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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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따르는 성품






   성운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인간관계가 복잡해진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어떻게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생각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또한 세속의 때에 물들지 않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서로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있는 ‘수연불변 불변수연(隨緣不變 不變隨緣)’이란 말은 사회를 살아가며 처신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성품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수연(隨緣)’이란 인연을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법은 인연과 화합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은 인연법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상과 관념, 언행과 행동 등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호 간의 인연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이 같이 어울리는 데 있어 좋은 인연을 따르고자 해야 합니다.
‘연을 맺는 것이 원한을 맺는 것보다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인연을 따를 수 있으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수연(隨緣)’은 현재의 상황을 따르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대충 안주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인연을 따르는 성품도 필요하지만, 변치 않는 지조를 지키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수연불변 불변수연(隨緣不變 不變隨緣)’하는 것이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좋은 방책인 것입니다.
당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 625?~680)는 당나라와 티베트 양국의 화합을 위하여 인연을 따라 평화의 사자가 되어, 먼 티베트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불교를 티베트에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문화까지 이역에 전파하여, 오늘까지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칭송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북송(北宋)의 명재상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내직을 맡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신법(新法)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송나라 신종(神宗, 1048~1085)의 불신임과 보수파의 방해로 인하여 성공을 눈앞에 두고 아깝게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북송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아깝게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북송은 이민족에게 멸망을 당하였으며, 황제마저도 포로의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연을 따른다는 것은 남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며, 불변(不變) 역시 편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며, 옛것에 얽매여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현대사회에서 무조건 인연을 좇는 사람은 도리어 원칙을 잃어버리고 정견(定見)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려 부화뇌동하다 고해 속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지나치게 원칙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오히려 집착하게 되어 인연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사업의 발전에도 지장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수연(隨緣)하는 생활과 불변(不變)의 원칙이 서로 막힘이 없어야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정책결정 하나하나가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널리 듣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며 충고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신중하게 시대의 흐름을 살펴 흐름에 순응해야지, ‘좋은 것만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답보상태에 머무르다’가 ‘고집을 피우며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자신과 남을 그르치게 될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여한으로 남기에 신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