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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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된 행복을 구하는 지성적 신념을 키워라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티베트력 새해 로사로부터 보름이 되는 3월 5일.
검푸른 새벽빛이 감도는 이른 아침, 사원으로 향하는 범부의 발길을 재촉한다. 티베트 불교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의 축락캉(Tsuglagkh ang) 법당에서는 수행자를 정화하는 의식 ‘소종’이 열리고 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의 기도 음성이 장엄히 울려 퍼진다. 출가 승려 그리고 재가불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대지와 만물의 기운을 깨우고 있다. 법당과 사원 광장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 사이로 달라이라마를 호위하는 황금 일산이 넘실거리며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이윽고 본존이신 석가모니 붓다를 위시하여 미륵 보살과 용수 보살 그리고 아띠샤 존자로 이어지는 티베트 불교 선지식의 계보에 예경하고 찬탄하는 기도가 이어졌다.
하루 전날 4일.
유럽 벨기에에 정착한 티베트 난민 공동체는 다람살라 티베트 상인 연합과 공동으로 달라이라마 장수 기원 의식을 올렸다.
이 날에 맞춰 벨기에와 인도 망명정부에 친인척을 둔 티베트 본토의 티베트인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 티베트인들의 인도 입국은 성지순례의 명목 하에 중국정부와 인도정부 간 교류 협력이 체결되어 순조롭게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인도 망명정부의 티베트 난민들이 티베트 본토로 귀향하기 위해 중국 정부로부터 비자 허가를 받기까지는 1년 이상을 소요해야 하는 현실이다. 살아생전에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고 가까이서 법문을 듣고자 하는 티베트 어르신들의 열의는 법회가 끝난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많은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고향 티베트 본토로 귀환하지 않고 다람살라 망명정부에 정착을 희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닝마빠 딱룽체튤 린포체(Taklung Tsetrul Rinpo che)의 집도로 달라이라마의 장수를 기원하는 기도가 집도됐다. 달라이라마에게 알게 모르게 배인 탁하고 부정한 기운을 정화하는 의식이 닝마빠 의례에 준하여 3시간여 동안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해 전 망명정부의 신탁승 네충 꾸뗀라는 달라이라마가 113세까지 장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보편적으로 티베트인들 사이에서 신탁승의 발언은 큰 신임을 얻고 있다. 때문에 티베트인 대부분이 달라이라마의 장수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최근 달라이라마의 후대 옹립에 관한 환생의 현안이 외신에 의해 재차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달라이라마 장수 기원 기도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윽고 달라이라마의 탁한 기운이 봉안된 조형물은 밀교 수행 승려들의 진언 염송에 맞춰 사원 밖으로 이동되었다. 이들은 깊숙이 외진 산속으로 들어가 수일간 비밀 의식을 치루며 이들 조형물을 소각한다고 한다.
달라이라마 본인의 14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환생은 없을 가능성을 발언한 이후, 이곳 티베트 난민들의 민심은 망명정부 정착에 대한 열의를 잃은 듯 보인다. 올해를 임기 마지막으로 둔 티베트 망명정부 정치적 지도자 시·롭상상게 박사는 재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인도 망명 이후 달라이라마는 민주주의 망명정부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시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 달라이라마. 그래서일까. 이제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달라이라마는 그 화려한 막을 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달라이라마는 법문 중에 나의 이름이 단지 달라이라마일 뿐이라고 자주 강조해 왔다. 14세기 이래 600년 이상 존속해온 티베트인의 정신적 뿌리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를 둘러싼 각계각층의 공방 속에서 격동의 민주주의화 시대를 흘러가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향후 10년은 종교와 정치 인류사적 측면에서 가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달라이라마가 항시 당부해온 불교도의 자세가 있다. 21세기에 부합하는 현명한 불자라면 과연 달라이라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달라이라마 본인이 마지막 달라이라마가 될 가능성을 거듭 밝혔을 때 중국 정부가 보였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3월 10일 티베트 민중봉기 56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달라이라마의 환생 문제에 대해 당사자인 달라이라마는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정부는 달라이라마 환생과 관련한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밝힌 의미가 된다. 이러한 정황 때문일까. 달라이라마는 올해 티베트 신년 법회에서 국가의 현명한 지도자 상과 불자가 지녀야 하는 바른 지성을 강조하는 법문을 설했다. 
