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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琉璃場)

김지상
화광전통미술연구소, 중국국가박물관수복연구원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는 유리창(琉璃場)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모습의 문화거리가 있다. 베이징 천안문(天安門) 광장 서남쪽의 화평문(和平門) 밖에 위치한 이 문화거리는 천안문에서 아주 가까운 서예와 골동품 중심의 문화 거리이다.

유리창은 원래 해왕촌(海王村)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13세기 원조 때 채색유리를 굽는 가마가 이곳에 만들어지면서 이름을 유리창 이라고 바꾸게 되었다. 이곳에서 구운 채색의 유리기와는 황궁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절과 암자 그리고 부잣집에서도 사용해 이 유리창이 점점 더 번창해지게 되었다. 17세기의 청조 때 유 리 만드는 공장이 베이징 서쪽으로 옮기면서 이 곳의 인기가 식어 졌는데 후에 이곳에서 등불놀 이를 하면서 다시 번화해졌다.

유리창이 황궁과 가까워 과거 시험 차 베이징에 올라온 많은 수재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총명한 장사꾼들이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들의 습관에 따라 이곳에 책방을 만들었고 후에는 골동품, 문방구, 서예 등도 합세해 유리창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문화의 거리로 부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진귀한 골동품과 수많은 서책들이 즐비하였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많이 없어지고 서책과 미술도구 위주로 형성이 되어가고 있다.
한창 번성했던 골동품 시장이 반가원으로 옮겨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어 거리가 때로는 한산할 때도 있다.
박물관의 동료들도 유리창 얘기를 가끔 한다.
예전에는 골동품을 사고파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골동품을 보거나 살려면 유리창에 가서 보고는 했다고 한다. 전에는 골동품이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때는 귀중한 물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에 물건들을 모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골동품 시장이 반가원, 고안성으로 대 부분이 옮겨져서 그 명맥만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또한 모사품들이 많이 나와서 잘 구분을 하여서 물건을 구입해야 할 것이다. 섣불리 맘에 든다고 많은 돈을 지불해서는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유리창은 한때 한중 문화교류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담헌 홍대용도 중국의 학자인 반정균, 육비 등과 필담으로 서로의 생각과 사상을 나누던 곳이었다. 그 때의 객잔은 없어 졌지만, 그 곳의 후통은 그 때의 모습을 어렴풋이 간직 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유리창의 양매서점 거리에서 중국의 유학자였던 유세기를 만났다
고 한다. 그 뒤로도 수차례 만나면서 서로 학자로서 견문을 견주어 보았을 것이다. 연암의 작품중에‘양매시화’도 유리창의 거리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유구한 역사의 유리창에는 몇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가게들도 아주 많다. 1672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300여년의 역사를 자랑 하는 영보재(榮寶齎)가 그 중 하나이다. 과거에 ‘송죽재(松竹齎)’라고 불리었던 영보재는 중국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영보재에서만 가능한‘목각수인(木刻水印)’은 중국전통
각판인쇄를 토대로 발전시킨 것으로서 서예작품의 흐름과 색채에 따라 몇 개의 각판을 만들고 원작을 기준으로 점진적으로 인쇄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하는 종이와 묵, 색 등 원료가 원작과 같고 복제술이 뛰어나서 모조작과 원작은 거의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똑 같다. 심지어 원 작가도 작품의 진위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 이다.

영보재에는 돌의 황제라고 불리는 전황석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전황석으로 새긴 도장을 으뜸으로 꼽는다. 세계에서 제일 큰 4kg 전황석은 영보재의 자랑으로 꼽히고 있다.

필자 또한 종이와 책을 살 때는 유리창에서 구입을 한다. 길을 사이에 두고 동가와 서가의 거리가 형성이 되어 있다. 동, 서의 거리는 각각 특색이 있다. 유리창은 올림픽을 앞두고 보수 공사를 했었다. 그 후로 유리창이 다들 좋아졌다고는 하나 필자의 눈에는 너무 많은 보수공사를 한 것 같아서 처음에 봤던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유리창 뒤쪽의 후통들 또한 많이 없어졌다.
곳곳에서 물건을 팔고 표구를 하던 곳들도 많았었는데 너무나 아쉬운 생각이 든다. 지금은 유리창 거리가 더 넓어져 가고 있다. 그러한 반면에 유리창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에 색이 없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유리창에서 볼 수 없었던 물건들을 새로이 형성이 된 거리에서 팔기 때문일 게다. 유리창 하고는 맞지 않는 물
건들이다.
우리네 인사동의 거리 또한 마찬가지 일 것 이다. 대부분이 외국 물건들로 채워져 있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인하여 한번 왔다간 외국인 들은 고유의 색이 없어진 인사동을 오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를 통해서 컨텐츠를 개발하고 상품화를 시키는 시기가 오고 있다. 그 만큼 문화라는 고유명사는 무한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고유의 색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인하여 문화 또한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들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이 거리를 하나의 명소로서 관광을 하고 있다.
그들은 유리창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의 작품을 감상 하고 느끼면서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