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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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점 바꾸는 것이 수행결사

혜국스님
석종사 금붕선원장


취재·정리 이권수 / 조계종 총무원


지난 3월 14일 조계사에서 열린 ‘자성과 쇄신 5대 결사를 위한 신도대중공사’에서 수행결사를 주제로 법문한 혜국스님은 “자신의 모자란 점을 알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화하려 노력하는 것이 곧 수행결사”라고 말했다.
이어 “수행결사는 내 마음의 번뇌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자란 점을 알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해가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수행결사를 다짐한 우리는 ‘참나’가 누구인가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물질문명이 아무리 앞서가도 내면의 의식전환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행복은 요원하다”며 “마음수행 할 수 있는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어느 것보다 큰 복”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땅을 짚고 일어선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말처럼 우리가 넘어진 곳, 즉 중도연기법을 모르고 번뇌망상의 노예가 된 그 자리에서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행의 방법에 대해서는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 전에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라”고 설명했다.
또한 스님은 “번뇌망상을 없애고 새로운 부처를 만드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나의 모자란 점을 사랑하고 이를 부처님의 마음으로 바꾸려는 것이 곧 수행결사다. 진정한 기도는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겨내는 큰 그릇이 되겠다고 서원하는 것이다. 이 땅에 정법이 이어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피고 각자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날 법문 요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만 잘 듣는 사람, 그는 내 노예다. 내 말만 따르고 내 말만 잘 듣는 사람은 내 노예이기 때문에 내 말을 잘 들을게 아니라, 내가 한평생 가르친 법을 잘 배우고 수행해서 스스로도 부처가 될 때, 그 부처가 되는 사람을 내 제자라고 할 수 있다. 내 말만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 따라다니는 사람은 내 노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구가 생긴 이후로 대부분 다른 종교에서는 “나를 따르라. 내 말만 잘 들으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말 잘 듣는 것보다, “스스로 깨달아서 당신과 똑같은 부처가 되어야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연 부처의 길, 즉 내가 주인인 길을 가고 있는지, 노예의 길을 가고 있는지 가만히 되돌아볼 일입니다.
불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만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수행을 통해서 가는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한평생 말씀하신 것 중의 하나가 “너희들도 부처다.”입니다.
『생명마다 부처 아닌 사람이 없구나. 지제 지제라. 너희들도 모두 부처이구나. 다만 구름에 가려서 태양이 안 보이듯이 너희들도 탐심, 진심, 번뇌망상이라는 구름에 가려서 부처라는 태양광명이 비추지 못할 뿐, 탐진치와 번뇌망상의 구름만 걷어내면 완벽한 부처로구나.』
중생심으로는 본인이 부처란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들면 잠에 속아서 부처임을 망각하고,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 어려운 일에 속아서 내가 부처임을 망각합니다. 그것이 실답게 내가 부처임을 믿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처님께서는 저 고봉정상에서 내려와서 아함경을 설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무상하다. 정말 무상하다.』
무상이라고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해체해서 부분적으로 보는 공부법을 말합니다. 제행무상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 사과나무 하나가 있다. 이것을 밭에다 심는다. 심으면 싹이 난다. 그럼 그 사과가 작년에는 결과였는데 씨앗으로 심으니까 인이 되었다”는 이치입니다. 인과는 둘이 아닙니다. 싹이 나서 나무가 되고 다시 꽃이 피어서 열매를 맺으면서 변해가는 과정으로의 사과이지 고정불변의 모양은 본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10살 때의 모습이 본인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40대입니까, 60대입니까? 현재의 내가 나입니까?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은 없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씨앗이 썩어서 싹이 나고 나무가 되어서 꽃이 피듯이 점점 변해나가는데, 변해나가는 것 또한 어느 한때만 변해나가는 게 아니라 영원히 변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행무상은 영원의 법칙입니다.
저는 이번에 조계종단에서 자성과 쇄신을 위한 수행·문화·생명·나눔·평화 등 5대 결사를 가지고 대법회를 연다는 말을 듣고 “아, 큰일을 하시는구나.”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환희심을 내서 이 법회에 수희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수행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기도를 하건, 참선을 하건, 염불을 하건, 어떤 것을 하느냐의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공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고 하고 있느냐, 믿지 않고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즉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니고, 이 몸뚱이를 움직이는 내가 바로 공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내가 본래 성불이라고 하는, 내가 완전한 부처라고 하는 공을 확실하게 믿고 하는 수행이냐, 아니면 제행무상·제법무아·일체개고의 삼법인을 모르고 하는 수행이냐의 문제입니다. 소승과 대승관으로 나누어져야 되지, 형식으로 나눠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수행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스승이 대답합니다.
