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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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경험의 상호균형 속에서 세계평화 가능

캐나다 토론토 / 인도 다람살라 = 가연숙


캐나다에서 ‘세계평화 위한 인간적 접근’ 주제로 법문
캐나다는 이민자에 의해 완성된 국가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56개국 해외 이주자가 정착한 다민족의 나라이다. 1970년대 캐나다에 처음 발 딛기 시작한 티베트 망명 1세대 또한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에 이르러 7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캐나다에 이주한 티베트 인과 다음 세대를 위한 티베탄캐나디안 문화센터(Tibetan Canadian Culture Centre)를 설립하고 올바른 이주와 정착 그리고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리아라마(텐진갸초)는 세계평화를 향한 해답을 복합 다층적으로 얽히고 엮인 캐나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민족 국가를 지향하는 캐나다의 화합과 공존이 인류 지속사의 밝은 미래상을 대변할 것이라는 견해다. 더불어 이민자 중심의 사회라는 캐나다의 특별한 성격이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재 정의할 필요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법문은 지난해 10월 2주간의 미국 법회 일정을 마무리하고 올해 마지막 해외 법문 일정으로 캐나다 토론토를 찾았던 달라이라마의 법문이다. 10월 22일 로저스센터(Rogers Centre)에서 ‘세계 평화를 향한 인간적 접근(Human Approaches to World Peace)’을 주제로 열린 법회에는 2만여 명에 달하는 청중이 티베트 불교를 거울로 비춰 본 인간과 세계 평화의 공존에 관심을 보였다.
(이하는 법문의 요지)
나는 1935년 티베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 과정 속에서 한국전쟁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쟁을 보았고, 내 조국 티베트에서 우리 민족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부르짖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 또한 경험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로 바꿔 칭한다 하더라도 크게 벗어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을 기준으로 한 세기 이래로 2천여 년 동안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21세기는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와 돈의 흐름을 지휘하는 리더들이 신의 임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더 이상 삶의 다양한 경계 가운데 하나가 아닌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치가 되었습니다. 경제와 과학 그리고 문화가 오늘날 종교의 또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위치와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의 거리에 거지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욕망을 등불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학은 인간의 수명 연장을 위한 영역에 접근했고 인간의 세포 깊숙이 침투해 인간의 창조와 탄생의 기원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가 신의 언어 혹은 성자의 말씀이라고 받들어 섬기는 고귀한 자료들은 박물관에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삶이 이 역사의 흐름에 동류하게 된 근원은 무엇이며 나의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시대의 인류는 과연 평등했습니까? 왜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고, 여전히 굶주리는 자가 있으며, 끊이지 않는 다툼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인류가 병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 모두 깊이 병들어 바른 사유와 행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정직함과 바른 것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모호해졌습니다. 인류의 삶이 지남해야할 바를 상실한 두려움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인가 한참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나의 존재의 시작을 묻는다면 당연히 어머니입니다. 정신적 생물학적으로 나의 근원은 어머니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나에게 평화를 안겨주었던 어머니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열어주었고 어떻게 타인과 대화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21세기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역동적 활동이야말로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야 합니다. 여성이 지닌 특유의 감수성으로 지나치게 뒤틀어져버린 폭력의 상처들을 다독이고 모난 부분은 갈고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에서 열린 과학과 의학자들 간의 만남에서 손톱 크기의 알약이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토론이 오고갔습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 주체가 된 삶을 설계하지 못하고 조정당하는 삶을 간절히 원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의 미래가 과학의 주도하에 흘러갈 것이라고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은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이것이 인류공존을 위해 지향해야할 중도입니다.
모순적이게도 인간은 타인을 나와 같은 동질의 인간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듯합니다. 권력과 명예의 상하 구분을 통해 타인의 머리 위에 군림하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은 희망이 아닌 타락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사실 나 스스로도 모르는 게 참으로 많습니다. 여든에 가까워지는 노장은 여전히 세상과 삶에 대한 궁금한 것들로 호기심이 넘칩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느끼며 감동받는 것을 즐깁니다. 내가 여러분보다 높은 단상에서 왕좌와 같은 의자에 앉아 법을 설한다고 어렵게 생각지 말아주기를 바라며, 나는 모든 지식인과 지성인의 대화에 동참해 왔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거울 속에 자신의 치아를 비춰 보십시오. 호랑이의 치아인가 토끼의 치아인가를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이어서 그 안의 혀를 보십시오. 거짓말을 일삼는 혀인가 정직을 토하는 혀인가를 한 번 관찰 해 보세요. 타인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연민의 동정심이 담긴 언어를 입 밖으로 표할 수 있는 자신인가를 사유해 보는 시간으로 여기십시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초목과 같이 순수하고 상쾌한 밝고 따스한 언어로 타인에게 다가감을 시도해 보세요.
인간의 본성은 평화입니다.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평화는 사실 동등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하나의 인연과 인연의 화합들이 만들어낸 인류와 자연의 본성은 평화입니다. 기술의 진보와 과학의 발전이 문명의 진화를 가져와 보다 안락한 삶을 영위한다 할지라도 대체할 수 없는 오래된 진리는 인간은 평화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세계 평화를 향해 인간의 연민으로 만물을 대해 보십시오. 나를 둘러싼 만물이 나의 진실한 연민에 부응하는 해답을 여러분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매년 로사(우리의 설날)를 전후해 붓다의 전생담(자타카테일)을 주제로 법회를 연다. 열혈청년의 나이 스물다섯에 황무지와 다름없던 북인도의 산골마을 다람살라에 티베트망명정부를 설립한 이래로 51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 정치적 지도자의 역할에 관한 은퇴 의사로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달라이라마는 과거 붓다의 전생 가운데 왕 ‘디메꾼덴(인도의 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람살라의 남걀사원 광장에서 달라이라마가 망명정부의 티베트인들에게 들려준 붓다의 전생담은 달라이라마 자신의 현 위치를 사유케 하는 비유였다.
 
