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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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를 갖춘 진실한 삶





   정우스님
   본지 발행인
   통도사 주지
   구룡사 회주


우리 인생이라는 게 생활을 떠나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生)을 마감하는 한 생애를 봐도 근심 걱정 고통 괴로움 겪는 시간이나, 슬픔과 아픔을 가진 시간이나,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나, 다 각자 자신의 인생입니다. 이것은 내 인생, 저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 시간도, 근심 걱정하는 시간도 모두 내 인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본의 지진참사 뉴스를 보던 중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습니다.
뉴스에서 “일본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러한 참상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과 걱정을 함께 나눌 생각을 해야지, 옆집 불구경 하면서 “괜찮아, 우리 집은 안 타겠구만.”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게 뭡니까.
아마존 강 유역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지구의 반대쪽 에서는 태풍이 몰아친다는 것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가슴이 아픕니다.
연기의 법칙을 믿고 있는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꼭 자비한 마음을 가지면서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밤을 세워가며 텔레비전의 뉴스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통도사 주지소임을 보면서 두 번 날을 세워보았는데, 한번은 숭례문 이고 두 번째가 이번 일본의 지진참사입니다. 숭례문이 불탈 때는 혀 안이 헤어졌고 입술이 부르트기까지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기 전에 피접상골한 모습으로 고행을 하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의 빈비사라왕이 부처님께 말하기를, “관직을 줄 터이니 나와 함께 살자”고 제안을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도지사 정도의 직책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행으로 인해 피골상접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32상(相) 80종호(種好)의 모습을 갖춘 부처님의 상호가 얼마나 거룩해 보였으면  그리 말했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 대신  가계(家系)를 말합니다.


『내 나라는 가비라국이요, 부친은 정반왕이며, 모친은 마야부인입니다. 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자 빈비사라왕이 다시 말하기를, “깨달음을 이루시거든 꼭  오셔서 법을 설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부처님과 함께 고행을 했던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는 부처님께서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먹는 모습을 보고 타락했다며 부처님 곁을 떠났습니다. 이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설법을 하시기 위해 녹야원에 오시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서로 모른 채 하자고 약속을 했지만, 부처님의 거룩하신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자리를 권하고 공손히 예를 갖추어 법문을 청해 듣고 최초의 비구가 됩니다.
또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불리는 사리불(舍利弗)과 신통력이 제일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로 불리는 목건련(目連)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산자야라는 외도의 제자였으나, 5비구 중 한 사람인 마승비구(馬勝比丘)의 탁발하는 모습에 신심이 나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마승비구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스승이 누구시길래 이렇게 거룩한 모습으로 걸어가실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부처님 제자의 모습도 그러한데, 부처님의 모습은 얼마나 거룩하겠는가 하는 환희심으로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출가를 하고자 찾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위의를 갖추지 아니한 걸식은 거지의 걸식이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서도,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이시 세존 식시 저의지발 입사위대성걸식 어기성중 차제걸이(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著依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라고 했습니다.
차례차례 일곱 집만 걸어서 걸식을 하다 보면 못 얻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차례 차례라는 것은 부잣집이나, 음식이 맛있는 집이나, 잘 주는 집이나, 쪽박을 깨는 집을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을 가리지 말고 주면 주는 대로, 쪽박을 깨면 깨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천한 음식을 주면 주는 대로 받을 수 있는 이것이 수행입니다.
걸식은 수행의 방편으로 해야지,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뻔뻔하게 하라는 게 아니라 당당 하라는 겁니다. 떳떳 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수행자는 심전(心田), 복밭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이 시대의 우리들 모습이길 바랍니다.


30여년전 혼자서 인도를 순례할 때의 일입니다.
한센병에 걸린 젊은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적이 있는데, 짧은 영어를 써 가며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는데, 그 사람은 댈리대학 출신이었고 집도 인도의 수도인 댈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센환자가 되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날마다 갠지스강에서 성수로 목욕하면서 전생으로부터 지은 업을 씻고자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주어도 고맙다는 인사나 말을 안 합니다. 자기의 몸은 척박한 자갈밭인데, 씨를 뿌린 사람이 무엇을 거두려고 씨를 뿌렸겠느냐는 겁니다.
열반경에 “죽은 소에도 우황이 있지 않더냐.”는 대목이 나옵니다. 죽은 소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그런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소 몸속에도 우황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진묵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막혐문전폐의객(莫嫌門前廢衣客)이요, 영산수기세월장(靈山授記歲月長)”이라 하셨습니다.
대문 앞에 험한 꼴을 한 사람이 “한 푼 줍쇼.” 해도 문전박대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에서 부처님께서 “네가 불자인가 아닌가 확인하러 왔는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사람만 일부러 찾아다닐 일도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한테 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판단은 본인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근(善根)을 가지고 지혜(智慧)로운 모습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내가 되어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모든 법을 가르쳤다. 가르치는데 인색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미 늙고 기운이 쇄했다. 내 나이 여든이다. 낡아빠진 수레가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겨우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석 달 후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누우셨습니다.
 
『나는 오늘 밤 여기에서 열반에 들리라.』


그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말씀을 듣고 아난존자가 슬피 울자,


『아난다야 울지 마라. 가까운 사람과 한번은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이다. 한번 태어난 이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너는 그 동안 나를 위해 수고가 많았다. 내가 떠나간 뒤에도 더욱 정진해서 성인의 자리에 오르도록 해라.』


아난은 슬픔을 참으면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것을 대중에게 전하고 열반하신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장례절차를 물었습니다.
이게 부처님이 다문제일 아난에게 마지막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 출가수행자는 나의 장례절차 같은 것에 상관하지 말아라.』


잘 살면 장례식 걱정할 것 있습니까? 특히 스님들이 노후 걱정이나 하고 앉아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불사를 잘하든, 포교를 잘하든, 정진을 잘하든, 대중섭수를 잘하든, 큰 절에서 함께 살든, 수행만 잘하면 됩니다.


그날 밤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면서 사라수숲으로 모여들었고 그때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를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면서 다투지 마라. 물과 우유처럼 할 것이요,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지 마라. 교법을 지키고 배우며 수행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게으른 것만큼 큰 병은 없습니다.



 E-mail : venjungwoo@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