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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사람이 들어도 부끄럽지 않을 말

설재 스님
공주 국선사 주지

파도가 밀려오듯 스산한 바람이 스치면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비 내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되어 장지문 밖을 기웃거리게 된다. 법당 지붕 위는 눈이 내린 듯 달빛이 교교하고 차 거르는 소리 또한 고졸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이태 동안을 서울에서 경승활동을 하다가 도시민의 각박한 일상을 불교문화를 통해 일깨워보리라는 생각에 문화원을 개설해 다시 1년여를 진력하다가, 부실해진 심신을 달래기 위해 공주 차령 산맥 속에 숨어있는 조그만 산사 국선사로 들어왔다. 그렇게 들어와서 보는 열 두 번째 달이다.

국선사에 첫발을 딛던 날 소매를 파고드는 바람은 더없이 청량했고, 노란 은행잎을 걷어 내고 마시던 감로수는 어찌나 달던지, 그간 도시생활에서 찌들었던 먼지들이 모두 씻어 내리는 듯했다. 그러한 기분에 달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리를 뜨지 못했었다.

지친 몸에는 이것이 보약이다 싶어 앞뒤 잴 것도 없이 이사를 오고 나니 그제서야 여기저기 어수선한 도량의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몇 십 년이 넘도록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법당은 부처님을 뵙기가 송구스러울 지경이었고 요사는 쇠락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지붕이 내려앉을 것만 같아 마음이 심란스럽기만 했다.

부뚜막에 걸린 깨어진 무쇠 솥은 낯설지는 않았지만 공양간이라고 하기에는 낮이 뜨거웠다. 게다가 조리대 옆에 있는 반 칸 남짓한 광 안이 수상쩍어 문을 열어보니, 작은 토끼만한 크기의 텃쥐가 놀고 있었다. 그 쥐는 살이 쪄 몸이 둔해진 탓인지, 겁이 없어서인지, 인기척에도 놀라는 기색 없이 오히려 반갑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다는 듯 까만 눈을 힐끔거리며 케케묵은 나무장작 사이로 슬며시 몸을 피한다.

밤마다 뒤란 대숲에서 들려오던 버스럭거리던 소리는 시장한 멧돼지가족이었고, 밤나무 숲에서 악악대던 행패는 짝 찾는 고라니 소리였던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열악한 환경을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독살이하는 스님들의 훌륭한 행적을 빗대어 안심도 시키고 구들장이 몸에 좋다는 자랑을 하며 달랬지만, 늙으신 어머님의 안스러워하시는 눈은 차마 바로보지 못했다. 늦깍기로 산문에 든 외아들이 행여 후줄그레한 행색이라도 할까싶어 봄이 다 갈 무렵이면 모시옷을 정갈하게 만져주시고 가셨다가 가을이 오기 전에 또 한 철 무명옷을 만져주시고, 찬바람이 불면 벌써 겨울 솜옷을 매만져주시기를 십수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어머님께는 그저 죄송하기만 했다.

수행하는 이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으면 족하고 지천에 땔감이 있으니 언 몸 녹일 걱정도 없고, 본시 산사에만 살다가 지난 3년간 외유하다가 다시 내 집에 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은 더없이 편안하고 좋기만 한데, 어머니의 사랑 앞에는 어떤 경전의 말씀도 이 초라한 수행처를 변명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 저는 불사하라는 인연이 깊은가 봐요.”라며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속 깊으신 눈을 달래드리지는 못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부랴부랴 시급한 공사부터 시작했다. 옹색한대로 공양간이며 요사를 손보고 법당과 산신각으로 얽히고 설켜서 불안하기만 하던 전기선을 정리하고 나니 적이 안도감이 들었다. 부처님 전에 인사를 올리던 날은 그동안 수행생활을 함께 해 온 불자들과 산 아래 마을의 불자들이 동참을 했다.
“이런 곳으로 어떻게 살려고 왔느냐”며 산아래 마을의 불자들은 지난 10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의 절 내력을 회상하기도 했다. 동참한 한 분 한 분의 손을 잡아드리며 걱정해준 마음에 대한 감사의 답례를 하며 백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서의 나이에 걸맞는 사격을 갖추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다행히 겨울을 날 얼걸이를 끝내고 난 뒤 눈이 왔다. 차령산맥을 이고 있어서인지 첫눈인데도 푸짐하게 내렸다. 눈이 오고 나니 법당 뒤에 기걸차게 우뚝 서있던 노송들이 수염이 하얀 나한님이 강림하신 듯 뭉실뭉실한 솔가지마다 고드름을 느려트리고 있어 가히 장관이다.
새하얀 천지에 비추는 달빛이 너무 고와서 차라리 울고 싶다.
뽀득이는 눈길을 밟고, 솔가지에 걸린 달빛을 보며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몸에는 군불 땐 단내가 베어가고 겨우내 반오리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해동이 되고 종아리에는 근력이 붙었다. 가을에 불자들이 일러준 대로 때에 맞춰 채마밭을 일구었다.

산 아래로 내려앉은 운무를 딛고 새벽을 열면 산나물로 끓인 토장국이 달고, 푸성귀가 흔하니 입이 또한 싱그럽다. 풋고추를 따먹을 즈음이 되니 시간도 짜임새가 있어지고 신역도 견딜만 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씀을 흉내 낼 즈음 풀먹인 승복을 입었다. 발길 잰 농부의 벼가 한적한 신작로에서 볕을 쬘 무렵 나도 가을을 했다. 마음에 담아둔 이들에게 정성껏 말린 구절초차와 알밤을 보냈다. 추녀 밑엔 곶감을 달아매고 평상에는 빨간 고추를 널어놓으니 제법 요족한 산사의 살림답다. 벽에 기대어 과동시를 쌓아놓고 나니 한 해를 갈무리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늘 그렇듯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새로운 바람과 희망의 종자가 아니던가. 산사로 들어오면서, 고즈넉한 이 도량에서 사경삼매에 들어보리라 마음먹었으나, 눈이 망가져서 계획했던 만큼의 사경을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새해에는 천하 사람이 다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말을 하는 불자들이 되기를 서원한다. 나라의 재물을 지키는 관리에게 친구가 찾아와서‘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니 국고의 재물을 나누어 갖자’고 하자 관리는‘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아는데 어찌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라고 하는가’라며 친구를 깨우쳐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대저 우리끼리만 아는 말이라든가 네게만 일러주는 말이라는 따위의 귀엣말은 진실이 아니든지, 가슴에 지닐 만큼 값진 말이 못된다.
기어의 말이거나 양설의 죄가 아니라면 어찌 내게만 속삭이겠는가. 백가지 금구를 외운들 한 가지 선행만 못하리라. 천하 사람이 들어도 떳떳한 말을 주고받는 불자가 되어 부처님께 칭찬받는 한해가 되기를 서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