왕국의 태평성대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을 확신한 ‘디메꾼덴’ 왕은 자식을 동반하고 숲속으로 은둔수행을 떠났습니다. 여행길, 왕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는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주어 아픔을 달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왕의 고귀한 옷을 벗어 주었으며, 가난에 시름하는 자들에게 장신구를 마다치 않고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던 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두 눈마저 기꺼이 장님에게 보시하였습니다.
비로소 왕은 깨달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풍요롭다 여기고 왕의 자리를 내려와 보니 내가 해결치 못한 괴로움들이 아직 남아 있었구나. 이제야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의 괴로움을 거두었으니 비로소 나의 할 도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왕은 보살이 되었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정치적인 지도자의 지위에서 은퇴하는 것은 좀 더 자세히 티베트 민중의 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임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높은 지위에서 느끼고 체험하기 쉽지 않았던 민중의 숨결을 달라이라마는 스스로 체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티베트망명정부의 3대 수상으로 ‘롭상상게’가 압도적인 득표수로 선출되었다. 미국 하버드 법대 출신으로 주목 받은 43세의 열혈청년이다. 이미 망명정부는 민주주의 정부 방식에 준하는 헌법을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수상선거 과정 또한 돌이켜 보면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 투표 진행 과정에서 네팔과 부탄의 투표함이 다람살라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국이 중국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지닌 이유다. 부탄과 네팔에는 각각 티베트 망명정부 산하의 사무실이 있지만, 정치적으로 중국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결국 투표함을 다람살라 중앙정부로 수송하는 허가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중국은 티베트인들이 서장자치구에서 종교와 언어의 자유를 보장 받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지난 3월 티베트에서 키르티사원의 한 스님이 분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2008년도 3월 중국 정부의 티베트인 학살 만행으로 매년 3월이면 티베트인들의 크고 작은 봉기들이 서장자치구에서 일어난다. 당시 중국의 언론은 분신한 스님의 시신을 바로 병원에 수송했다고 언론에 밝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네팔에서 접속된 유튜브(UTUBE)에는 핸드폰 동영상에 찍힌 스님의 시신이 중국 정부 공관의 차량에 방치된 채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실상을 바로 보고 사유하며 실천하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고.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불자들의 참된 모습이라고 항시 깨우친다. 세계 평화를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거울에 혀를 비추어 보자.


21세기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역동적 활동이야말로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야 합니다. 여성이 지닌 특유의 감수성으로 지나치게 뒤틀어져버린 폭력의 상처들을 다독이고 모난 부분은 갈고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평화입니다.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평화는 사실 동등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하나의 인연과 인연의 화합들이 만들어낸 인류와 자연의 본성은 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