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선(禪) 이란?

 

 

불교에서는 많은 실천수행의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선(禪)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수행방법이다.

 

원래 선이란 범어(梵語) 드야나(dhyana)의 음역(音譯)인 선나의 준말인데 그 뜻은 ‘고요히 생각한다’고 번역된다. 부처님은 6년의 수행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이루었으며, 그 후 “나는 일체승자(一切勝者)이며, 일체지자(一切智者)”라고 선언하셨다. 과연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수행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처님은 고통과 쾌락의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행(中道行)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중도행이란 팔정도를 말하는 것인데 팔정도에는 정견(正見)과 정정(正定)이 으뜸이다. 따라서 참선은 전 불교사상에 일관된 가장 의미있는 수행방법이라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사상은 중국에 와서 달마 이후 육조혜능에 이르기까지 거듭 발전하여 특유의 조사선(祖師禪)을 이루었으며, 이것이 한국에 유입되어 보조국사, 서산대사에 의해 맥을 이어오면서 한국불교의 중심사상이 되었던 것이다.

선은 마음을 통일하여 잡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자기의 참모습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음이라고도 하고 본성(本性)을 본다고 하여 견성(見性)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선은 믿는 자와 믿는 대상이 없는 것이며 부처님과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원적인 본래의 자기, 진실한 본성에 환귀(還歸)하는 것이지 밖을 향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한다. 그러므로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고 절대주체의 바탕에 입각한 자각적 종교임을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수행방법이 선인 것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선의 궁극적 목적이 진실한 자아추구에 있으므로 형식과 표현을 중요시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 교설을 올바로 깨닫는데 있어서, 교설의 표현방법인 문자나 언어는 한낱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선을 실천하는데 있어 흔히 쓰이는 방법은 간화선(看話禪)이다.

이것은 즉 화두라고 하는 공안을 통해 선을 실천해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은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불교 교리의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없다고 했으니 이것이 곧 선수행의 과제가 되며 화두 즉 공안인 것이다. 이러한 공안을 통한 선수행은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폭발적인 의문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추진력을 갖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할 뿐 새로운 귀착처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또한 공안이란 인간의 생활과 떨어져서는 안된다. 천칠백의 화두가 지금 있긴 하지만 이것은 모두 그 사람의 생활과 의식에 밀착되어야만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형식적인 수행에만 그치게 되고 실지의 자기 생활에 있어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참선의 방법에는 좌선이 대표적인 것이지만 중국의 선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또는 무엇을 하거나 간에 수행을 하고 있기도 한다. 따라서 선은 인간의 참된 자각을 얻는 생활의 방편으로서 실천되는 불교의 독특한 수행이며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