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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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사 성지순례

소원도 빌고 수행력도 기르고~


이범관
부다TV 팀장


한마음 체육대회의 피로와 아쉬움이 가시기도 전에 여래사 불자들은 10월 18일(화)에 대구에 있는 팔공산 동화사와 선본사 갓바위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가을 날씨답지 않게 다소 쌀쌀한 아침 6시에 130여명의 불자들은 버스3대에 나뉘어 타고 서울 외곽순환도로,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경상북도와 대구지역의 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본사인 팔공산 동화사로 향했다.
여래사를 출발한지 4시간 후 오전 10시 30분 경 드디어 약사여래도량인 팔공산 동화사에 도착했다.
동화사는 신라 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처음 유가사로 절 이름을 지었고 그 이후 832년 흥덕왕 7년 심지왕사가 중창 불사하여 동화사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600여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중생들의 병을 고치는 유서 깊은 약사여래도량으로 유명하다. 현재 동화사의 큰 스님으로는 부산 해운정사를 창건하신 진제 큰스님이 조실로 주석하고 계신다.
오전 10시 30분 경에 도착한 불자들은 주차장에서 총무 성신스님에게서 간단한 일정을 듣고 곧바로 부처님이 모셔진 대웅전으로 발길을 이동했다.
그런데 대웅전으로 가던 중 동화사 봉서루 앞에 많은 불자들이 모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봉황의 정기가 서려 있다는 의미의 봉서루 앞 바위 위에 올려놓은 3개의 돌 봉황알을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나며 오동나무에 깃들고, 먹는 것은 대나무 열매만을 먹는 다는 속설이 있다. 절터주변에는 오동나무가, 대웅전 뒷편에는 대나무가 많은 것은 스님들의 훌륭한 환경비보책의 하나이면서 봉황과 관련이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봉황의 그 깊은 뜻과 누구나 만지면 소원성취를 이뤄준다는 영험담이 있어서 그런지 봉황알을 만지는 불자가 많았던 것이다.
대웅전과 각 요사채와 전각을 참배 한 불자들은 1992년 완공불사 된 약사여래대불이 모셔진 곳으로 발길을 이동했다. 동화사 약사여래대불은 속초 신흥사의 통일대불,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미륵대불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대불로 통일대불 원석을 옮겨 조성한 불상으로는 그 규모면에서는 동화사 약사여래대불이 세계최대 석불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뜻을 모아 이곳에 모셔졌다고 한다.
동화사 약사여래대불은 동화사의 남쪽 산자락에 1만여 평의 대도량(大道場)을 조성하고, 좌대(座臺) 높이 13m를 포함하여 30m 높이의 석불이다. 2,000t에 달하는 불상과 3,000t 무게의 좌대석은 전북 익산(益山)의 황등석(黃橙石)을 썼으며, 108명의 석공들이 약 7개월 동안 만들었다. 각계 전문가들의 고증·조언을 거쳐 조성되어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도량에 오르는 계단은 108개로 하여 백팔번뇌를 상징하였고, 석불 맞은쪽에는 약사여래대불을 지킬 통일대불전이 조성되었다. 지하 2층, 지상 3층, 연건평 1,200평의 규모이다. 1992년 11월 27일 대불의 점안식(點眼式)이 있었다.
약사여래대불로 발길을 옮긴 불자들은 성신스님의 집전으로 정근, 발원, 축원으로 부처님께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렸다.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래사 불자들의 모습이 정성스럽고 마치 여래장의 세계를 보는 것만 같았다.
기도를 마친 불자들은 동화사 산문 앞에 있는 탑골식당에서 청국장과 고추장이 어우러진 산나물 비빔밥으로 점심 공양을 맛있게 했다. 성지순례를 많이 다닌 불자들도 이렇게 맛있는 비빔밥은 처음이라며, 밥도둑인 간장게장도 아닌데 밥 두 공기를 드신 불자들도 많았다.
맛있게 점심공양을 하고 버스에 몸을 실은 불자들은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계신 경산 방향 선본사로 향했다.
팔공산의 높이가 해발 1193m 고지대라서 인지 선본사 산문 입구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서 올라갈 때는 귀가 멍멍했다. 이럴 때는 침을 한 모금 꿀꺽 삼키면 멍멍해진 귀가 확 뚫린다.
선본사 주차장에 모인 불자들은 오후 1시30분에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팔공산 갓바위로 향했다.