“내가 자네한테 바라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실천하고 행하는 것만 바랄뿐이니, 도가 무엇인지 묻지 말게.”
이에 다시 제자가 “그럼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단지 행하고 행할 뿐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발 황금 같은 시간에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하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가면 언제나 파도가 일렁거립니다. 비유하자면, 그 파도는 우리의 번뇌망상이요, 그 고요한 바다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고요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릇을 가지고 바다에 가서 담그면 그릇 안에 들어온 물만 바닷물이 아니듯이, 내가 생각하는 영혼만 내 영혼이 아닙니다. 바닷물이 그릇 속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지만 그 그릇을 버리면 바닷물은 온 일도 간 일도 없습니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숨이 멎으면 죽었다는 말을 하는데 절대 죽음이란 없습니다. 죽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이 몸뚱이 안에 들어와 잠깐 빌려 쓰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내가 이 몸뚱이를 주체로 보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요, 생사가 없는 요법을 깨달아버리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생사윤회에서 벗어났다는 진리”를 바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법을 가르쳐 준 부처님의 은혜에 환희심이 납니다.
파도가 우리의 번뇌망상이고 바다가 마음이라면, 번뇌망상을 없애려면 파도를 싹 다 걷어 내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바다도 없어집니다. 부처도 없어집니다. 진흙이 없으면 어떻게 연꽃이 피겠습니까?
따라서 번뇌망상이라고 하는 그 한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그 생각이 번뇌가 되는 것이지, 번뇌망상을 싹 없애고 새로 부처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번뇌망상, 내 안에 있는 단점, 못된 성질, 내 안에 있는 모자란 점, 이런 것들을 사랑해보십시오.
파도가 밉다고 다 퍼내버리면 바닷물도 없어지듯이, 내 안에 있는 번뇌망상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을 없앤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따라서 내 안의 번뇌망상과 단점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수행에 들어가는 첫 번째 발길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니고 이 몸뚱이를 움직이는 참나는 누구입니까? 파도를 걷어내지 않고 고요한 바다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람만 안 불면 고요한 바다가 됩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욕망의 바람, 성내는 바람, 탐심의 바람을 잠재우면 됩니다. 내 마음 속의 번뇌망상을 다 없앤 뒤에 새롭게 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단점을 부처님 마음처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염불수행이요, 참선수행이요, 절수행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남을 미워하고 상처 주는 마음”은 잠시 땅바닥에 내려놓고, 남을 이해하고 고마워하는 인격으로 받들어 모시는 절을 하는 것이 절수행입니다.
염불수행도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 사업 잘되게 해달라”는 식의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기도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러나 제대로 하는 기도에 비하면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시험에 열 번 떨어지더라도,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내 마음이 이겨낼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겠습니다. 모든 일은 내가 사진 찍어 놓은 일인 만큼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런 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런 일이 열 번 스무 번 오더라도 결코 거기에 흔들림 없이 나는 꾸준히 나 자신을 위해서 수행의 길을 가겠습니다.”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변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요, 기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을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목동이란 말씀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말처럼 내 몸 안에 잠들어 있는 60조가 넘는 세포 중에 3% 밖에 못 쓴다고 하니, 남은 97% 중 다만 얼마라도 깨어나게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 고맙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구라는 별자리에 부처님이 오셔주셨습니까? 세세생생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부처님은 버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바로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라고 하신 이 법에 의지하겠습니다. 그 법을 가르쳐준 스님네, 평생 저의 스승이십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염불수행을 하든, 참선수행을 하든, 절수행을 하면 됩니다.
어떤 방법의 수행이든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노력하는 게 수행입니다. 그리고 기왕에 하려면 실답게 해야 합니다.
번뇌망상의 운명에 끌려 다니지 말고 참 나를 찾아 나서는 아름다운 수행자가 되어 필경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번뇌망상을 없애고 새로운 부처를 만드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나의 모자란 점을 사랑하고 이를 부처님의 마음으로 바꾸려는 것이 곧 수행결사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어려운 일 당해도 이겨내는 큰 그릇이 되겠다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정법이 이어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피고 각자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