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선업 (十善業)

 

십선업(十善業)

 

 

우리의 주체적 인간과 객체적 대상 사이에는 인과율에 입각해서 실천윤리라고 할 수 있는 십업(十業)이 설해지고 있다. 불타는 인간의 의지적 작용과 그에 대한 객체의 필연적 반응을 나타내는 ‘업(業)’과 ‘보(報)’라는 단어를 쓰셨다.

업(Karma)이라는 단어는 작위(作爲)나 일을 나타내고 보(Vipaka)는 이숙(異熟)이라고 번역되며 성숙함을 뜻한다. 업과 보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의 성질 또한 동일성을 띄게 된다.

즉 업인이 선하면 과보도 선하고, 업인이 악하면 과보도 악의 성질을 띄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선업에는 즐거운 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보가 따른다고 한다. 또한 의지가 작용되지 않는 업(不故作業)은 보를 받지 않는다는 불기업(不記業)까지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업에는 즐거운 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보가 따른다면 우리의 행동 방향은 마땅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을 바라는 것이 사람의 상정인데 즐거움을 바라는 것은 자신의 선업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크게 나누어 열 가지 악한 것과 열 가지 선한 행위가 있다.

인간은 무지에서 모든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먼저 악업부터 살펴보자.

열 가지 악한 행동(十惡業)이란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입으로 꾸미는 네 가지, 뜻으로 짓는 세 가지 것이니,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것은 살생·도둑질·삿된 음행이요, 입으로 꾸미는 네 가지 것은 거짓말(妄言)·두말(兩舌)·욕설(惡口)·꾸밈말(綺語)이요, 뜻으로는 세 가지 것은 욕심·성냄·어리석음이다.”

몸과 입과 뜻의 나쁜 것으로 삼보를 믿지 않고 이웃을 업신여겨 참됨을 삿되다 하나니 이러한 악업에는 반드시 악보가 따른다.

열 가지 선한 행(十善行)이란 위의 악업을 행하지 않는 부정의 뜻으로 십선업을 설한다. 그러나 이러한 십선업에 대해 적극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승보살의 선업으로 죽을 목숨을 살려주고 도와주며(放生), 부지런히 일하고(動勉), 바른 행동(正淫)을 하며, 입으로는 바른 말·실(實)다운 말을 하고, 뜻으로는 베풀어주고·자비로 대하고·슬기롭게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십선업은 우리가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함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도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