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아시아기자협회 운영위원
시인

어이없는 6.25전사자의 보상문제로 나라체면이 말이 아니다. 경북 포항고등학교 3학년 재학중 1951년 6.25전쟁이 발발해 학도병으로 참전한 고 김용길씨(당시 18세)의 사례다. 사연을 본 즉 50년대 6.25전쟁을 전후, 정말 가난하고 못 배울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고 김용길 용사는 그동안 무연고(無緣故) 전사자로 있다가, 2006년 이제 할머니가 된 68세의 여동생에 의해 확인됐다. 그런데, 2006년 연고는 확인됐지만 5년이 지난 2011년 다시 문제가된 점을 보면, 우리나라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가인식과 보훈정책을 보게 된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값
고 김용길씨는 6.25전쟁 참전 대가로 국가로부터 5,000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보훈처 간부가 말하는 짜장면 값 6,000원 보다도 낮은 생명 보상금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불법 매혈(賣血)을 해도 이런 돈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대가가 5,000원이라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한참이나 생각을 해야 했다. 적어도 취재기자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참전용사 가족의 심경은 어떨까? 과연 이 나라를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생명을 부지하면서 살아가야 할 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국가보훈처와 국방부는 물론 청와대를 비롯해 관계 당국은 통열한 자기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 국빈방문한 대통령은 미국 참전용사 이름은 불러봤어도, 자기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참전용사의 이름은 커녕, 어떻게 보상받고 예우를 받는지 알아는 보려고 했는지, 보고는 받아봤는지 궁금하다.

한국현대사의 국가운명 같은 인생
고 김용길 용사의 사례를 보면, 8.15해방과 6.25전쟁 등으로 기구한 운명을 맞이해야 했던 한국현대사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김씨의 여동생은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불행한 가족사를 보면,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 김 할머니는 1948년 경북 영덕 해변마을에서 1남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950년 5월 지병으로 먼저 세상과 이별하고, 한달 뒤 6.25전쟁이 터졌다. 오빠는 전쟁터에 나가고, 언니 둘은 피난길에서 폭격을 맞아 죽었다. 불행이 겹치면서 모친은 제정신을 잃었다. 영덕 산골마을로 피신한 김씨 모녀는 이 집 저 집에서 밭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했다. 학교도 다니지 못해 지금도 문맹(文盲)이다. 10살 때 마을 이장에게 입양돼, 그 때부터 김씨가 아닌 박씨로 살았다. 1996년 잠시 정신을 찾은 모친에게 오빠 이름을 처음 듣고, 꼭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며칠 후 모친은 46년간의 청상(靑孀)을 뒤로 했다.

탁상행정이 빚은 국가 위상
김 할머니는 모친 별세 이후 10년 만에 오빠를 찾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탁상행정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국방부와 보훈처를 수차례 찾았지만, 오빠의 군번을 알아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이 대목의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해당 공무원들의 표정과 태도가 그림자 처럼 교차했다. 귀찮은 할머니, 오고 또 오고 같은 것을 반복해서 묻고, 아무 근거도 없이 답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일선 공무원들은 얼마나 짜증을 냈을까. 미리 예단하고 싸잡아 평가절하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과거 몇몇 취재경험 사례를 통한 부정효과(否定效果)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가 겪었을 고충은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 할머니는 96년 모친에게 처음으로 얘기를 듣고,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민원실에서 오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일병 김용길, 1950년 11월 24일 경기도 가평에서 전사,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김씨는 듣자마자 감격스러워서 주저앉아 울었다고 전했다.

국가 없는 국방부와 보훈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할머니는 2008년 재판을 통해 본래의 성인 김씨를 되찾았고, 보훈처에 유족 등록과 사망보상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보상금 청구 기간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소송 끝에 보훈처는 2010년 6월 김씨를 유족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보상금 지급은 국방부에게 물어보라고 답변했다. 국방부는 보훈처 소관업무라며 딴전을 피웠다. 법원결정이 났는데도 국방부와 보훈처는 서로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가 없는 정부 부처라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행정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 부서입장에서 국민의 일을 보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행정학 개념중에 목표의 대치(目標의 代置, dis placement of goals)라는 개념이 있다. 업무수행과정에서 목표달성의 수단이 되는 규칙과 절차에 집착함으로써 목표가 수단에 대치되거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6.25참전비는 5,000원
2011년 4월 김 할머니는 느닷없이 5,000원 보상 통지서를 받았다. 보도를 접한 제3자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당사자는 오죽하겠는가.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김할머니는 전했다. 힘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은 세상이치라고 하더라도, 나라지키려고 전쟁나가서 죽은 오빠 같은 사람한테 나라가 어떻게 5,000원을 줄 수 있는지?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오빠를 찾기는 했지만, 배운 것 없는 까막눈이라, 국가를 상대하려니, 너무도 막막해서 수백번 포기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비용만 1,000만원을 썼다. 제대한 아들을 위해 모아둔 등록금을 오빠를 위해 쓴 것이다.

3.1운동을 시위로 보는 국가보훈처
고 김용길 용사의 사례를 보면서, 2010년 3월 춘천근무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강원도청 앞 요선동 공원에는 옛 예술회관 자리와 3.1운동을 기념하는 표석이 있다. 지금은 3.1운동(運動)이라는 표현으로 제대로 되었지만, 당시 3.1만세 시위(示威) 표현을 둘러싼 춘천시와 보훈지청이 보여준 태도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운동과 시위의 표현 사이에는 학문적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상용어의 사용례에는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그리고, 시위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국가에서 성립되는 용어일 뿐, 일제 강점하에서는 어디까지나 시위가 아니라 독립운동이다. 일제를 상대로 시위를 한다는 표현은 할 수도 있겠지만, 표현자의 태도나 표현의 격이 다른 것이다. 일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라고 표현해야 선혈들의 고귀한 정신을 제대로 평가하는 제대로 정신이 박힌 한국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촛불의 거룩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필자의 지적에 대해 춘천시 담당자는 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불쾌한 태도를 보이면서, 출입기자를 통해 국가보훈처 자료를 보내왔다. 출입기자 역시 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느냐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전달할 정도로, 춘천시의 태도는 거만을 넘어서 안하무인, 천방지축 그대로였다. 춘천 광복회도 3.1만세 시위가 아니라 독립운동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시위표현 정정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관태도(不關態度)를 보였다. 예전 인연을 통해, 헌법학자 인터뷰와 강원일보 등의 협조를 얻어 지역이슈로 부각시켰다. 문제 제기와 동시에 이광준 춘천시장실에 난리가 났다. 당장 고쳐라. 운동과 시위도 모르느냐.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시위라니...시장의 이 말 한마디로 2010년 2월 4일 문제 제기 이래 두달 열흘만인 4월 14일 표석을 바꿨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비유해서 표현하면, 6.25참전용사와 3.1독립운동은 촛불과 같은 역사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힌다. 희생을 통해 오늘날 G20을 열고 미국과도 FTA를 체결할 정도의 국가 위상을 갖추지 않았나. 촛불의 희생과 광명을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