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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日日好是日)

이진영
시 인


‘대한(大寒)이 소한(小寒)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겨울 절기 중에서도 소한이 가장 추운 때임을 이른 말이다. 그 소한이 아직 닥치지도 않았는데 추위가 연일 매섭다.
그래서 그럴까.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의 어깨가 깊이 움츠러들었다. 헌데 시민들의 어깨가 그렇게 움츠러든 것은 꼭 겨울 추위 탓만은 아닌 듯싶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눈발도 없이 찾아든 경제 한파도 시민들의 어깨를 오그라들게 한데 큰 몫을 차지한 것 같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3/4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 1년 사이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 비중이 29.0%로 높아졌다. 그리고 2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346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5% 증가했지만, 이 기간 동안 물가도 5.5% 상승, 실질소득 증가율은 0%에 머물렀다.
또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은 1년 전보다 1.1% 증가하는데 그쳤고, 도시근로자의 근로소득 증가율은 5.0%에 머물러 동기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쳤다. 또 동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29만5,000원으로 전년보다 3.0% 증가했지만 물가를 감안한 실질소비는 2.4%나 감소,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통계청의 이 같은 발표 수치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주는 증거들이다. 그리고 IMF 이후 11년 만에 우리 경제가 또 다시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이처럼 경제가 얼어붙으면 가장 먼저 추위를 타는 곳이 고용구조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전체 직원의 10% 규모인 2,000명가량을 감원하기로 한데 이어 그 동안 신의 기업으로 불리던 코레일(철도공사)과 농촌공사 도로공사 한국감정원 조폐공사 등 공기업이 향후 3~4년간 1만7,000여 명의 직원을 줄이기로 했다. 또 대기업과 금융권도 본격적인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업이 근로자 채용 폭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아 올 상반기에는 실제 실업자 수가 317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은 올 겨울 추위가 소한 대한을 지나 입춘 경칩을 넘겨서도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 같은 경제 한파는 실제로 내 주변에서 벌써 큰 동파사고를 일으켰다. 모 금융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핸드폰을 받지 않아 회사로 전화했더니 퇴직했다는 것이다. 나는 뒷골이 아득해졌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깊은 겨울 강 속으로 숨어버린 친구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박탈감이 얼마나 크고 깊었으면 핸드폰마저 꺼버리고 얼어붙은 겨울 강 깊숙이 잠수해버렸을까.
2월이면 이명박 대통령이‘경제대통령’을 표방하며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꼭 1년이 된다.
이것을 의식해선지 이 대통령은 지난 연말‘2009년 경제운용방향보고회의’에서“내년 상반기가 가장 힘든 기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전체 세출 예산의 70%를 내년 상반기에 푸는 등‘속도감 있는 예산집행’으로 이 난국을 타개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움츠러든 시민들의 어깨를 얼마나 펴줄지 모르겠다. 더욱이 핸드폰도 끈 채 깊은 겨울 강물 속으로 잠수한 내 친구의 마음을 얼마나 녹여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계속 된다고 우리는 마냥 어깨를 움츠리고 있을 순 없다. 우리가 어깨를 움츠리면 움츠릴수록 동장군은 더 매서운 날개를 달고 동천(冬天)의 구름 속을 더욱 신나게 쏘다닐 것이다. 어두운 현실을 피해 구들장도 없는 아랫목으로 파고들수록 죽음의 저체온증은 더 쉽게 우리의 심장을 옥죌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그랬을까.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는 멋진 선문답으로 우리들의 추위를 녹여주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동산 선사에게 물었다.
“추위나 더위가 오면 어떻게 피하는 게 좋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으로 가면 되겠지.”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선사가 대답했다.
“추울 때는 추위에 뛰어들고 더울 때는 더위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동장군의 발목을 주저앉히지 못할 것이다. 추울 때는 추위에 뛰어들어 추위를 제압하는‘이한제한(以寒制寒)’의 초식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콩 한 쪼가리라도 함께 나누고 베풀 때 얼어붙은 우리네 마음도 더 빨리 풀릴 것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부처님은 쌍윳다 니까야에서 설파하셨다.
어떤 이는 조금 있어도 베풀고 / 어떤 이는 많아도 베풀지 않으니 / 조금 있어도 베푸는 보시는 / 천 배의 가치가 있다. // 주기 어려운 것을 주는 사람들, / 하기 어려운 것을 하는 사람들, /  옳지 못한 사람은 흉내 낼 수 없으니 / 옳은 사람의 가르침은 따르기 쉽지 않네. // 옳지 못한 사람과 옳은 사람은 / 죽은 후 가는 곳이 다르니 / 옳은 사람은 좋은 곳으로 가고 / 옳지 못한 사람은 나쁜 곳으로 간다네.

우리 모두 불자(佛子)가 되어 너도 나도 그렇게 할 때 어깨를 움츠린 채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도, 317만 명의 예비 실업자도, 겨울 강 깊숙이 잠수해버린 내 친구도 어깨를 당당히 펴고 운문(雲門) 문언(文偃) 선사의 방망이 한 방처럼‘날마다 참 좋은 날(日日好是日)’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한 추위도 더 이상 대한을 얼어 죽게 만들지 않고 따스한 산다화의 봄날을 앞당겨 우리에게 보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