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햇살고운한의원 대표 원장
최근 모 약품의 광고는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은 간 때문이야”란 흥겨운 가락과 함께 축구스타를 앞세워 인상 깊은 선전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이 광고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데, 아마 이 가사를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에 수긍할 것 같다. 이는 ‘간기능이 저하되면 피로가 온다’는 기전을 홍보하여 마켓팅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데, 그렇다면 ‘간이 어떤 기능을 하기에 간 때문에 몸을 피로하게 만들까?’ 라는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만성피로 증후군은 별다른 원인질환이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정도의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여러 가지 검사에서 어떠한 질환도 발견되지 않으며, 피로 때문에 업무 능력과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쉬어도 피로감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 이 네 가지 증상이 모두 나타났을 때 만성피로증후군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만성피로는 간 기능의 이상, 갑상선 이상, 고혈압, 당뇨, 결핵, 각종 암, 알레르기 같은 육체적 원인과 수면장애, 우울증, 신경쇠약 같은 정신적 원인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생겨날 수 있다. 
간에서는 면역글로불린이란 면역세포들을 만들어내는데, 이 기능이 떨어지면 면역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만성피로가 올 수 있고 또 간의 해독작용이 떨어지면 우리 몸에 쌓여있는 독소나 노폐물을 제거하지 못하여 만성피로가 올 수 있다.
간이 손상되면 얼굴색이 노랗거나 검게 변하고 피로하며 소화불량 증상이 함께 생긴다. 그런데 간은 70%가량이 손상 될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다. 따라서 이상증상이 나타난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이미 상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만성피로의 원인을 인체의 중심축인 비위 즉 소화기의 약화와 기허, 혈허, 기혈허의 허증이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고뇌와 분노로 간기능이 울결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한의학적으로 간은 피를 저장하는데, 새로운 피의 생성이 부족해지거나 교통사고 등 사고로 인하여 출혈을 과도하게 했을 때나 오랜 질병으로 간이 피를 간직하는 기능이 손상되면 간혈이 부족하거나 허해졌다고 본다. 또한 예로부터 간이 잘 소통해야 정신활동이 조화를 이룬다고 하여 간기능이 원활하게 발휘될 때는 마음도 편안하고 정신활동도 활발해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감정의 억눌림이 심해지면서 원인 모를 짜증과 화가 늘거나 불안, 초조, 근심 등의 감정이 커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감정적인 변화는 역으로 간에 영향을 미쳐 간 기능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따라서 만성피로 증후군을 치료하는 키포인트는 바로 간 기능을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회복시켜 주는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선 간의 기혈이 충분히 보충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막힌 곳을 뚫어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일상적인 가벼운 피로에 대처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휴식과 수면이다. 정신작업에 의한 피로의 경우, 휴일에 가벼운 스포츠를 하고, 육체노동에 의한 피로에는 휴일을 독서나 취미로 여유 있게 지내는 것이 회복에 유익하다. 그러나 만성피로가 지속될 경우에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것저것 민간약을 알아서 복용하지 말고 꼭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원인질환을 치료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만성 피로에 보약이 능사가 아니므로 과연 보약을 먹어야 될 만큼 몸이 허한 상태인지 아니면 오히려 연료는 남아도는데 엔진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 생기는 과잉 영양 상태로 인해서 온 것인지 잘 따져본 후 내 몸에 맞는 처방을 받아야 한다. 즉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진단이 전제되어야만 양약(良藥)이 되는 것이며, 좋은 약도 잘못 쓰이면 독약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