주차장 입구에서 갓바위까지는 넉넉한 걸음으로는 약 30~40분 정도 걸린다.
지난번 설악산 봉정암 성지순례를 다녀오셨던 불자라면 팔공산 갓바위까지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고 몸과 마음의 고통이 없는 걸음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갓바위까지 계속되는 계단은 역시 그리 쉬운 길은 아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열 계단 올라간 후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힘들게 올라와야 중생의 병을 고쳐주시고,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는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
난간을 붙잡고 힘겹게 오르시는 노보살님 한 분을 부축하며 물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왜 안 힘들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왜 굳이 이렇게 힘든 곳까지 오르세요?”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드리러 왔지. 늙은이가 더 이상 바랄게 뭐 있나.
자식들 잘 되면 그만이지.”
부모의 마음은 다 그런가보다….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1965년 9월 1일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4m, 재료는 화강석이다. 대좌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좌상불이다. 소발에 육계가 명확하고 얼굴은 풍만하다.
눈·코·입은 세련되게 표현하여 풍만한 얼굴과 잘 조화되어 있다. 코끝에서 입 가장자리까지 팔(八)자로 깊이 판 것은 시대성과 유파성(流派性)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고, 이마에 뚜렷한 백호(白毫)도 특징적이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굵고 곧은 목에 삼도(三道)가 있다.
어깨는 넓고 반듯하며 가슴도 발달되어 풍만하다.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하여 그 비율도 격식에 맞고 조각수법도 훌륭하다. 통견(通肩)한 법의는 평행단상(平行袒裳)이 기본을 이루며 옷도 퍽 얇고 선도 유려하다.
힘들게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갓바위에 도착한 불자들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을 독경하며 마음의 정성을 다해 정근 기도했다.
약사신앙의 대표적 성지인 선본사 관봉석조여래좌상 속명 “갓바위 부처님”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머리에 갓 모양의 판석(두께15cm, 지름1.8m)이 올려져 있는 데다 관봉이 우리말로 갓바위이기 때문이다. 판석 모양이 마치 학사모와 흡사하다는 이유로 수능 시험 등 각종 시험 기도에 영험이 많다는 입소문이 났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는 하루에 수만 명이 이곳을 찾는 이유이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갓바위 옆, 작은 유리함에 넣어 놓은 소원성취발원문을 들여다보았다.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다. 가족건강, 시험합격, 취업, 승진, 결혼 등 누구나 살면서 소박하게 바라는 것들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정성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설사 어긋나더라도 기도하며 위안과 평온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석조여래좌상에서 약사여래불 정근기도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아래 대웅전 법당에선 성신스님의 집전으로 금강경 독경과 축원 기도가 이루어졌다.
약 2시간 30분 정도 기도와 정근을 끝내고 내려가는 불자들의 표정에서 이미 소원을 성취한 듯한 환희로움을 읽을 수 있다. 마음의 뿌듯함을 안고 힘들게 올라왔던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디디며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 시각이 오후 5시 10분.
여래사로 출발하기 전 주차장에 모인 불자들은 기념촬영을 하고 피로에 지친 몸을 버스에 맡긴 채 무사히 여래사로 돌아왔다. 도착한 시각이 밤 10시 30분.
이번 성지순례에는 대입수능 입시생을 둔 학부모 불자들이 많이 동참하셨는데 아무쪼록 원하고 바라는 대로 소원성취를 꼭 이루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