티베트의 설 로사로부터 보름이 되는 날 열리는 오늘과 같은 기도 축제는 겔룩빠의 종조인 제 총카빠 대사에 의해 1409년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인도로 망명한 1959년 당시 한 해를 제외하고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숭고한 법회 전통을 어김없이 매년 이어왔습니다. 우리의 터전이 수립된 이곳 인도 망명정부에서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회복하고 지속적으로 전승
해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석가모니 붓다의 『본생담(Jataka tales)』은 우리로 하여금 붓다의 생존 당시 인도에서 보이신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켜 줍니다. 올해는 서른한 번째 설화, 쉬라바스티(Sravasti, 사위성)의 태자가 보여준 기적들의 날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인도의 쉬라바스티는 석가모니 붓다께서 오랜 기간 안거를 나시며 외도를 조복하고 여러 기적을 보이신 곳입니다.
쉬라바스티의 국왕은 그의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위대한 용기로서 악을 극복해 나아가는 태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확고한 주관으로 타인에 대한 연민과 겸손을 행하는 태자의 품성을 확신한 왕은 후계자의 자리를 자랑스럽게 넘겨주었습니다. 삶속에서 지성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깨어있는 지혜를 구족해가는 왕자를 신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념은 항시 선한 동기에 근거를 둬야 합니다. 더불어 기도하는 신앙인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반드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우리를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일체 중생이 함께 보살도에서 정진할 수 있도록 계몽하고 육성하는 실천에 앞장서서 서로를 이끌어야 합니다.
종교에는 인류가 성장시켜온 문화와 관습이 녹아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불교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종교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교가 지닌 비폭력의 사상은 오늘날 여전히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조리한 분쟁들을 중재하는 정의의 깨우침을 줍니다. 우리의 선조가 신앙해 온 종교를 존중하고 보존하여 후대에 여실히 전승해야 하는 이유는 종교 안에 우리의 삶과 미래 그리고 정신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보살 수행의 의지처로 삼기 위함입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과연 붓다가 어떠한 분인가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불교도입니다. 때문에 승가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육 체제가 지극히 물질 중심주의적 성향에 치우친 나머지 내면의 성장에 제한을 두는 점은 항시 저의 큰 염려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괴로움, 우리가 처한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석가모니 붓다께서 사유하신 바를 따라 사성제로서 분별하고 ‘나’에 대해 의심해 봅니다. 인간이 지닌 지성과 논리적 사고 방식을 통해 대상에 대한 그 대상을 둘러싸 존재의 방식을 성찰하는 힘을 키워 나갑니다. 내가 의지하는 바와 내가 의지되는 대상의 관계 속에는 연기의 공성이 여실히 담겨 있습니다. 실상을 깨닫도록 하는 마음 훈련이 붓다의 가르침을 조력으로 삶에 투영될 때 비로소 그 영롱한 빛을 발합니다. 그 빛이 바로 행복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환희심이 보리심으로 투영되도록 훈련하세요. 대상을 향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자비로 나를 연마해 갑니다. 우리는 그 연마를 보살도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행복이란 사실 놀라울 정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신심을 일으키세요. 반드시 논리적 사고에 근거하여 일어난 신심이어야만 합니다. 이타심으로서 열 가지 선한 계율을 지키는 것을 생활의 뼈대로 삼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보편적 이해를 삶 속에서 심화시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항시 내면과 외향이 투명하여 스스로 거짓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절대 자신을 기만하지 말 것이며 언행은 항시 일치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이 연기의 공성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실상이 실제 하는 바가 없고 이름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불교의 사상과 철학이 매우 수승함을 알면서도, 가르침이 세밀화 되고 심화 될수록 그들 내면에 두려움을 일으키기에 경계하고 차단하다 종국에는 비난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을 원하지만 무지를 깨우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정작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보살은 서원합니다.
“보리의 정수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자는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나와 타인으로 말미암은 일체의 선한 공덕을 쌓겠습니다. 일체 중생을 구족하는 깨달음을 성취하겠습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
omflower@gmail.com / www.gagy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