 『금강경』을 외우고 추종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집착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강경』은 왜 난해한가. 저자 이중표 명예교수(전남대)는 그 이유를, 『금강경』에 자주 나오는 “그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라고 부른다”라는 형태의 어법語法이 읽는 이들을 혼란하게 만들어서라고 말한다. 말속에서 모순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점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순된 언어가 따로 있고, 논리정연한 언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은 사실 언어에 사로잡혀 생겨난 번뇌이며, 분별심임을 꿰뚫어보라는 의미이다.
『금강경』은 우리에게 관념의 세계를 부수고, 지혜를 갖춰 중생을 이롭게 하라고 가르친다. 『금강경』이 말하는 지혜는 ‘언어로 만든 거짓 관념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분별하는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 분별없는 마음으로 자비를 실천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분별심이 없으니 집착도 없다. 그래서 『금강경』은 말한다.


“보살은 스스로 보살이라는 마음조차 내지 않는다. 애초에 보살이라고 하는 어떤 법法도 없기 때문이다.”


『금강경』은 생사生死라는 꿈에서
우리를 깨우는 자명종과 같다


수많은 대승 경전 가운데 가장 일찍 성립한 경전 형태를 ‘반야부般若部’라고 일컫는다. 반야부 경전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핵심 주제로 설명한다. 반야바라밀의 의미는 ‘통찰하는 지혜로 저 언덕에 간다’는 뜻인데, 여기서 ‘통찰하는 지혜’가 반야般若이고, ‘저 언덕’은 열반涅槃을 말한다. 즉 반야를 통해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설하는 경전이 반야부 경전이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반야는 괴로운 이 언덕(生死)에서 행복한 저 언덕(涅槃)으로 건네주는 배와 같다.
『금강경』은 방대한 반야부 경전 중에서 비교적 내용이 짧은 편에 속한다. 짧은 내용 속에 방대한 반야 사상을 응축해 담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이 책은 『금강경』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모두 함께 깨우쳐서 일체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삶의 추구이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부른다.
둘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도 구제받은 중생은 없음을 아는 것이다. 즉 무아無我임을 통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연기緣起하고 있을 뿐, 시공간 속에서 윤회하는 자아는 없다. 애초부터 태어나서 늙어 죽는 존재는 없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무아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無明이고, 이러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중생이다. 그래서 중생들은 생사윤회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사는 중생들이 자아라는 망상을 고집할 때 나타나는 착각이다. 따라서 이 집착을 버리면 생사윤회는 사라진다.
보살이 중생을 생사의 이 언덕에서 열반의 저 언덕으로 제도한다고 하지만, 본래 생사가 없기 때문에 제도할 중생도 없다. 그러나 중생들은 본래 자신이 생사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아의 망상에 사로잡혀서 꿈꾸듯이 생사의 고통을 받고 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실제로 제도할 중생이 있어서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제도할 것이 없는 중생을 꿈에서 깨어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만 실제로 구제받은 중생은 있을 수 없다. 『금강경』은 생사라는 물거품 같은 꿈에서 우리를 깨우는 자명종과 같다.


다툼 없는 삶의 길이 『금강경』에 담겨 있다


우리의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나무 열매도 산나물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눈부신 태양도 샘물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은 다 공짜다.


이 책에서 인용한 시인 박노해의 ‘천연설탕 아렌’이라는 시(175쪽)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시의 내용처럼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공짜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얻기 위해 서로 다투며 힘들고 지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본래 너와 나의 구별 없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러한 삶 속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은 공짜다.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소중한 것들을 공짜로 누리고 세상을 떠난다. 내가 평생을 일해서 만든 것도 죽을 때는 다 버려야 한다. 공짜로 주기 싫어도 주지 않을 수 없다. 실로 모든 것이 공짜다.
저자는 공짜로 사는 인생은 복 받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복 받은 인생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는 괴로움에 사로잡혀 산다. 너와 나, 너의 것과 나의 것이라는 분별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아를 깨달은 사람은 나와 남을 분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으니 다툼이 있을 리 없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무쟁無諍이다.
너와 나의 분별없이 공짜로 주는 보시가 참된 공덕인 것처럼, ‘나’라는 집착 없는 보살행은 논쟁과 투쟁을 종식하고,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이룬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가르치는 보살의 길이며, 무쟁의 길이다.



책속으로


붓다가 깨달아 가르친 불교의 진리는 4성제四聖諦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교를 통해서 깨달아야 할 진리도 4성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보다 더 현묘한 진리를 깨달으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금강경』을 통해서 이러한 환상을 버리고 진실한 깨달음을 구할 수 있도록 먼저 산스크리트 원전을 번역하고, 이를 근본불경인 『니까야』와 대조하여 해석했다. 그리고 이렇게 『니까야』를 통해서 『금강경』을 해석하면 난해한 의미가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본문 5쪽


불교는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을 추종하는 종교가 아니다. 부처님은 초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투지 않고 함께 행복하게 사는 길을 알려주신 안내자이다. -본문 209~210쪽


우리는 꿈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관념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 이 꿈에서 깨어나도록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불교를 드러내 보여준다고 하는 것은 불교라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본문 3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