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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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일여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현대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합니다. 여러 가지 발전 가운데 매우 만족스럽고 귀한 현상은 바로, 사회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생사학生死學’입니다.
삶과 죽음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문제였음에도 과거 모두들 이를 금기하였으며, 피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거리낌 없이 직면할 수 있으며, 더는 도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과 죽음의 베일을 벗기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고대의 관념 속에서 삶은 곧 기쁨이요, 죽음은 슬픔이었습니다. 인간이 당면한 삶에 있어서 득남, 득녀를 하면 모두의 축하를 받았으며, 일단 인간세상을 떠나면 바로 큰소리로 하늘과 땅을 부르고 매우 비통해 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출생함에 있어, 죽음은 필연적인 결과로 정해져 있는 것인데 기뻐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사람의 죽음도 겨울이 가면 봄에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당연한 것인데, 슬퍼할 것은 또 무엇 있습니까? 삶과 죽음은 일체一體요, 둘이 아닙니다.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듯 소위 모든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은 순환을 그치지 않으며, 삶도 기뻐할 가치가 없고
죽음도 슬퍼할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란 한 집에 오래 산 것과 같습니다. 일단 썩어 망가지면,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만 새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새집이 준공될 때는 기뻐해야 할까요, 슬퍼해야 할까요?
자동차가 오래되어 낡아지면 새 것으로 바꿉니다. 새 차로 바꿀 때 우리는 기쁜가요? 슬픈가요? 늙어 쓸모없게 되어버린 몸은 마치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과 같고, 망가진 차를 새롭게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기뻐해야지,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생존은 볼 수 있고 죽음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생명은 물 한 잔과 같아서 찻잔이 깨지면 복원할 수 없습니다. 물은 식탁이나 바닥에 흐르면 걸레로 닦고, 다시 새로 찻잔에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찻잔은 원상복구가 안 되지만 생명의 물은 한 방울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또 목재와 같습니다. 목재를 태울 때 한 개씩 연달아 지피면 목재의 종류는 다르더라도 생명의 불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불교 신앙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삶과 죽음을 간파해야만 합니다. 생과 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부처님께서도 ‘인연이 있으면 부처님으로 세상에 나고, 인연이 없으면 부처님처럼 열반에 든다. 중생을 위해 오셨다가 중생을 위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인생도 세상 연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가고,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미래 역시 인연을 따라 옵니다.
생사生死가 일여一如하다 여기면, 태어남이 기쁠 것도 죽음이 슬플 것도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