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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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통도사 강원 졸업을 앞두고-


성지스님
통도사 강원 졸업반


졸업이다. 이제 통도사에서 지냈던 4년 동안의 세월을 회향해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바랑 하나 등에 짊어지고 통도사에 발을 들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졸업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때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통도사로 왔는데, 막상 도착하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행자복을 입고 삭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삼천 배를 할 때는 다 포기하고 다시 속가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잘 참고 여기까지 왔다는 마음에 내 자신이 뿌듯하다.
겨울 행자였던 나는 화엄산림과 여러 가지 행사로 몸이 지칠 대로 지쳤었다. 새벽 2시 40분에 일과를 시작해서 저녁 9시가 될 때까지 예불에 참석하고 스님들 공양 준비하고 신도님들 공양을 준비하는데 하루를 보내니 어느 새 8개월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아직은 추운 바람이 몰아치는 그 다음 해 늦겨울 사미계를 받으면서 감색 옷을 벗고 한 명의 예비 승려가 될 수 있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사미계가 전부인줄 알았다. 행자 생활이 너무나 힘이 들었기에 아직은 예비승려였지만 그래도 회색 승복을 입고서 사미계를 받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예비 승려였었지만 이미 오롯한 스님이 된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27명의 도반들과 강원에 들어왔다.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15명의 도반들만 남았지만 서로 호법신장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아플 땐 어머니 역할도 해주면서 같이 졸업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 절실하다. 이러한 도반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강원은 행자 때보다 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행자 때에는 몸만 피곤하였지만 강원 때는 마음까지도 피곤하였다. 행자 때에도 여러 행자님들이랑 같이 지냈지만 그 때는 모두들 몸이 피곤하니 서로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방에 들어오면 곯아떨어지기 바빴다. 하지만 강원에서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만날 수 없었던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이런 것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그러다가 구룡사 회주이신 은사 스님을 모시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다른 도반들과는 다르게 어른 스님을 모시면서 강원생활의 많은 부분을 보내게 되었다. 어른 스님을 모시면서 꾸지람도 많이 듣고 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어른 스님으로부터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 점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신문 등 언론매체 또는 소문으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어른스님과 같이 생활하면서 보게 되는 어른 스님의 큰 원력과 수행자다운 모습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런 것이 정말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남들은 친견하기도 힘든 어른 스님을 나는 24시간 모시고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들 어른 스님하면 어려워하고 조금 만나기 힘들게 여기지만 나에게는 부처님의 법을 가르쳐 주시는 훌륭한 스승으로, 또 어떤 때는 따끔하게 혼을 내주시는 아버지로, 또 어떤 때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하시면서 꼼꼼하게 챙겨주시는 어머님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른스님을 모시는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스님에 대한 정이 많이 쌓일 수 있었다.
그리고 통도사 강원은 다른 강원과는 다르게 많은 혜택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학인들에게 다른 나라의 승려들과 승가를 매년 한 번씩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나는 그 기회를 잘 살려서 대만과 일본의 스님과 스님들이 생활하는 모습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일반인으로 가면 사실 스님이나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통도사와 교류가 되어 있는 대만과 일본 불교 순례에서는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스님들만이 보고 알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다르게 각 나라의 특징을 잘 살린 대만과 일본의 불교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일본이나 대만 순례를 가기 전에는 내가 어떻게 스님으로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집반(2학년) 때에 대만 불광사의 공승법회에 초청을 받고 갔다 와서는 정말 대만 큰스님들의 그 큰 원력과 보살심, 자비심을 볼 수 있었다. 그 큰 원력으로 대만 제일가는 대학을 세우고 또 큰 대학병원도 세웠지만 정작 자신이 사는 처소는 그렇게 청빈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은 직접 농사를 지어서 하루하루 먹을 것을 생산하지만 많은 대만 신도들의 보시를 받아서는 전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또 소외받는 계층들을 위해서 병원을 짓는 것을 보고 나도 저런 원력과 보살심, 자비심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교반(3학년) 때에 일본을 다녀와서는 일본의 나무로 된 훌륭한 법당 건물들 그리고 그 화려한 건물과는 반대로 청빈하게, 대만과 마찬가지로 농사를 지으면서 아직도 전통식 해우소를 고집하고 전통식으로 지어진 처소에서 생활하시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부처님을 장엄케 하는 법당을 지어야 할지, 또 그렇지만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고 청빈하게, 수행자답게 살아야할지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통도사 강원의 해택 중에 두 번째는 많은 대중들과 어울려 함께 소통하고 배우면서 울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강원에 있으면서 매년 하는 화엄산림이라든지 김장울력을 비롯한 많은 행사들이 나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추운 겨울 53일 동안 적적한 산사를 야단법석으로 만드는 화엄산림은 신도님들과 스님들의 좋은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밤마다 하는 법성게는 모든 신도와 스님들이 참여하고 화엄의 세계를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뜻 깊은 행사였다. 특히 김장울력으로 나와 여러 대중 스님들이 먹게 되는 김치를 담그면서 대중생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대중들과 보살계수계산림, 부처님오신날, 백중법회 등의 행사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부처님 법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렇게 매년 찾아오는 행사였지만  나에게는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추억이 되고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통도사에서 생활하면서 내 나름대로 강원 교육의 정의도 내려 보았다. 처음에는‘강원 교육은 기초적인 경전을 보면서 불교적인 지식을 쌓는 데에 있다’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강원생활 4년 동안을 통도사에서 지내면서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런 강원교육을 하면서 스님으로서의 인성과 덕을 쌓고 훈련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경전을 보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 매 시간 생활하면서 대중들과 울력을 하고 또 나 같은 경우는 어른 스님을 모시면서 어른스님을 시봉하고 어른스님이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스님으로서 어떻게 인성을 쌓을 수 있는 지를 배울 수 있었다.
어른 스님들께서는 강원에서의 4년은 장판때 묻히고 중물 들이는 기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야 그 말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처음 출가할 때하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스님으로서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사람의 학자로서의 승려가 되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스승이 되어 줄 수 있는 승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강원에서의 학인으로, 아니 적멸보궁 통도사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때가 되면 예불을 하고 공양을 하고 또 도반들과 같이 공부도 하면서 코끼리와 같이 여법한 모습으로 생활하면서 차츰 차츰 중물이 들게 되었다.
이제 통도사 강원에서의 생활을 회향하려고 한다. 그러나 회향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행자에서 사미로 수계를 받았다고 끝이 아니었듯이 이제 정식 승려가 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회향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까지 세속에서 익었던 생활들이나 습관들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이제 진정으로 중공부를 할 수 있는 스님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중생들을 고해의 바다에서 건져줄 수 있는 인천의 대도사가 될 수 있는지를 어른 스님을 시봉하면서 보았던 것들, 다른 나라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던 스님들의 모습, 많은 통도사의 대중들과 함께 울력을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이제 통도사 강원을 회향 하면서 앞으로 스님으로서 큰 원력을 세우고 지혜로써 무장하여 늘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수행하면서 오롯한 인천의 대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다짐을 해본다. 모든 불자님들께서도 나 자신을 한번쯤 뒤돌아보면서 좋았었던 일들은 추억이 되고 후회되었던 일들은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들 부처님이 되시길 간절히 서원한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